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예술단은 지난해 12월 28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예술가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시·도립 예술단에 노조설립 바람이 분다고 해도 청주시립예술단은 (재)세종문화회관과 전북지역 국악원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노조를 창립, 느리기로 소문난 청주사람들의 성격을 예상외로 뒤엎었다.
그러나 김동기 청주시 부시장(52)은 이 일로 인해 훨씬 바빠졌다. 시립예술단장인 부시장에게는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 임무가 곧바로 주어졌다.
더욱이 청주시로서는 노동관계법을 들추며 노조를 상대로 단체협상을 진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 업무가 생소하고 달가울 리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골치아픈 일 일 수도 있다. 지난 8일 기자는 김동기 부시장을 만났다. 그는 기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노조 설립은 시기상조”라며 모두에서부터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 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것이 청주시로서는 처음있는 일인데 해보니까 어떤가.
“힘들다. 노사협상 업무가 현재 자치단체와 노동사무소, 노동위원회 등으로 삼원화 돼있는데 이것도 문제다. 이미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전북이 예술단 노조와 교섭을 시작했고 이어 우리가 하고 있는데 시 단위로는 청주시가 처음이다. 어쨌든 나는 이 업무도 물흐르듯 순리대로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쪽이 너무 일방적인 요구를 해오고 있다.”

- 이제까지 노사양측은 7차례의 대표교섭과 4차례의 실무교섭을 벌였다. 그동안 진행된 사항을 알려달라.
“기본협약 사항은 거의 합의가 됐고 156건의 단협안을 가지고 진행중에 있다.”
이 말 끝에 기본협약은 단협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 같은 것이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실제 합의한 것은 거의 없지 않느냐고 하자 김 부시장은 “노사협상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사무실만 해도 그렇다. 무용단은 현재 연습실이 없어서 야단인데 노조에서는 처음에 전화기와 복사기를 달라고 했다가 지금은 40평짜리 사무실을 요구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 그럼 현재 양측의 단체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안된다면 무엇때문이라고 보는가.
“사측은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노조측이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큰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치는 등 ‘자세’에 문제가 있다. “너 그만둬라” “맞아볼래” 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데 서로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는 우리나라 유교문화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게다가 노조는 너무 과도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잘하는데 노조만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냐고 하자 김 부시장은 “물론 우리도 잘못하는 점이 있다”고 말끝을 흐리며 “지난 90년에 프랑스와 영국에 갔을 때 그 곳 시장이 ‘여기는 한국처럼 노조가 강하지 않으니 한국인들이 여기와서 기업을 하도록 도와달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때 받은 인상이 강해 나는 어디를 가든 이 얘기를 한다”고 강조했다.

- 이 말씀은 노조가 필요없다는 뜻 같은데…
“그런 것은 아니다. 노조도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너무 짧은 시간에 목적달성을 하려고 하면 그릇 자체가 깨지고 만다”

- 부시장께서는 시립예술단에서 노조를 설립한 것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얼마전 간담회 석상에서 참석자들 대부분이 예술가는 순수하게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나역시 같은 생각이다. 노조활동을 하면 본업에 충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정자립도가 70.8%인 청주시에서 4개의 예술단을 운영하고 있으나 상임화율이 57.2%밖에 안된다. 이것이 100%가 돼서 예술단이 제대로 돌아갈 때 쯤이면 여건이 될까 현재는 너무 이른게 아닌가 생각한다.”

- 노조측에서는 충북대병원과 평화택시 단체협상시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던 신 모 노무사를 교섭위원으로 위촉한 사실에 대해 발끈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신 노무사는 노조를 자극해 노사관계를 악화시킨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우리가 노조업무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전문가를 초빙하게 됐고, 그중 신 노무사가 충북지역에서 가장 권위자라고 들었다. 청주시가 충북대병원, 평화택시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게다가 모든 것을 노조 입맛대로 움직여야 하는가.”

국악단의 해촉자 2명과 임기만료된 무용단원 1명이 연일 복직을 주장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김 부시장은 “대통령도 전문가의 평가에 대해서는 말 못하는 것”이라며 시시비비를 일축했다. 또 일부 실무자 선에서 문제를 삐딱하게 처리, ‘정치적 음모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충북도가 지난 92년, 매년 10억원의 예술단 운영비를 청주시측에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한번도 이행을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았다. “현재 4개의 예술단 중 2개를 충북도에서 가져가거나 운영비를 지원해달라고 했으나 답변이 없다. 충북도는 예술의 전당을 짓다가 예술단 운영 부담까지 얹어 청주시에 넘겨 버렸다. 그러다보니 상임화율도 떨어지고 작품의 질적 수준도 낮아지고 있다.”
지난 75년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김 부시장은 청원 남일 출신으로 내무부와 충북도 지역경제국장·공무원교육원장, 보은군수, 청와대 민원비서관실, 충주시 부시장 등을 역임했다. 모든 것을 상식과 순리로 풀어나간다며 ‘순리’를 여러 차례 강조한 그는 노조측에서도 단체교섭이나 단원 해촉만 가지고 문제삼을게 아니라 예술단 발전이라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일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홍강희 교육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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