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 역설

▲ 장회익 교수

‘온생명’ 이론을 아는가. 이 용어는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처음으로 썼다. 그는 지난 88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렸던 국제과학철학세미나에서 ‘글로벌 라이프’(global life)라는 용어를 쓴 뒤 몇 년 후 온생명·낱생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장 교수는 지난 10월 27일 있었던 ‘청주인문학교실’에서도 ‘온생명과 환경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의 온생명 이론을 책에서는 많이 봤으나 실제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온생명은 생명의 자족적 단위이다. 그 자체로 생명이 된다. 그런데 ‘낱생명’은 밖으로부터 결정적 도움을 받아야 생명으로 존재한다”고 단적으로 표현했다. ‘나무’가 온생명이라면 ‘나뭇잎’은 낱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보생명’이다. 개별 낱생명을 살아있게 만들어주고, 그 낱생명에 대응하는 것이다. 낱생명 또한 보생명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임에 틀림없다. 그럼 사람은? 사람은 온생명안에 있는 낱생명이라고 한다.

장 교수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온생명에 속하는 모든 낱생명들은 온생명과 분리돼서는 생존이 유지될 수 없고, 외부상황에 의존하지 않는 온생명 또한 내적 구성요소들간의 정교한 조화에 의해 기능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생명이 사람 세포 하나하나 안에 들어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듯이 생명이라는 것도 낱생명안에 들어있다기보다 온생명안에 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생명의 가치에 대해 다른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온생명에 대해 한차원 높은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인간 또는 개별 낱생명에 가치기준을 두었다면 이제는 온생명, 그리고 온생명의 정상적 존재양식에 기준을 두고 생명을 대하라는 말이다.” ‘나’는 오랜 시간이 쌓이고 쌓여 태어나는 만큼 개체로서의 ‘나’가 아니라 온생명으로서의 ‘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도 온생명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

“행복하게 살아라···공부도 즐겁게”
장 교수의 강의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환경운동으로 넘어갔다.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규모의 멸종을 이끌어가는 환경훼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래서 온생명도 살리면서 우리 또한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 여기서 그는 살기좋은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려 보람된 삶이 이뤄지는 곳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막혔던 생명의 흐름이 다시 뚫리는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 아직 남아있는 지역 생태계를 최대한 보존하고 이미 파손된 부분을 복원해서 온생명의 기가 흐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자연의 일부가 돼서 내 손으로 필요한 만큼만 마련하고 자취없이 소비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땅과 사람이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는 온생명적 생존양식이다. 나머지 하나는 모두가 참여하는 문화의 한마당, 창조의 한마당을 만들자는 얘기다.”

문화의 한마당도 우리 동네 마당에서 출발해 우리 지역 축제에서 꽃 피우고, 그래도 남는 아름다운 향기와 불빛은 온 세계로 퍼져나가라는 이 대목이 특히 와 닿았다. 사람은 땅에 발붙이고 있지만, 머리는 끝없는 하늘을 향해 있듯이 내가 딛고 사는 지역사회에서 시작하라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내가 꿈꾸는 세상 만들기도 지역사회에서 시작돼야 한다. 우리 지역을 살기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나 자신을 살리고, 온생명을 살리는 길이라는 게 장 교수의 주장이다. 지역을 외면하고 중앙, 세계를 생각할 수는 없다.

그는 중요한 말 한마디를 더 던졌다. “‘나’라는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30~40억년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야 한다. 20~30종의 원자가 모여 매우 정교한 질서로 사람을 만든다. 그러나 사람은 제한된 시간을 살고 있는 만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행복하게 살아야지, 공부도 즐겁게 하고.”

장회익 교수는 누구?
‘온생명’이론 처음으로 체계화
물리학자이면서 인문학전반 연구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73)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한국물리학계를 대표하는 중진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청주와는 인연이 깊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으나 청주공고를 졸업했다. 그는 과학이론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학문의 통합과 소통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과학자적 시선으로 폭넓은 인문학적 주제들을 연구하고, 그 결과 내놓은 게 ‘온생명’이론이다. 생명과 자연의 본질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사회와 문명 문제에 혜안을 제시하고 있다.

장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30여년간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국내 최초 대안대학인 녹색대학 총장과 학교법인 한성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책도 많이 펴냈다.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이분법을 넘어서’ ‘공부도둑’ ‘온생명과 환경, 공동체적 삶’ 등이 있고 공저로 ‘새들은 과외수업을 받지 않는다’ ‘삶, 반성, 인문학’ ‘전환의 모색’등이 있다. 이 날 강의가 끝난 뒤 온생명에 대해 묻자 장 교수는 친절하게 설명해준 뒤 가방에서 ‘물질, 생명, 인간-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이라는 책을 불쑥 꺼내 주었다. 그에게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색하는 학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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