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편집국장

정치를 개념화한 표현 가운데 ‘정치는 생물(生物)’이라는 말이 있다.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인들이, 또는 정치부 기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정치의 가변성, 폭발력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해본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할 것이다.

우선 지지도에서 수위를 달리던 유력정치인이 예측대로 대통령이 된 경우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국민들은 무조건 3김 가운데 1명이 대통령이 된다고 했다. 10.26 박정희 서거를 수습하겠다며 군대를 동원한 전두환 소장이 몇 달만에 대장이 되고 마침내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리란 것은 그 누구도 예측치 못한 일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친구이자 육사 동창인 노태우 대통령이 권력을 물려받은 것도 정치가 생물이란 것을 입증한 사례다.

3김 중에서 그래도 2김의 시대는 전성기를 지난 한참 뒤에야 왔다. 김영삼 대통령이 서울의 봄으로부터 12년이나 지난 뒤에라도 대통령이 되리란 걸 예측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소위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 정권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3김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까지 당선이 됐으나 1992년 정계은퇴선언을 했던 DJ가 4년 뒤 다시 복귀를 하고 1998년 당선까지 되리라고 예측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부산 총선에서 떨어지고 국회의원 지지자가 없던 정치낭인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고 그 간의 여론조사 결과를 비웃으며 대통령이 된 것도 역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지역에서도 한 때 자민련 녹색바람이 불었고 ‘야당이 당선이 되면 큰일이 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보수적인 충북에서 김대중 후보를 당선시켰고 그 뒤로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민주당 바람이 불었다. 총선은 민주당이,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이 득세하더니 급기야 지난해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도지사가 당선이 됐다. 도의회도 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치는 살아 생동하는 생물이다.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정말 정치는 생물일까? 생명은 이미 잃은 채 난도질을 당한 낙지다리처럼 그저 쟁반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에 불과한 건 아닐까? 지역의 정치는 오래 전부터 생기 없는 양당구도로 굳어졌다.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당내 도전을 받지 않는다. 지방의회의 경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정치적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나라당이 지방의회를 독식하던 시절에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을 나머지 정당에서 이삭줍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선진당적으로 남부3군을 호령했던 이용희 의원도 지역의 군수, 도의원, 군의원 등을 거느리고 친정인 민주당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탈락에 반대하며 당을 떠났던 김준환 미래연합 충북도당위원장도 복당을 신청했다.

범야권 통합이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을 한축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을 또 다른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은 내년 양대 선거의 필승전략으로 야권대통합을 말하지만 ‘헤쳐모여’도 불사하겠다는 기득권 정치인은 많지 않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후보전술을 구사하더라도 민주당 상대와 눈높이를 맞춰 전략지역을 양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랬다. 점점 정치가 예측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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