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엘 다녀왔습니다. 충청리뷰와 오마이충북 CJB청주방송이 마련한 제85회 전국체전성공 및 통일기원 제1회 마라톤대회가 지난 21일 금강산 온정리에서 열렸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행사는 국내의 그 어느 대회보다 의미가 컸다고 자부해도 좋을 듯 합니다. 540명이 넘는 남녀노소 마라톤동호인들이 금단(禁斷)의 산하를 달리는 장관도 볼만했으려니와 바닷가에 제단을 차려 놓고 민족의 재결합을 기원한 통일기원제 또한 그 어느 행사보다 뜻이 깊었기에 말입니다.

강원도 고성 남측 출입국관리소를 출발한 버스가 군사 분계선을 넘으면서 방문객들은 이내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도로 양쪽에 띄엄띄엄 서서 부동자세로 남쪽 손님들을 맞는 인민군들의 경직된 모습은 초행길의 방문객들에게 그곳이 북한 땅임을 첫 번째로 실감하게 했습니다.

버스가 북한 땅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차창 밖으로는 벌거벗은 산들, 황막한 들녘, 회색 빛의 낡은 기와집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이따금 나타나는 마을에서는 흙먼지를 일구며 남에서 올라오는 버스 행렬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밥 짓는 연기,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민도 보였는데 그 모습은 흡사 50년대 우리 농촌을 그대로 보는 듯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잘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에 그저 탄성만이”

금강산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고구려이후 선조 들이 천하명산이라고 자부했던 긍지그대로 금강산은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봄에는 금강산이요,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일년에 이름이 네 번 바뀌는 금강산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하루에도 열두 번 변화무쌍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남쪽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순간 나의 머리 속에는 송(宋)나라시인 소동파(蘇東坡)가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번만이라도 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말이 허사(虛辭)가 아니었고 아돌프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이 1962년 금강산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엿새 중에 마지막 하루는 오직 이 금강산만을 만드는데 보내셨을 것이다"라고 감탄하였다는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중국인들이 지상에서 그림보다 아름다운 곳이라고 계림(桂林)을 자랑한다 들었으나 나의 짧은 글과 말로서는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어려운 산이 금강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수려함이 신비롭기만 한 금강산의 모습은 조선의 대가 정선(鄭敾)의 실경산수 ‘금강전도’가 이것이로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들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잘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1만2천 봉우리 가운데 남쪽 관광객에게만 개방하고 있다는 구룡연폭포, 만물상, 삼일포, 해금강은 명성 그대로였습니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모두가 다른 형상의 산봉우리 들, 천길 절벽의 기기 묘묘한 바위들, 수정처럼 맑은 계곡의 물은 누구의 입에서나 탄성을 절로 쏟아 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는 산소호흡을 하듯 내내 목을 시원하게 해 주고 깨끗한 공기로 하여 나무들의 색깔마저 남쪽의 그것들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무수히 널려있는 계곡의 우람한 돌들은 맑은 물에 씻겨 이끼 한 점 없는 하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민족끼리 서로 외계인 보듯 하는 안타까운 현실”

20여대의 버스가 줄을 지어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광경을 주민들이 마을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차창을 통해 보였습니다. 남쪽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그들의 모습을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그들 또한 방문객들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서글픈 광경에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습니다. 1시간이면 오고가는 같은 땅, 같은 민족이 서로를 외계인처럼 바라봐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습니다. 차창 너머 바람에 펄럭이는 붉은 깃발 아래 수많은 주민들이 집단으로 동원돼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가슴이 저렸습니다.

