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건축은 생각을 짓는 것” 강조

“문학적 상상력 없이 어찌 방다운 방 하나 제대로 구축해낼 수 있겠는가. 모양이야 그럴 듯하게 꾸릴 수 있을지 모르나 삶의 형식과 내용까지 재구성해 내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문학과 건축은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나 다름없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동무가 되어주고 깊이를 더해가며 교제할만한 맞상대인 것이다.”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는 인문학적 건축가다. 생긴 건 딱 옆집 아저씨 같은데 문학적 감수성이 대단했다.

▲ 김억중 한남대 교수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과 건축 사이야말로 녹녹치 않은 세상살이, 부박하기 그지없는 세태를 거스르며 삶의 지표를 부단히 증거해야 하는 공동운명체가 아니겠는가. 문학과 건축을 곱게 접어 ‘그 자리, 그런 집’이 뚜렷이 찍힌 데칼코마니를 완성하고 싶다.”

지난 17일 ‘청주인문학교실’ 강사는 김억중 교수였다. 그의 저서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와 같은 주제로 강의를 했다. 문학속에 비친 집의 모습은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집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는 되물었다. 그런데 왜 문학인가. “집이라는 장소와 더불어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근본부터 묻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가 늘상 하는 말은 “생각을 짓는 것이 곧 건축”이라는 것이다. 설계도면에 단순히 선을 긋는게 아니라 그 자리, 그런 집, 그런 삶이 맞아 떨어질 때까지 그리고 또 그린다는 것. 그 자리와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집을 설계한다는 얘기다.

집에 대한 8가지 키워드

그러면서 집에 대한 키워드 8가지에 대해 강조했다. 문학에서 건져올린 키워드다. 추억을 내장하고 있는 집, 즉 추억이 깃든 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 여기서 김 교수는 나희덕 시인의 ‘방을 얻다’라는 시를 소개했다. 방을 얻으러 간 시인에게 주인집 아주머니는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이씨 집안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했다는 시다. 이 대목에서 한옥은 아파트와 구별된다. 아파트는 주변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식이 없고, 사람 사이의 단절 역시 집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아파트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건축은 변화하는 것(자연)과 고정된 것(집)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라서 고정된 것이 변화하는 것과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따라 좋은 집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집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는 재미가 없다. 원룸아파트에 사는 부부가 싸우고 나면 한 사람이 집을 나가고, 그렇게 되면 이혼을 하게 되는 것도 공간 탓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또 집은 어떠해야 하는가. “갈등을 푸는 곳, 혼자 즐길 수 있는 곳, 비움의 미학이 있는 곳, 감각의 제국, 안과 밖이 소통하는 곳이 돼야 한다.” 김 교수는 이 중 혼자 즐기는 심신수련의 장을 독락당(獨樂堂)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이언적 선생의 독락당을 소개했다. 독락당과 계정이 서로 과정이 되어주는 상생의 공간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섬을 오가며 열고 닫는 과정을 거쳐 은밀하고 깊은 독락의 세계, 무인도의 고고한 삶을 누렸다는 얘기다. 따라서 집은 어린시절 몸을 숨겼던 다락방이나 헛간, 골방처럼 나 혼자의 꿈을 펼치거나 위로받는 공간 역할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편의위주로 대량생산된 아파트에 사는 나는 진정 나의 취향대로 살아가고 있나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억중 교수는 누구?
문학이라는 창 통해 건축 바라보는 사람···공주 어사재 등 다수 설계

김억중 교수는 저서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서울대 건축과에 진학했지만, 거리에 화염병이 날아들던 시절 탓에 수업 한 번 제대로 못받고 학사모를 쓰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행운으로 스위스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로잔연방공과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한남대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행복을 얻었다. 오늘도 책 내음 가득한 작업실에 앉아 책장을 뒤적이며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맺어주는 집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매년 한 건씩 집을 설계한다. 다작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는 집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고 이를 설명하는 시나 산문(기문:記文)을 써서 집주인에게 선물한다. 공주 어사재, 논산 수경당·사미헌·애일헌, 천안 완락재, 광주 사가헌, 대전 무영당 등이 그가 지은 집이다. 대전 아주미술관과 유성문화원도 그의 작품.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을 얘기하기 위해 ‘김억중 전:공간-기호의 질서와 힘’ ‘건축가 김억중의 수작전’ 등의 전시회를 열고 ‘프랑스 문화예술,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 ‘건축가 김억중의 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 등의 책을 펴냈다. 충남 공주시에는 단무지공장을 개조한 자신의 집 ‘무호재’가 있다. 호가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한남대 자신의 연구실을 수도원 같은 분위기로 확 바꿨다. 어쨌든 그는 문학적·철학적 사유속에서 집을 설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럴까. 까다롭다는 소리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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