생태교육연구소 터 활동가 김찬욱씨

큰 키에 길게 길은 머리, 짙은 눈썹의 범상치 않은 모습, 그는 지난 10월부터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활동을 시작한 김찬욱씨다. 찬욱씨는 충북과 인연이 없다. 고향도 아니며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경남 진주에 머물다 지인 부모님의 소개로 ‘터’를 알게 됐고 그렇게 청주로 왔다.

찬욱씨는 “평소 시민단체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터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편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는 것이 참 좋다”며 “집 같다”고 말했다. 또한 찬욱씨는 생태문제 뿐만 아니라 충북청소년인권조례 제정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생태교육 역시 큰 틀에서 봐야하며 여러 사안이 연계돼 있어 한 가지 운동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또한 최근 일부 학생들의 일탈 행동을 이유로 ‘교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하며 보수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한 일로 수업권 등 교사권리가 침해받을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학생인권과 교사권리는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이다.

찬욱씨는 빠른 1992년생. 올해 21살이 됐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10학번으로 입학했으나 한 학기 만에 휴학을 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이 실제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찬욱씨는 같은 해 10월 경남 진주시로 내려갔다. “한 곳에 머물면 안주하게 되는 것 같다”는 것이 떠난 이유다.

찬욱씨는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서 나왔다. 서울을 떠나 진주로 내려갔던 이유도 고등학교를 나온 산청과 인접해 친근했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없던 방에서 1년여를 보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으며 한 달을 10만원으로 버텼다. 집에서 용돈은 받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에게 최대한 기대지 않고 살아온 그다. ‘스스로 독립성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찬욱씨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사실 찬욱씨는 외국어고 또는 과학고 진학을 꿈꿨다. 공부도 잘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자가 되길 바랐다. 그러다가 조금 더 수월한 외국어고로 방향을 틀었다. 외고 입시반에 다녔고 과외도 받았다. 하루 일정이 끝나면 새벽 1~2시, 학원숙제를 하다보면 어느덧 새벽 세시가 넘었고 짧은 잠을 청했다. 부족한 잠은 학교에서 채웠다. 찬욱씨는 그 당시만 해도 그것이 성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3 무렵 집안형편이 어려워졌다. 몇 개씩 다니던 비싼 학원을 그만두고 동네 단과학원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끝나면 밤 9시, 찬욱씨에게 시간이 돌아왔다. 여유가 생긴 것이다. 찬욱씨는 “놀 수도 있고 컴퓨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러다 과거 운동권 대학생들의 집회 영상을 컴퓨터로 보게 됐다. 그때 본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는 것이 찬욱씨의 고백이다. 또 집회현장에서 왜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찬욱씨는 청소년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집회현장에 자주 나서게 됐다.

찬욱씨가 집회현장에서 처음 외친 구호는 ‘두발자유’와 ‘체벌금지’였다. 당시는 최순영 민주노동당 전 국회의원이 학생인권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다. 학생인권법의 당사자였던 찬욱씨에게는 이 법은 자기문제로 여겨졌고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비록 법 제정은 실패했지만 찬욱씨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대안학교로의 진학을 결심한 것도 이 무렵이다. 산청 산골의 대안학교로 진학하며 찬욱씨는 자연과 친해졌다. 산을 오르며 산나물을 캐고 물고기 잡으며 밤에는 별을 봤다. 그가 생태와 환경에 관심이 생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찬욱씨는 새해 ‘터’에서 두가지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하나는 아이들과 재밌게 노는 것이다. 찬욱씨는 “요즘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기기와 소비에 길들여져 있다”고 말했다. 찬욱씨가 대안학교에 놀던 놀이방식은 도시에서는 정말 불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한 이번 기획은 청소년과 같이 모여 기획하며 어떻게 놀 것인지를 고민한다. 또 다른 기획은 비밀이라고 말했다.

찬욱씨는 “지금 놀 줄 알아야 나중에 재밌게 놀 수 있다”고 했다. 훗날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참고 버티며 즐겁지 않은 일을 할 이유는 없다는 것. “지금이 재밌어야 내일도 재밌다”는 찬욱씨의 즐거운 인생을 응원해본다. 또 돌아본다. 나의 스물 한 살은 즐거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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