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강영주 교수·충북작가회의 합작품···운영비 내놓고 논문발표, 문인 초청

‘홍명희문학제’는 벽초를 살려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선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오랫동안 금기시 돼왔던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생가를 복원하고, 소설 ‘임꺽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제 16회 홍명희문학제가 지난 5일 괴산 생가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있었다. 아직도 이념논쟁이 가시지 않은 지역에서 홍명희문학제를 이끌어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주최측 스스로 행사 운영비를 마련하고 아니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현재까지 그래왔다. 이 문학제를 이끌어가는 세 축은 사계절출판사와 강영주 상명대 교수, 그리고 충북작가회의다.

▲ 강맑실 대표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문학제 만들고 물심양면 지원
소설 ‘임꺽정’을 국내 최초로 완간한 사계절출판사는 홍명희문학제를 만든 주인공이다. 변함없이 물심양면으로 문학제에 애정을 쏟는 강맑실 대표를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만났다. 이 날 강 대표의 남편이자 사계절출판사 설립자인 김영종 씨는 축하공연으로 거문고를 연주했다. 그는 사진작가이자 거문고 연주자이다.

설립자 김 씨는 지난 85년 군사독재정권 시절, 소설 ‘임꺽정’을 출판했다. 강 대표는 “벽초가 '임꺽정'을 펴냈다는 소문만 있었지 볼 수 없었다. 벽초가 북한에서 부수상을 하면서 출판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설립자가 감옥 갈 생각하고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결국 옥고를 치렀다. 이후 도종환 시인한테 문학제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상의끝에 충북작가회의가 이를 구체화 했다”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 문학제를 추진했던 명연파 부사장은 “벽초와 소설 '임꺽정'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방법으로 문학제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사계절은 결국 이 소설을 출판한 뒤 대표가 구속되고 책이 압수, 판매금지 당하는 고통을 겪는다. 89년에서야 국가상대 민·형사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 출판사는 매년 행사경비 50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이런 돈이 없었다면 아마 행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 대표는 “벽초 선생에 대한 인세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즐겁다. 충북의 문인들이 행사를 내실있게 해나가고 강영주 교수께서 이론적 뒷받침을 해주니 앞으로도 잘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다만 괴산군과 청주시의 협조를 받을 때는 이 정권이 민주적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돼 씁쓸하다는 것. 이 말 끝에 그는 하루빨리 남북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계절출판사는 아동·청소년·인문관련 양서를 출판하는 곳으로 독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문학제 때는 직원들까지 내려올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동안 홍명희 선생에 관한 책을 4종 출간했다. 그 중 소설 ‘임꺽정’은 스테디셀러다.

▲ 강영주 교수

강영주 상명대 교수···홍명희 연구 권위자, 각종 논문 발표

강영주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홍명희 연구의 권위자다. ‘강교수=벽초 연구자’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간 ‘벽초 홍명희 연구’(창작과 비평사) ‘벽초 홍명희 평전’(사계절출판사)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사계절출판사) 등의 책을 펴냈다. 충북문인들 입장에서 볼 때 강 교수는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와 함께 매우 고마운 사람이다. 그는 지난 96년 제1회 홍명희문학제 때부터 각종 자료를 발굴해 논문을 발표하고 생가 안내를 맡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하고 박사학위 논문으로 ‘한국근대소설연구’를 썼다. 일제강점기 때 역사소설을 다루다 벽초를 만났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상층부 얘기를 썼는데 벽초는 민중들의 얘기를 했다. 소설 ‘임꺽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이다. 역사적 진실성도 느껴졌고, 당시 언어에 끌려 벽초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사계절출판사에서 소설 ‘임꺽정’을 펴냈고, 나는 '역사비평'에서 청탁을 받아 9년 동안 원고지 3000매 분량의 논문을 연재했다.”

실제 소설 ‘임꺽정’ 연구는 지난 86년, 홍명희 연구는 지난 91년부터 시작해 모두 20년이 넘었다. 강 교수는 그래도 할 일이 많다며 의욕을 보였다. 통일후에는 홍명희의 월북이후 활동에 대해 연구하고 싶고, 아울러 아들인 홍기문과 손자 홍석중에 대해서도 관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것. “홍기문은 벽초의 학문을 계승했다. 훈민정음을 연구한 ‘정음발달사’를 펴냈고, ‘조선왕조실록’ 연구를 총괄했다. 이 책은 남한 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소설 ‘황진이’를 펴낸 홍석중도 연구대상이다. 벽초의 아버지이자 항일운동가였던 일완 홍범식은 또 ‘일완시고’라는 글을 남겼다는 자료가 있다. 근현대사에서 이런 집안은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홍씨 일가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 홍명희문학제는 역사도 오래됐고 내용도 알차다. 참석자들은 괴산 홍명희문학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충북작가회의···운영비 모으고 행사 기획
충북작가회의(회장 김성장)는 홍명희문학제를 이끌어가지만, 지자체 예산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지난해 괴산군이 3000만원의 예산을 주겠다고 했으나 보훈단체가 ‘빨갱이 행사에 왜 주느냐’며 반발하자 번복하고 말았다. 회원들이 돈을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안정적인 예산을 갖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은 오장환문학제가 군·도비 4500만원, 옥천의 지용제는 문학상 포함 군비 3400만원, 그리고 단양의 시조문학제가 군비 2000만원의 예산을 받고 있는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행사장소도 괴산군에서 협조를 해주면 그 곳에서 하고, 안되면 청주에서 하는 식으로 해마다 왔다갔다 하고 있다.

김희식 충북작가회의 부회장은 “문인들이 십시일반 모금한 것과 사계절출판사에서 고정적으로 내놓는 돈을 합쳐 행사를 해오고 있다. 행사가 하루로 끝날 때는 1000만원 내외, 1박2일은 2000~3000만원 가량 들어간다. 가끔 중앙에서 문예진흥기금을 받을 때도 있지만 충북도내에서 받은 적은 없다. 그래도 예산이 있는 해는 청주와 괴산 양쪽에서 했고, 없을 때는 양 지역중에서 하루행사로 끝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홍명희문학제는 오랜 역사와 내용이 있는 행사로 문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해마다 소설 '임꺽정'을 언어학적·민속학적·지리학적·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발표하고 저명한 문인들이 '내가 읽은 임꺽정'을 낭독한다. 그동안 김훈·현기영·신경림·김별아 씨 등이 다녀갔다. 올해는 소설가 송기원과 김종광 씨가 나섰다. 그리고 제10회 때는 학술논문집 '통일문학의 선구,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을 펴냈다. 120명의 회원을 둔 충북작가회의는 이외에도 권태응문학제와 각종 세미나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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