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자 충북여성정책관 임용예정자

충북도는 지난 4일 충북여성정책관 임용예정자로 민경자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부장(50)을 확정 발표했다. 정영애 전 여성정책관이 지난해 12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균형인사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채를 거쳐 이 날 최종 선정됐다. 여성정책관 공모사실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도내뿐 아니라 타지역 여성들에게도 관심을 불러 일으켜 1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후문이다. 아직 신원조회가 끝나지 않아 정식 발령을 받지 않았지만 향후 충북 여성정책의 ‘키’를 쥘 민경자 부장을 만났다.

그는 5년 동안 충남여성정책개발원에 근무하면서 잠시 청주를 떠나 있었지만, 충북여성민우회 공동대표·청주여성의전화 초대회장·청주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초대회장·충북여성포럼 부회장 등을 맡아 활동한 경력이 있어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얼굴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에서 터를 잡은 그는 충북도로 온 배경중의 하나가 ‘충북의 여성들과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 여성정책관에 응시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정책관은 공무원인데 공직생활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보는가.

“충남에 있을 때도 도정을 많이 알아야 연구가 가능한 분야에서 일했고 신분도 공무원이었다. 여기에 전에 여성단체 일을 경험해 여성계 현실을 좀 안다고 생각해 도전했다. 그동안 정책개발연구만 했는데 이제 그 연구를 시행할 기관에서 일하고 싶다. 정책관 역할을 하게 되면 연구자의 실정을 잘 알아 앞으로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여성단체와 여성정책 개발연구 분야를 동시에 경험해 공직생활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 안그래도 몇 몇 사람들은 민부장에 대해 ‘공무원 스타일’이 아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과거 여성단체 대표로 행정기관을 비판하던 모습을 염두에 둔 듯하다.
“나는 내가 어디에 처해 있든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GO(정부조직) 사람이면 GO답게, NGO(비정부조직) 사람이면 NGO답게 하면 된다. 더욱이 요즘은 민·관 협력시대로 GO와 NGO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여성단체 일을 하다 개발원에 들어가서는 조직의 개념과 사회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전에는 천방지축이었으나 조직의 필요성 때문에 하기 싫은 일도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단체가 여성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실태를 비판했다면, 연구원은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자리였고, 정책관은 일이 성사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들으며 일부 사람들의 우려가 결국 기우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 또한 과거 ‘매몰차게’ 비판하던 민부장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 충북에는 여성들을 위한 도 단위 기관으로 여성발전센터(전 도 여성회관)가 있다. 그러나 연구기능이 없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여성정책 조사연구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이 전국적인 추세다. 지방분권화가 돼서 지역연구가 이뤄져야 하는데 지역여성에 대한 통계 하나 없는 게 현실 아닌가. 충남은 여성정책개발원이 따로 있지만 전북은 여성발전센터 안에 연구원을 3∼4명 두고 있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지방정부 여성정책과 관련된 일이 많다는 점에서 연구기능은 신설돼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정책 초기에는 ‘잘 난 여성’ 중심으로 많은 일들이 이뤄졌으나 이제는 보통 여성과 남성들을 대상으로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단체 대표를 할 때도 일반 회원의 중요성을 주장한 민부장은 “충남에 있을 때 농촌여성과 시·군 여성담당 공무원, 일반 여성들을 직접 만나 일을 했는데 풀뿌리여성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 어떤 동기로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연세대에서는 사학을, 미국 듀크대학에서는 사회학을, 그리고 미국 북캐롤라이나주립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는데…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평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회정의가 실현되려면 평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귀국해서는 사회전반에 흐르고 있는 성차별의식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이 때부터 여성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단체 일을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어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정책에 대해서는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성매매나 호주제 등 어려운 주제를 끄집어 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 매춘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남성중심의 호주제를 문제삼은 것 자체가 과거에 비하면 ‘혁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왕 물꼬를 텄으니 앞으로 물길이 생기도록 지저분한 것을 청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담이지만 부군인 도종환 시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인이 워낙 ‘유명인’인지라 이번에도 그는 ‘민경자’가 아닌 ‘도종환의 부인’으로 전달된 면이 없지 않다. 그러자 그는 “몇 몇 신문과 방송에 ‘000의 부인’이라고 보도됐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남편을 부각시키지 않는 게 일하는 데 편하다. 나의 일이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며 “결혼할 때도 그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 지 몰랐다”고 말해 그도 웃고 기자도 웃었다.

여성계에서는 2대 충북여성정책관인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민부장 역시 충북 여성정책의 문제점과 발전방향을 꿰고 있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충북여성정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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