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김 주한 미국대사 충주와 인연 화제
상태바
성김 주한 미국대사 충주와 인연 화제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1.11.17 1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친 김기완 전 주일대사, 음성서 태어나 충주서 교편
큰아버지는 충주서 4선 제헌의원…축하 현수막 내걸려

10일 공식 부임한 성김(Sung Kim, 한국명 김성용·51·사진) 신임 주한 미국대사의 국내 인맥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충주가 반기문 신드롬에 이어 성김 신드롬에 휘말리고 있어 화제다. 이는 민주평통 충주시협의회와 충주시정 동호회가 김 대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충주시내 곳곳에 내걸고 언론이 배경을 취재하면서 지역에 알려졌다. CJB청주방송 10일, 충청타임즈가 14일 관련내용을 보도했다.

성김 대사의 국내 인맥이 관심을 모은 것은 1882년 한미수교 이후 129년 만의 한국계 주한 미국대사인 성김이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뒤 197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교포이기 때문이다. 김 대사는 로스쿨을 거쳐 검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외교관으로 이직해 주일·주한 대사관 등에 근무했다.

김 대사는 특히 국무부 한국과장, 북핵 6자회담의 미국 측 대표단 일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대북특사로 북한을 10여 차례나 직접 방문했다. 김 대사는 이 과정에서 박근혜·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유력 정치인들과 교감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적으로는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서울 성북동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절친한 사이로 확인됐다. 정 전 수석이 1993년 언론사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한동안 김 대사 집에서 신세를 졌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는 함진아비를 맡았을 정도. 이밖에 김 대사는 가수 임재범의 고종사촌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기도 했다.


대북특사 활약 유력정치인과도 교감

그러나 한국에서 10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성김 대사와 충주의 인연은 지역민들도 의아해하는 부분이다. 이는 김 대사의 선친 김기완(1926년생) 전 주일 공사가 음성 출신이고 상당기간 충주에서 거주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음성 수봉초등학교를 졸업한 김 전 공사가 국군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하기 전까지 충주여중에서 교편을 잡았다는 것이다.

특히 김 전 공사는 지난 1973년 주일 공사로 재직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김 전 공사는 당시 납치지시가 내려오자 이철희 중앙정보부 차장에게 강력히 반발해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서명을 확인하기 전까지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버텨 끝끝내 김 전 대통령을 사지에서 구해냈다는 것이다.

김 전 공사는 1974년 도미한 뒤 줄곧 1급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다 1979년 3월 27일 한국보험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1982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뒤 1994년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김 대사의 큰아버지도 충주와 인연이 깊다. 큰아버지인 김기철씨는 제헌국회 충주군 국회의원(4선)을 지냈고, 체신부장관을 역임했다.

김 대사의 선친과 충주의 인연은 충주여중에서 교편을 잡을 당시 함께 근무했던 김영호(90)씨를 통해 공개됐다. 축하현수막을 게시한 박인규 민주평통 충주시협의회장은 “김 대사의 출생지가 서울이지만 선친과 큰아버지가 충주 출신이라면 사실상 고향은 충주가 아니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함께 충주의 자랑거리라는 생각이 들어 5곳에 현수막을 걸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이종배 충주시장, 김헌식 충주시의회 의장, 김영호씨 등도 김 대사의 취임에 맞춰 축전을 보냈다.


재미언론인 안치용의 <SECRET OF KOREA>
‘성김 선친과 DJ납치사건’지난 5월20일 보도

성김 주한 미국대사의 선친인 김기완 전 주일 공사가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해 중앙정보부의 납치 지시를 거부했다는 내용은 재미언론인으로 한국과 관련한 대외비 수준의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 안치용의 <SECRET OF KOREA>를 통해 지난 5월20일 보도된 것으로 확인됐다.

<SECRET OF KOREA>에 따르면 김 전 주일공사는 자신이 탄 항공기가 북으로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송환되는가 하면 가명으로 주일 공사를 지내고, DJ납치사건에 연루,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의 친분 등으로 도피성 미국이민까지 떠나야했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김 전 공사는 1958년 2월 공군 정훈감 시절 부산을 이륙, 여의도로 향하던 ‘창랑호’ 납북사건 때 북으로 납치됐다가 20여일 만에 극적으로 송환됐다는 것이다. 이후 1973년 김재권이라는 가명으로 주일 공사로 재직하면서 DJ 납치지시를 거부한 것 등에 비춰볼 때 당시 중앙정보부와 깊숙한 관계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SECRET OF KOREA>는 ‘국정원 보고서’를 인용해 “김 전 공사는 김형욱과의 인연도 각별해 1973년 1월5일 김형욱의 부인 신영순이 극비리에 미국으로 출국할 때 재일교포 김희순 명의의 여권을 제공했고… (중략) 1974년 5월 일본인으로 위장해 미국에 체류하면서 김형욱을 만났고, 김형욱은 이 자리에서 김 전 공사에게 50만달러를 주며 ‘자신과 함께 반(反) 박정희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으나 단호히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안치용씨는 기사를 올리면서 쓴 짧은 후기에서 “글을 쓴 뒤 적지 않은 시간, 공개와 비공개 버튼을 누르며 망설이다가 공개한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는 성김 과장(특사)이 주한 미국대사 물망에 오르던 시점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