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 호 (청주 신 미술관 디렉터)

장녀가 “환쟁이”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펄펄 뛰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환쟁이는 사회에서 전혀 수익성이 없는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시절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21세기 네트워크시대에는 문화의 경쟁력이 각 나라의 경쟁력에 중요한 변수로서 작용하면서,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미술의 발전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다. 일부 부모님들은 자식을 예술중·고등학교에 들여보내기 위해 난리들이고, 미술대학 입학하기가 예전처럼 만만하지 않다.

실제로 우리미술의 세계적인 위상 실현을 가능케 하는 경쟁력 있는 작가의 발굴이 시급하다. 그러나 아직도 미술시장의 경쟁력이 허약한 우리사회에서는 작가가 창작활동만을 통해서 예술가로서 생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실기위주의 미술교육만을 받은 작가들이 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화랑이나 미술관과 유연한 관계를 맺으면서 시장 시스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미술시장의 활성화가 예술가의 창작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해주고, 이러한 환경에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작가의 발굴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나 작품을 사랑하는 관객들은 더 이상 미술시장의 논리를 추상적 개념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우리 미술 시장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면 첫째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들이 작품의 질적인 가치보다는 작품을 재화가치나 선물용으로 불법거래에 사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작품이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판매된 경우는 유통경로가 투명하게 기록에 남는다. 반면 우리의 경우 작품가격이 고가인 경우 더욱 더 소유자가 비밀에 부쳐진다. 두 번째는 소비자가 작품을 구입하는 경우 작가의 지명도에 의지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작품선택에 대한 안목이 부족할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화랑 자체가 바로 학연, 지연에 얽매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 미술계의 창작환경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학연, 지연으로 주도되는 구조적 시스템이다. 세 번째로 최근에는 우리사회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등 국제비엔날레 참여가 많아지면서 마치 비엔날레 출품이 작가의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비엔날레 출품경력이 작가의 지명도와 직결되고 작품가격이 결정된다. 이러한 국제 비엔날레는 19세기 파리의 살롱전처럼 작가의 지명도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작가의 예술적 경력을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단계로 볼 수도 있고, 작가의 명성과 작품의 가격을 결정지울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비엔날레가 언제 열렸었는지, 누가 상을 받았는지에 일부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무관심하다. 비엔날레가 한 작가의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시했지만, 가장 미술시장의 활력을 주는 것은 그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다.  90년대 이후 우리들은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귀에 좋은 음악, 입에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는 노력은 했으나, 눈에 좋은 그림에 대해선 좀 인색했다. 그것은 그림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나 음식과는 달리 미술관이라는 특별한 장소에나 가야지 볼 수 있어서 일 것이다. 사람의 의식에 민감하게 영향을 끼치는 시각문화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인터넷, 광고전광판, TV 등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영상이미지를 경계하여야 한다. 마음의 정서와 맑은 정신을 지켜줄 그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미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사회에서는 제도적으로 작가의 예술창작환경을 개선하고, 예술 전문인(비평가, 미술사가, 학예사)들은 작품의 올바른 가치형성의 미학적 평가와 사회적 인정을, 그리고 미술시장(화랑, 미술관)은 투명한 작품거래와 가격을 주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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