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는 과학문명이 이루어낸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가 등장한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학적으로 선별되고 사육된다.

이 때문에 어느 누구도 불행을 겪을 수 없다. 질병과 전쟁, 굶주림 같은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인 아픔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껏 먹고 놀며 즐기는 행복한 일상뿐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모든 것이 타인에 의해 이미 결정된 환경은 오래 가지 못하고 새로운 문제를 잉태시키며 급기야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한국 문학사상 최초로 유토피아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최인훈의 소설 <광장>. 주인공은 어두운 밀실과 잿빛 세계에서 정의와 사랑과 자유가 보장되는 푸른 광장을 꿈꾸다가 결국은 제3국을 선택하는 서글픈 내용을 담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는 부도덕한 개인의 자유만이 넘쳐날 뿐이고, 사회주의의 북한은 개인의 자유의사를 부정한 채 오직 집단의 이념만을 중시하고 획일화시킨다며 슬퍼했다. 나환자들의 집단거주지인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이청춘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어렵고 힘든 노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이상사회를 추구하기도 했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2011년 끝자락, 필자는 이처럼 소설 속에서나 꿈꾸고 있는 이상향에서 하룻밤의 낯선 여행을 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며 온 몸으로 호흡하였으니 소설 속의 이야기도, 꿈 같은 이야기도 아닌 지금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의 이야기다. 바로 나미나라공화국, 남이섬이다.

남이섬은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10년 째 하루 평균 5천여 명의 국내외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청평호수 위에 가랑잎처럼 떠 있는 남이섬은 면적 46만m²에 둘레는 약 5km의 작은 섬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늘까지 뻗어 오르는 수천구루의 나무들과 광활한 잔디밭, 호수로 에워싸인 오솔길과 모래뻘, 산새 물새와 타조와 토끼 등 수많은 생명의 춤사위에 넋을 잃는다. 발 닿는 곳마다 사랑과 감동으로 가슴 시리게 했던 드라마의 스토리가 숨 쉬고 있고 도자, 유리, 가구, 염색 등의 공예체험과 춤, 음악, 퍼포먼스 등 수많은 예술의 꽃이 사계절 방문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남이섬에서는 누구나 시인이고 연인이며 백마 탄 왕자이고 백설공주다. 고단하고 막막한 삶,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비루한 삶의 연속인 우리네에게는 잠깐의 휴식이지만 단비 같은 곳이다. 그리하여 이곳은 섬이 아니라 나미나라공화국이다. 거추장스러운 물질문명의 모든 것을 걷어내고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신천지라 할 것이다.

이 같은 결실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남이섬 대표인 강우현이라는 문화기획자의 창조정신과 열정과 뚝심의 결과물이다. 충북 단양 출신의 강씨는 마음속에 담고 있던 꿈과 상상을 현실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남이섬을 선점, 이곳에 수많은 문화아이콘을 담기 시작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때로는 무모하다며 비웃고 삿대질하고 수많은 난관과 시련과 장애물들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자박자박 걸어왔기에 지금의 남이섬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한다. 기존의 형식과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 틀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야만 남들이 하지 않는 그 무엇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창조경영”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 창조경영과 문화적인 놀이야말로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고 계층 간의 벽을 허물며 개인의 지적발달을 도와주는 가장 높은 수준의 복지이자 이상향임에 틀림없다.

지금 창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내 마음도 차고 시리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면서 과연 내게도 창조경영의 DNA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방기하고 번민하면서 덧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지 부끄럽고 난망하다. 새해에는 나만의 멋과 결과 향을 만들어야겠다. 새로운 미래를 멋지게 변주할 수 있는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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