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前 청주YWCA 여성종합상담소장·캐나다 거주

어느 나라에나 청소년들 사이의 유행은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는 더더욱 획일적인 유행상품이 팔리고 먹힌다. 전 세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이 곳 토론토에서도 피부색이나 외모에 관계없이 똑같은 상표의 옷을 입은 청소년들을 흔히 볼 수 있으며 그 제품들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선호될 것이란 추측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제 막 10대에 접어든 우리 아들도 부쩍 한 유명 상표의 방한복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 이 옷의 가격은 적정한지, 동물학대는 없는지 토론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의 ‘등산복 계급’ 기사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게 왜 계급이 되는지 연관시켜 생각하지 못한다. 경쟁과 서열화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이어야 옷에도 계급을 매길 줄 안다.

전 세계 어딜 가든 자녀교육에 극성스러운 부모는 많다. 방과 후 하키나 축구 야구를 가르치거나 수영 등급을 올리기 위해 체육관과 수영장으로 애들을 실어 나르는 부모들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딴 아이가 하키를 못하거나 축구를 못한다고 해서 그 아이를 따돌리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없다. 공부는 물론 외국에서 갓 이주해 와서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아이가 한 교실에 있다면 적극적으로 그 아이를 도와주거나 최소한 신경 쓰지 않는다. 그건 그 아이의 사정일 뿐이다.

만일 어떤 부모가 공부 못하는 애랑 어울리지 말라거나 영어 못하는 애랑 놀지 말라고 한다면 이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경찰이 출동할 만한 매우 심각한 처벌 대상이다. 성적을 비롯해 자녀들의 행동과 능력을 수시로 친구들과 비교해 ‘엄친아’란 신조어를 만들고, 누구누구와 놀지 말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부모가 없다면 왕따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토론토에서 만날 수 있는 한인들은 대체로 세 부류이다. 첫째는 이민자이고 둘째는 자녀들을 학교 보내고 있는 동반부모이고 세 번째는 어학연수생이나 유학생이다. 토론토 요크(YORK)대학교 사회학과 김현영 교수팀이 진행하고 있는 한인가족연구에 의하면 한인이민자들이 이민을 결심한 이유가 ‘더 나은 자녀교육을 위해서’ 라고 답한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어떤 형태든 한인들의 캐나다 거주 이유는 단 하나의 문제 ‘교육’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학력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이 더 수준 높다. 태생적 언어와 문화의 장벽으로 인해 좋은 성적을 얻기가 하늘에 별따기 라는 것도 뻔히 알고 있다. 대부분의 한인 학생들은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는 것만도 다행이다. 그럼 뭔가? 이건 교육을 잘 시키고 싶어서가 아니다.

한마디로 교육에 치여 죽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 중학생 자살 보도나 등산복계급 등의 보도는 이런 한인들의 탈출 이유를 정당화해 준다. 너무 무섭고 가슴 아프고 막막하다. 한국교육의 추락은 거침없고, 놀란 사람들은 도망친다.

토론토 인근 도시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사과와 해결을 위한 1000번째 수요 집회가 있기 몇 주 전, 역사수업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성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폭력적 성노예를 강요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 또래 정도의 어린 소녀들이 전쟁으로 인해 당한 끔찍한 일을 그냥 모른 체 할 수 없어 한국의 1000번째 수요집회와 같은 날 오타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오타와는 토론토에서 차로 10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이 소녀들의 열정과 역사의식도 그렇지만 시험공부대신 이런 활동을 결정하고 펼칠 수 있는 고등학교 교육여건이 부러웠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