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여행하는 서양 사람들이 일본,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도시를 뒤 덮고있는 난잡한 간판이라고 합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간선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심에 들어올수록 건물을 덕지덕지 뒤덮고 있는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간판은 이내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전통 있는 도시들에 가보면 거리전체가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데 놀라게 됩니다. 고색 창연한 옛 건물과 현대식 빌딩들이 조화를 이뤄 조성된 거리의 차분함은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곳 도시들이 그처럼 아름다운 데는 세련되고 멋진 간판들이 한몫을 하고있음을 알게됩니다.

같은 동양 권이지만 일본의 도시들도 하나같이 깔끔하고 예쁜 간판들이 깨끗한 도시미관에 일조를 하고있습니다. 앙증맞은 디자인, 절제된 색채, 건물에 알맞은 규격은 그것이 비록 간판이지만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엿보게 하는 척도가 되고있습니다.

중국 역시 간판들은 장구한 역사와 전통에 걸 맞는 도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진한 빨강색, 노랑색 등 자극적인 원색을 많이 쓰고있으면서도 전혀 천박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이 중국 간판의 특징입니다. 붓 글씨체가 주종임에도 디자인과 구도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한국의 간판들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디자인이라기엔 낯뜨거운 형형색색의 부조화된 원색간판들은 무질서의 극치를 이룹니다. 서로 남보다 더 큰 모양, 더 큰 글자, 더 자극적인 색깔로 경쟁을 하다보니 아름다움은커녕 건물이 온통 누더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옥외간판, 옥탑간판, 돌출간판, 입간판, 가로간판, 세로간판에 그것도 모자라 유리창, 유리창을 온통 글자로 도배한 지저분한 모습은 흡사 전위예술가의 설치미술을 연상하게 합니다. 간판만을 본다면 이 나라가 월드컵 4강, 경제규모 세계12위의 나라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여행객이나 시민들에게 정보를 주고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조형물로서의 간판은 한국에서만은 이미 ‘시각공해’가 되어 온지 오래입니다. 간판은 도시의 얼굴이요, 거리의 문화, 그리고 그 나라, 그 지방의 문화척도입니다.

그렇다면 언필칭 ‘문화의 도시’라는 우리 청주의 모습은 어떨까요. 한국적 현상의 예외일까요. 아니올시다. 예외는커녕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우선 청주의 관문 공단 육거리를 지나 사창대로의 좌우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대교를 건너면서 앞을 보고 석교동 육거리 쪽으로 가 보십시오.

건물들을 온통 뒤 덮고있는 조잡하고 어지러운 불법 간판과 때에 절은 플래카드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도시 미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화가 날것입니다. 그 모습이 ‘문화 교육도시’를 자랑하는 도시의 모습은 아니기에 말입니다.

그래도 과거 관선시대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간판이 마구 난립하지는 않았습니다. 민선이후 단체장들이 표를 의식해 단속을 포기한 것이 도시를 이처럼 무질서하게 만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간판에 관한 한 지금 청주거리에 행정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입니다.

10월이면 제85회 전국체육대회가 우리 충북에서 열립니다. 그러면 선수, 임원, 관광객 등 3만 여명이 일시에 청주로 몰려옵니다. 그들이 이 조잡한 거리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세계 일류도시’라고 하겠습니까.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60만 청주시민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이런 모습은 안됩니다.

무질서한 간판들을 보다 못한 ‘문화사랑모임’이 나서서 충청리뷰, CJB청주방송과 함께 ‘아름다운 간판운동’을 시작한 것은 늦으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는 한 두 문화단체의 힘만으로는 벅찬 일입니다. 청주시가 팔을 걷어붙이고 시민, 사회, 문화단체가 나서고 온 시민이 함께 하는 거시적(擧市的)인 정비운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세계일류도시 행복한 청주’가 캐치프레이즈라면 청주시는 간판만이라도 정비를 해야합니다. 플래카드나 걸어 놓는다고 시민이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 본사고문 kyh@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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