처음 북한 땅을 밟은 남쪽 방문객들에겐 인민군의 낯선 복장이나 마네킹처럼 서있는 생경한 모습도, 낡은 집들도, 햇볕에 그은 주민들의 얼굴도, 진한 색 일색의 옷차림들도, 하물며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마저도 낯이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북쪽 주민들에겐 형형색색으로 단장한 남쪽 방문객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특별한 사람들도 아닌 20대 청년에서 80대에 어른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남녀노소들이었기에 그들이 받는 충격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단 60년, 야속한 세월은 같은 민족을 그렇게 달리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나는 구룡연으로 올라가는 금강문에서 그곳에 있던 안내원 김영일(34)씨, 김영옥씨(여․37)씨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북녘 동포들의 삶, 어려운 경제, 남쪽의 정치 사회에 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대통령 탄핵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고 탄핵추이에 관해서도 궁금해했습니다. 또 자신들이 못 사는 것은 가뭄에도 원인이 있지만 북한에 대한 투자를 방해하는 미국 때문이라는 말도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못 사는 건 미국이 방해하기 때문”

해금강에서 만난 안내원 이순복(여․28)씨는 남쪽 관광객들과의 대화에 대해 “비방만 하지 않으면 무슨 말이라도 좋다”면서 “같은 민족인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대꾸했습니다. 이들은 듣던 것 보다 퍽 유연하고 친절한 자세로 남쪽 관광객들을 대했습니다. 입북할 때 “정치얘기는 일체 하면 안 된다”던 남쪽 안내원의 사전주의가 무색했습니다. 물론 떡 조각을 남쪽에서처럼 무심히 버린 50대 아주머니가 혼쭐난 것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남쪽에도 잘 알려진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세계정상이라는 그들의 놀라운 묘기도 묘기이려니와 황막한 산과 들,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고있는 빈곤한 주민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우리의 동족, 혈육일진대 도대체 신기(神技)나 다름없는 저 화려한 묘기와 먹을 것이 모자라 허기를 달래고있는 주민들의 고통은 어떤 상관이 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도 여러분의 조국입니다”

금강산 관광은 몇 해 전 만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 입니다. 그러나 지금 날마다 고성의 남쪽 출입국관리소 광장에는 전국에서 올라 온 버스와 관광객들이 차산인해(車山人海)를 이루고있습니다. 그것도 도시 농촌 가릴 것 없는 젊은이에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의 보통 사람들로 말입니다.

10시간이 넘게 배를 타고 바다를 돌아가야 했던 금강산 길은 이제 육로로 1시간이면 도착하고 있습니다. 남측에 의해 지금 한창 공사중인 철로가 개통되면 서울에서 30분이면 금강산에 닿을 수 있다고 합니다. 관광을 마친 사람 중에는 이나마 길이 뚫린 것을 두고 “정주영이 200살은 살았어야 했다”는 이도 있었고 “김대중이가 통일의 물꼬를 터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이도 있었습니다.

지만 참으로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입북할 때나 남으로 올 때나 북쪽 경무원(헌병)들의 그 살벌한 태도 말입니다. 날선 눈초리로 사람마다 노려보는 그 겁나는 표정은 '이 사람들이 내 민족인가'하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도대체 ‘조국도 하나’, ‘민족도 하나’라면서 멀리서 찾아온 동족들에게 그렇게까지 대해야하는지, 조금만이라도 유연하면 안 되는 것인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대치상태의 관계라 할지라도 날마다 매일 천 여명이 넘는 관광객이 들어오고 나가는 상황이라면 “어서 오십시오. 여기 역시 여러분의 조국입니다”라고 한다던가,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하고 인사 한마디라도 해 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군사 분계선을 넘는 순간 우리 국군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 줄 때 그런 아쉬움은 더욱 더 절실했습니다.

“통일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금강산에도 봄은 와 있었습니다. 산자락 구비 구비에는 나무들이 꽃망울을 틔우고 있었고 메마른 도로변에도 개나리는 수줍게 피어 있었습니다. 남녘에서 올라오는 성급한 화신은 천리 길을 마구 달려 이미 이곳 북녘 땅 금강산에까지 올라와 있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고요. 그리고 인간들은 왜, 이념의 노예가 되어 동족도 원수가 되어 싸워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또 생각했습니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자연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자연을 보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배곯지 않고 사는 일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 남과 북이 서로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내나라 북녘 땅을 60년 세월의 시공을  넘어 다녀 온 감회는 그렇습니다.                         -금강산에서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