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기에는 ‘프라모델’이 대유행이었다. 프라모델의 어원을 찾아보니 별 수 없이 플라스틱 모델의 일본식 발음이다. 조립식 장난감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했던 프라모델 중에서도 남자아이들이 열광했던 것은 유명한 전투장면을 재현한 시리즈였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어김없이 프라모델로 유명한 A사의 제품들이 진열돼 있었지만 대부분 쌈짓돈을 털어 단품(單品)을 샀을 뿐 다수의 군인과 각종 병기가 집적된 고가의 제품은 눈요깃거리일 뿐이었다.

‘사이드카’를 알게 된 것도 프라모델을 통해서였다. 철모의 모양으로 국적이 구별되는 독일군의 프라모델에는 사이드카가 빠지지 않았다. 오토바이의 측면에 조수석을 단 것이 사이드카다. 이미 1차 세계대전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독일군의 사이드카는 전령(傳令)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에 이르러서는 사이드카가 재래식 전쟁의 기병(奇兵)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조수석에 기관총을 장착함으로써 달리면서 화력을 퍼붓는 기동전투병기가 된 것이다.

민족이 남북으로 갈려 3년 1개월 동안 동족상잔의 전면전을 치른 나라, 군부가 집권해 30여년을 통치한 대한민국이었으니 군대와 군인, 병기 등은 사실 우리의 의식구조를 지배하는 문화 그 자체였다. 지금도 전쟁을 소재로 한 프라모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과는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잊고 살았던 ‘사이드카’를 연일 뉴스에서 듣는다. 그러나 이번엔 독일군의 사이드카가 아니라 주식시장의 사이드카다.

미국이 기침하면 독감 걸리는 한국

다 미국 때문이다.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하향조정한 이후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유가증권시장에는 8,9일 이틀 연속 사이드카(SC)가, 코스닥시장에서는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CB)가 발동됐다. SC와 CB가 이틀 연속 동반 발동된 것은 지난 2008년 말 코스닥 폭락 이후 3년여 만에 처음이란다.

주식시장의 사이드카는 선물시장이 급변할 경우 현물시장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함으로써 현물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도입한 관리제도로, 유가증권시장에서 선물(先物)가격이 전일 종가대비 5% 이상 상승하거나 하락해서 1분 이상 지속될 때 발동한다.

일단 발동하면 주식시장 프로그램 매매호가의 효력이 5분 동안 정지된다. 그러나 5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해제되어 매매 체결이 재개되고, 주식시장 후장 매매 종료 40분 전(14시 20분) 이후에는 발동할 수 없으며, 또 1일 1회에 한해서만 발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서킷브레이커는 사이드카의 다음 단계로 지수가 전일에 비해 10% 이상 하락한 상태로 1분 이상 지속됐을 때 모든 주식거래를 20분 동안 중단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사이드카의 어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도로가 많이 막히면 잠깐 옆에서 쉬게 한다’는 의미라는 설과 선물시장을 현물시장에 견줘 ‘오토바이 옆에 매달려 가는 조그만 차에 비유했다’는 설이 엇갈리고 있단다. 어찌 됐든 미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는 독감에 걸리는 것이 화폐경제 즉 자본주의 얼개 속의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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