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억원 투입하는 관광활성화사업 실효있나 의견 분분
보은군, 땅주인 법주사와 상의없이 추진하다 사업 변경

태백산맥에서 뻗어 나온 소백산맥 줄기 한 가운데 솟아있는 명산. 해발 1058m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문장대 등 절경을 품고 있는 곳, 속리산이다. 553년 지어진 고찰 법주사에는 현존하는 유일한 목조오중탑인 팔상전을 비롯해 쌍사자석등, 석연지 등의 국보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충북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평가받는 속리산의 최대 고민은 아이러니하게도 관광활성화다. 한때 수학여행지로 큰 인기를 끌며 사철 발길이 끊이지 않던 속리산은 이제 옛말이 됐다.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지난해 방문객이 20% 늘었다는 희소식이 들려왔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목이 마르다.

▲ 보은군이 속리산관광활성화사업을 사전 논의없이 진행하다 결국 사업을 변경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내리에 야외 공연장을 건축하려던 보은군은 땅주인인 법주사의 거부로 군유지인 갈목리로 사업지를 옮기자 사내리 주민들이 반발에 부딪혔다.
사업비 18억원 집행하면 끝?
지난 5일 찾은 속리산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전지훈련을 왔는지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띌 뿐이었다. 겉보기에는 조용하기 만한 사내리 집단시설지구 내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속리산의 옛 명성을 찾고 싶어 하는 이곳 주민들은 속리산 활성화를 추진하는 보은군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주민이나 보은군 모두 속리산에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데는 한뜻일 텐데 묘한 일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특정 인물이 군수와 친분을 내세워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수근거림도 나돌고 있었다.

주민들의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듯 했다. 쌓이고 쌓인 불만은 지난해 3월 속리산 관광활성화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터져 나왔다. 27개 관광특구를 대상으로 5곳을 선정하는데 뽑혔으니 자축할 일이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은 사업을 원점으로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모 당선으로 국비 9억원을 보조받아 군비를 포함해 18억원이 투입되는 관광활성화사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사업대상지로 선정된 날 보은군은 보도자료를 통해 총사업비 가운데 14억원을 들여 속리산면 사내리 잔디공원 주변에 야외 공연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야외 공연장이 완성되면 산사음악회 등을 열어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보은군이 지정한 장소는 속리산 방향으로 식당가가 운집해 있는 집단시설지구를 지나 속리산 진입로 오른편 잔디밭이다. 이곳은 법주사 소유의 땅이다. 하지만 보은군의 이 같은 계획을 법주사는 물론 주민들도 알지 못했다. 관계자 가운데 알고 있던 사람은 속리산관광협의회장 뿐이었다.

집단시설지구 내 주민들은 속리산관광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속리산관광협의회는 속리산 관광 활성화를 위해 군과 긴밀히 협조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단체다. 무슨 일인지 협의회장은 주민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8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을 사전 논의도 없이 진행한 것이다. 결국 법주사는 부지사용을 거부했고, 사업은 전면 재수정됐다.

▲ 스카이바이크 설치공사가 한창인 갈목리 둘리공원. 관광 중심가에서 1km이상 떨어진 이곳에 관광활성화사업비 대부분을 쏟아 붓는 것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법주사 “사전에 상의했더라면…”
법주사 관계자는 “속리산에 관광객이 많이 올 수 있도록 한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전제한 뒤 “사찰의 시간은 관광객들의 시간과 다르다. 오후 9시면 사찰은 잠에 든다. 그런데 사찰과 멀지 않은 거리에 실내도 아닌 야외음악당을 설치하면 사찰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군의 요청을 거부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만약 사전에 논의의 장이 열렸다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가 이뤄졌을 것이다. 법주사 운영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협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땅주인은 빌려줄 생각도 않는데 집을 짓겠다고 설계를 한 꼴이다.

사업이 전면 수정되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사내리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보은군은 시설투자금 14억원을 갈목리 둘리공원 내에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책위원장 박화용 씨는 “14억원이나 투입하는 사업인데 주민들과 협의 한 번 하지 않고 진행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군은 적법한 절차를 밟았으니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사내리에 야외음악당 건립이 무산되자 보은군은 문광부 서무관과 청주대 교수, 공무원, 속리산관광협의회장 등이 현지 실사를 통해 스카이바이크와 생태체험장 등을 조성하는 것으로 사업방향을 바꿨다.

공모하는 과정, 사업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목소리를 낼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사내리 한 주민은 “군에서는 집단시설지구 주민으로 구성된 관광협의회 회장과 상의를 했으니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라고 발뺌할 수 있겠지만 관광협의회 집행부조차도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둘리공원 내 진행하는 시설사업은 이미 20%나 진행돼 되돌리기 어려운 형편이다. 일부 주민들은 집단시설지구 내에도 관광활성화를 위한 시설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둘리공원 내 사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비상대책위를 중심으로 특정 인물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사업비 집행내역과 사업 전환 과정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사내리 주민과 보은군의 갈등이 아니다. 18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이 속리산 관광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 주민은 “산발적으로 이곳저곳에 시설물을 하나 설치한다고 해서 관광객이 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중심지인 사내리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속리산관광활성화사업이 파행을 겪는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당사자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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