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무는 아직 남았습니다. 의궤가 다시 프랑스로 가지 않고 한국에 영원히 남도록 노력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역 땅 프랑스에서 빼앗긴 우리 옛 왕실 문서 발굴·연구에 평생을 바친 노학자가 지난 6월 한국에 찾아와 던진 당부는 끝내 유언이 됐다. 조선왕실 최고급 고문서인 외규장각 의궤의 한국 소유권 반환이란 필생의 소원은 결국 생전 이뤄지지 않았다. 1979년 의궤를 프랑스에서 찾아내 반환 물꼬를 텄던 재불 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23일 새벽(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

지난해 직장암 수술 뒤 투병해온 그는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의궤를 강탈해간 병인양요의 전말을 추적한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속편을 계속 집필하면서 의욕을 꺾지 않았다. 1955년 서울사대 졸업 뒤 프랑스 파리 7대학과 프랑스 고등교육원에서 역사학·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타계 때까지 쉼없이 현지에서 의궤와 병인양요 연구의 역정을 이어왔다.

1972년 세계 최고의 고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낸 데 이어 그 7년 뒤 190종 297권에 달하는 조선왕실의궤까지 확인하면서 문화재반환운동사에 기념비적 업적을 쌓은 그의 연구는 유학을 떠날 당시 대학 은사였던 역사학자 이병도의 당부에서 비롯됐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고서들을 빼앗아갔다는데, 현지에서 찾아보라”는 스승의 말을 그는 잊지 않았다. 현지 도서관, 박물관 등의 목록을 일일이 찾아 뒤지는 수십년 고행이 시작됐다. 1969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에 취직한 뒤에도 이런 고투는 계속됐다. 75년 파리 교외 베르사유궁 도서관 별관에 파손 책 보관소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파란 천이 씌워진 의궤를 발견했던 당시를 그는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한순간”이라고 떠올리곤 했다. 이런 공로로 2007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지난 9월엔 모란장을 받았다.

19년간의 환수 교섭 끝에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대여 형식으로 145년 만에 고국 땅에 모두 돌아온 건 “가슴이 뭉클했고 뭐라 표현할 길 없었”던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유권을 못 찾았다는 게 너무 맘이 아프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나라 것이라면 어디에 있어도 괜찮다”고 했던 그의 염원은 결국 후대의 한국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정부는 고인의 업적을 기려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 초 고인에게서 고국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확인했다”며 이날 국가보훈처에 국립묘지 안장 심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유족에게 조전을 보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박 박사의 깊은 애정과 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위로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파리 현지 한국문화원에 마련됐으며, 한국박물관협회도 23일 저녁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내 빈소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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