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둔황-하미-션션-투루판-우루무치 8박9일 동행취재, 사막도시의 매력에 흠뻑

실크로드, 실크로드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곳은 ‘꿈’이다. 그러나 그 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마치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사막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물씬 풍기고 낙타를 한가로이 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거친 사막과 가난과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실크로드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작가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 1위가 실크로드, 2위는 인도라고 한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우리들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문명화되지 않은 자연과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24일 시 쓰는 모임인 ‘2월시 동인’의 실크로드 여행에 동행했다. /글=홍강희 기자, 사진 및 설명=이재표 기자

▲ 그 옛날 어느 구법승은 실크로드의 사막에서 "나는 새도 기는 짐승도 없었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둔황의 밍샤산은 구법승과 대상의 행렬 대신 낙타를 탄 관광객들로 붐빈다. 밍샤산의 일몰이 황홀하다.

중국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과거를 보려면 시안(西安)으로 가고, 현재를 보려면 베이징(北
京), 미래를 보려면 상하이(上海)로 가라고. 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지이다. 그랬다. 실크로드에는
과거가 있었다. 중국만이 아닌 우리들의 과거가.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비단이 로마로 전달
되던 길이다. 고대 로마인과 희랍인들은 중국을 ‘실크의 나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로마의 귀부인
들이 당시 화려한 비단을 몸에 걸칠 수 있었던 것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개무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 사전에는 “실크로드는 고대에 중국과 서역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교류를 가능케 한 교통로의 총
칭이다. 비단무역이 교류의 시작이 됐다는 점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길이는 6,400㎞에 달하고 중
국의 중원(中原)에서부터 하서회랑(河西回廊),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변, 파미르 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 지중해의 동안과 북안에 이르기까지 연결되어 있다. 실크로드는 상업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동서문화의 교류라는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나와 있다.

당시는 바닷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교역은 육로를 통해 이뤄졌다. 중계업에 종사하던 대상
들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무역을 했다. 동서교역의 상품은 비단만이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걸쳐 광범
위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크로드라는 명칭을 처음 쓴 사람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
(Richthofen,1833~1905)으로 알려져 있다.

미완의 여행일 수밖에 없는 이유

▲ 밍샤산은 반달 모양의 위에야치엔이 있어 사막이다. 이 오아시스의 동서 길이는 218m, 평균 수심은 5m에 이른다는데, 그동안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름도 아름다운 ‘월아’는 꿈속에서 본 그 오아시스였다.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서양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길인 만큼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영원히 미완성의 여행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코스가 여러 갈래이기 때문에 정답도 없다. 시 쓰는 모임인 ‘2월시 동인’ 9명은 이번에 실크로드 여행길에 올랐다. 코스는 우루무치-둔황-하미-션션-투루판-우루무치였다. 실크로드의 일부분을 보고 왔을 뿐이나 이 여행을 시작했다는 데 의미를 둔다는 게 일행들의 말이었다.

허장무 ‘2월시 동인’ 회장은 “여행은 자신과 정반대되는 곳을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유배된 곳을 찾는다. 문명과 동떨어진 사막도시에 와 있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면서 “실크로드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윤석위 시인은 “나는 동서교역을 위해 대상들이 지나갔던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느껴보고 싶어 이 곳에 왔다. 이번에는 버스여행을 했지만 다음에는 진짜 걷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러면서 시장에 가보고, 이 곳 주민들의 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 한 번 와보고 실크로드를 알 수는 없다. 이제 시작이다”고 말했다.

우루무치는 인구 200만명이 넘는 대도시다. 신장(新疆) 자치구에서 가장 중심되는 도시이다. 높은 빌딩들이 많고 자동차와 사람들로 북적댔다. 위구르박물관에 가서야 위구르족들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이 곳에는 대표적인 12개 소수민족들의 풍속을 알 수 있는 소수민족 민속전람관, 서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출토문물 전람관, 그리고 시체 전시관 등이 있다. 그 중 시체 전시관 안에는 자연 건조된 원주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런 것을 ‘깐스(乾屍)’라고 불렀다. 미라는 인공이 가미된 것이지만, 깐스는 자연상태에서 건조된 것이라고 한다.

