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스페코중공업 노사교섭 과정 노조측 6명 감금죄 기소
민노총충북본부,‘상급단체 실무자 엮어넣기 전략 아닌갗 반발

지난해 5월 22일 음성군 소이면 스페코중공업 앞길에서 이 회사 노동자 김세만씨(당시 53세)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숨진 김씨는 노조원이었고 스페코 중공업은 6개월째 노사분규를 겪고 있는 사업장이었다. 이튿날 격앙된 분위기의 영안실에 회사 임직원 2명이 조문을 왔다. 이들은 노조원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내 노조사무실에서 노사대화를 벌이게 된다. 또한이날 밤늦게 회사 임원과 노조 대표간에 제3의 장소에서 최종 타협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사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스페코중공업 대표이사가 노조 집행부 3명을 감금폭력 혐의로 고소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대표이사는 고소장을 내고, 이사는 노사 타협안을 만드는 ‘이중 플레이’가 되버린 것. 하지만 검경은 8개월에 걸친 장기간 수사끝에 노조 집행부 2명과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실무자 2명, 민주노총 충북본부 실무자 2명에 대해 폭력 등(감금치상 공갈)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처분을 내렸다. 특히 상급단체 실무자 4명은 회사측의 고소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검경의 수사확대에 따라 일괄 기소처분을 받았다.

이에대해 노조측은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노사교섭을 벌인 것인데, 회사측의 일방적인 주장과 수사기획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회사측은 “당사자들의 구호요청에 따라 직원이 직접 112에 신고했고 경찰 상황보고에도 감금상태로 명시됐다”며 피해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사망 노동자의 영안실 병원에서 진행된 노사간의 6시간에 걸친 대화가 과연 감금협박에 의한 것인지, 자의에 따른 노사교섭이었는지 쟁점을 재구성해 본다.

원직복직 통보받던 날 사고당해
노조원 김세만씨가 교통사고로 숨진 지난해 5월 22일은 부당해고됐던 숨진 김씨가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원직복직 결정서를 통보받은 날이었다. 77일간의 천막농성과 부당해고에 심신이 지쳐있던 숨진 김씨는 기쁜 소식을 가족들에게 서둘러 전하기 위해 회사를 나서다 운전부주의로 사고를 낸 것이다. 회사측의 폐업 압박에 장기파업을 마지못해(?) 중단했던 노조원들은 김씨의 퇴근길 사고사에 대해 서러움과 분노가 겹칠 수밖에 없었다. 고인의 빈소는 음성 성모병원에 마련됐고 이튿날인 23일 오전 10시 40분께 스페코중공업 서준덕 부사장(52)과 김유겸 이사(46)가 조문을 하기위해 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던 중 노조원들이 차량을 가로 막았고 결국 병원 노조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노조집행부와 대화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해당 임원 2명은 ‘집단적인 행동에 위협을 느꼈고 서너차례 맞기도 했다. 노조원들에게 강제로 끌려간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조측은 ‘그냥 나가려는 것을 막은 것은 사실이지만, 노사간 대화 요구를 두 사람이 동의했기 때문에 자리를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낮 11시께 병원 노조사무실에 회사 임원 2명과 노조 집행부, 상급단체 실무자 등이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노조측은 ‘유족보상금 3억원, 노조 전임자 1.5명, 임금 10% 인상, 미합의 단체협약 추후 논의, 선타결 후장례’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측 임원 2명은 난색을 표했고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2시간 대화하다 ‘감금 신고’ 전화요청
협상이 지연되자 노조측은 점심식사를 제안했고 사측 임원들이 거절하자 노조원이 구내식당 점심을 타다가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후들어 사측 김유겸이사는 조문에 동행한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모부장에게 손전화를 걸어 “이건 협상이 아니고 사람을 감금하고 피말린다. 얼른 경찰에 연락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따라 민부장은 오후 1시께 음성경찰서에 112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원 2명이 노조에 ‘강제로 끌려간 지’ 2시간여만에 경찰 신고를 한 셈이다.