▲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에게 에델바이스는 스위스에 있다는 편견을 심어놓았다. 실크로드의 고산 초원에는 에델바이스가 지천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 먼저 꽃을 피웠는지 아니면 홀로 남았는지 오직 저 한 송이!

우루무치에서 둔황(敦煌)으로 가기 위해 밤 기차를 타고 류위엔(柳園)까지 가는 길은 낭만적이다. 단 좁고, 덥고, 기차가 연착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기차는 4인 1실로 침대칸이다. 가도 가도 사막길을 10시간이나 달린다. 자다 깨서 창문으로 내다봐도 여전히 사막. 막막하다. 옆 방에서는 부실한 안주를 놓고 중국술이 끊임없이 돌아갔다. 여행기분에 들떠 아무리 떠들어도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에 묻혀 허공으로 퍼지고 만다. 이런 여행객들과는 달리 내국인들의 모습은 초라하다. 번듯한 가방 하나 없이 보자기에 싼 짐을 이고, 옆구리에 낀 얼굴들은 하나같이 피곤해 보였다.

모가오쿠의 웅장한 자태에 놀라다

▲ 둔황에서 하미(哈密)로 가는 길에는 침대칸이 아닌 3등 열차를 탔다. 선풍기만 돌아가는 무더운 객실, 여기에다 중국인들이 둘러매고 올라탄 자루 짐들로 좁은 객실은 더욱 비좁았다. 이들은 밤 새워 떠나는 걸까, 돌아오는 걸까?

류위엔에서 둔황까지는 버스로 2시간 걸린다. 밍샤산(鳴沙山)과 양관(陽關)고성, 모가오쿠(莫高窟) 등이 있는 곳이다. 둔황의 뜻은 ‘타오르는 횃불’이라고 한다. 모가오쿠는 둔황이 자랑하는 관광지다. 모가오(莫高)는 모래 언덕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모가오쿠는 서기 366년 승려 낙준이 명사산과 삼위산에 이상한 빛이 있음을 알고 석벽을 파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로부터 약 14세기까지 1000년 동안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 화가, 도공, 목공 등이 드나들면서 하나 둘씩 굴을 팠으며 그렇게 파게 된 것이 약 1000개 가량 돼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많은 굴 안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미륵불상부터 벽화까지 다양한 불교유적이 있었다. 그 중 17굴에서는 신라의 혜초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됐다고 전해진다. 관광안내인은 카메라 조명이 유적들을 손상시킨다고 사진촬영을 금했다. 수학여행단부터 전세계 관광객들이 무척 붐볐다. 불교소설을 많이 쓰는 소설가 정찬주 씨는 이 곳을 다녀온 뒤 ‘돈황가는 길’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션션이라는 이름의 도시는 사막과 도시가 가장 가까이 있다. 호텔에서 창문을 여니 사막이 도시를 빙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1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그 비를 온몸으로 맞고 가는 현지인들도 있었다. 사막도시에서 비를 보다니...모두 길조라고 흥분한다. ‘날궂이’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술집골목에 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얘기꽃을 피웠다. 1년 강수량이 16mm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날은 정말 특별한 날이다. 이윽고 천둥 번개까지 치더니 다음 날 바로 정전이 됐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가 보다.