이에대해 민부장은 “처음에 노조원들이 임원 두분을 끌고갈 때는 ‘대화하러 간다, 잠깐이면 된다’고 얘기해 감금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에 김이사님이 전화로 경찰신고를 하라고 해서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평소 알고있는 정보과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감금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고 112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오후 1시 무렵 충주 케이블TV 방송사인 CCS방송의 K기자가 사무실로 찾아와 노사 양측을 취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취재를 했던 K기자는 “대략 30분 정도 취재를 했는데 병원노조 사무실에서 노사 양측의 의견을 다 들어봤다. 사측 임원들도 분명하게 회사입장을 밝혔고 억압되거나 감금된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만약 강제된 상황이라면 취재진에게 어떤 어필을 했을텐데, 그런 기미는 없었다. 당시 노사 주장을 모두 담아 기사편집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부하직원에게 ‘감금당했으니 신고하라’고 황급히 지시한 두 임원이 같은 시간대에 만난 방송기자의 카메라 취재에 자연스럽게 응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경찰 근로감독관 ‘노사협상중’ 가로막혀
한편 신고를 받고 오후 2시께 음성서 수사과장, 정보계장 등 7명의 경찰관이 성모병원에 도착했다. 이들은 노조사무실에 들어가 감금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노조원들이 ‘노사협상중’이란 이유로 출입을 막았다. 경찰은 현장 대기상태에 돌입했고 오후 3시 30분께 충주노동사무소 피모 근로감독관이 회사측 직원의 연락을 받고 현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피감독관도 노조사무실에 앞에서 ‘김유겸이사와 대화중’이라는 임근빈 노조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돌아갔다. 피감독관은 “통상 노사 양측 모두 허락해야만 협상장소에 참여할 수 있다. 노조위원장이 노사대화 중이라고 설명했고 기다려달라고 요청해 억지로 들어가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감금당했다는 내용의 회사측 고소에 대해서는 “감금인 지, 변형된 협상의 수단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도 대답했다. 취재진이 ‘변형된 협상의 수단’에 대해 질의하자 “통상 노사협상은 공식협상이 아닌 형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팽팽한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제3의 장소에서 이뤄질 수 있다. 대화기법이나 장소 등이 공식화 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회사측으로부터 감금됐다는 전화를 받고 현장방문한 근로감독관이 노사교섭 사무실을 굳이 들어가려 하지 않은 것은 현지 상황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아닌가?”라고 추가질문하자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직답을 피했다. 오후 3시께 성모병원에는 음성경찰서장까지 찾아왔고 노조측은 ‘노사협상중’이라며 사무실 출입을 계속막자 4시 15분께 경찰의 최후통첩이 전달됐고 결국 4시 30분께 노조는 경찰의 출입을 허용했다.

사무실에서 수사과장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감금신고를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서준덕 부사장이 ‘지금 감금당한 상태이니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함께 있던 김유겸 이사는 ‘부사장님 혼자 나가라, 나는 좀 더 얘기하겠다’며 남기로 자청했다는 것. 결국 10여분뒤 경찰측의 요구에 따라 김이사도 밖으로 나갔고 모든 상황은 종결됐다. 하지만 김이사는 이날 밤 8시께 소이면 모식당에서 금속노조 이정훈지부장을 따로 만나 노사간 잠정합의안을 만들었다.

상급단체 노조실무자로 ‘과녁’ 확대해
당초 회사측은 스페코중공업 노조 집행부 3명를 상대로 고소장을 냈고 경찰의 초기 수사도 3명에 집중됐다. 하지만 9월들어 민주노총충북본부, 금속노조 충북지부 실무자들이 배후지시 여부에 대한 수사로 확대됐다. 특히 민주노총충북본부 김재수 사무처장은 당일 오전 병원노조 사무실에서 노사교섭을 참관하다 오후 12시 30분께 괴산으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감금폭력의 배후로 지목됐다. 또한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서류에 지난해 2월 충주에서 발생한 충효택시 노조 폭력사건의 수사재판 서류 100여쪽을 첨부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김처장은 당시 참고인 조사조차 받지않은 무관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민노총충북본부의 노사분규 현장 배후조종 혐의를 주입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첨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 노동계에서는 “민노총 상급단체에서 노사현장을 방문하고 협의하는 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다. 지역 노동계의 사안에 민노총 본부 실무자가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폭력적 비이성적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전문성있는 노동운동가가 조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폭력사태는 해당 사업장 노조에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발생한 경우인데, ‘마녀사냥’식으로 노동운동가를 범법자로 모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지금이 어느 땐데, 감금을 시키면서 노사교섭을 한 단 말인가?”이라고 반문했다.

스페코중공업 어떤 회사인가
음성군 소이면 위치한 스페코중공업(현 SHI주식회사)은 법정관리중이던 한라중공업을 (주)스페코가 지난 99년 인수해 설립했다. (주)스페코는 97년 설립됐고 소유주인 김종섭회장은 IMF직후 ‘캐피탈라인’이라는 구조조정 회사를 만들어 ‘기업사냥’에 나서게 됐다. 스페코중공업은 경영여건 악화를 이유로 2년간 직원 임금동결, 후생복지 저하 등을 요구했고 2002년 10월 전체 직원 120여명 가운데 70여명을 이동시키는 대대적인 내부 전직으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같은해 11월 스페코중공업 노조가 설립돼 민주노총 금속노련에 가입했다. 노조가 설립되자 회사측은 노조간부 5명을 해임하는등 총 14명을 정리해고시켰다. 하지만 충북지방노동위원회는 2개월뒤 회사측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며 전원 원직복직 결정을 내렸다. 회사측은 정리해고 이유로 기업 경영악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자본주인 (주)스페코 2002년 7월 국내 최대 악기회사인 삼익악기와 독일 피아노업체를 인수한데 이어 올해 2월에는 영창악기까지 접수해 세계적인 악기업체로 부각됐다. 김유겸이사는 (주)삼익악기 노무팀에서 일하다 2002년 11월 스페코중공업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자 이듬해 1월 스페코중공업으로 전격 발령된 것으로 확인됐다. 스페코중공업은 지난해 8월 1일자로 폐업했고 장기간 파업등으로 이중고를 겪어온 노조원들은 ‘위로금’조차 없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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