그런가하면 투루판의 훠옌산(火焰山)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멀리서도 붉게 보인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데리고 서역으로 가는 길에 들렀다는 곳이다. ‘서유기’에는 삼장법사 일행이 훠옌산의 불길때문에 고초를 겪는 사건의 무대로 등장한다. 훠옌산은 틴엔산(天山)의 억센 힘줄이 불끈 솟아 이뤄졌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바깥 온도가 섭씨 45도까지 올라갔다. 햇빛속을 걸어가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신기하게 그늘로 들어가면 살만하다. 습도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보다 기온이 낮아도 습도가 높아 훨씬 덥게 느껴진다. 아울러 중국인들이 만리장성·남북대운하와 함께 3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카레즈, 가오창(高昌) 교성과 자오허(交河) 고성, 이슬람양식의 건축물 중 가장 높은 소공탑, 승마체험을 할 수 있는 닌산(南山)목장도 볼 만 하다.

별로 경쟁력 없는 중국 실크

▲ 하늘 연못은 백두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루무치(烏魯木齊) 근방 티엔산(天山)에도 천지 즉 티엔츠(天池)가 있다. 백두산 천지만은 못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산 너머 천산(4345m)은 성성하다. 티엔츠에는 유람선이 떠다닌다.

실크로드 여행 중 몇 몇 관광지와 우루무치의 바자르국제시장에서는 실크를 걸어놓고 파는데 큰 인기는 없다. 실크는 10위안(한화 1750원 정도)부터 몇 백 위안짜리까지 다양하다. 중국은 실크의 원산지이지만, 특별히 경쟁력을 갖지는 못한 듯 하다. 실크를 사려고 한참 만지작거리다 그냥 놔버렸다. 한 번 빨면 줄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다.

이 곳 음식은 중식이다. 한식당이 귀하다보니 관광회사에서 개발한 관광객용 중국식당이 몇 군데 있으나 칼칼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생하는 관광객들도 많다. 한 가지 우스운 것은 표준화된 식단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식당을 가든 메뉴가 비슷해 우리 일행은 다음에 어떤 음식이 나올 것인가 미리 점치며 한참 웃었다. 이 곳 별미라면 낙타발고기·당나귀고기·양고기 등. 양고기 꼬치구이를 하는 식당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도 있었다.

여행의 매력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세수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나를 알아볼 사람도 없다. 무엇을 해도 되지만, 아무 것도 안할 자유도 있다. 문명으로부터 약간 벗어나 실크로드의 자연과 그 곳 사람들을 만났다. 다소 덥고 불편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곳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번 더 가봐야 할 것 같다. 아마 오늘도 위구르족들은 독립을 요구하는 폭동을 일으킬 것이고, 사막의 낙타는 달릴 것이다. 관광객들은 또 실크로드를 찾아 중국행 비행기를 탈 것이다.

사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가
사막여행의 묘미는 ‘탈 것’이 많다는 것···낙타·당나귀·전동차 등

실크로드에 있는 도시들은 사막에 세운 것들이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도시가 있고, 다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이 나온다. 사막 끝에는 또 도시가 있다. 그런 식으로 사막과 도시는 이어진다. 그동
안 사막을 볼 일이 없었지만, 사막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모래가 이렇게
부드럽고 곱다는 사실도.

그 중 둔황의 밍샤산(鳴沙山)은 모래산이다. 언덕의 모래들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마치 울음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단 거대한 밍샤산의 규모와 그 아름다움에 입이 딱 벌어진다. 특히 해질녘 밍샤산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밤 10시나 돼야 컴컴해지는 특성상 9시쯤 되자 태양이 빛을 잃었다. 고운 모래의 부드러운 능선이 석양빛에 물들었다. 관광객들은 날이 어두워지도록 사막에서 떠날줄을 모른다. 1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 샘으로 초생달 모양을 하고 있는 위에야치엔(月牙川)도 퍽 서정적으로 다가왔다.

▲ 칸얼징: 중국에서 만리장성(2700km)보다 긴 것이 바로 투루판(吐魯番)의 지하수로 칸얼징(坎兒井)이다. 카레즈라고도 부르는 칸얼징은 설산에서 녹은 물이 사막까지 오면서 모두 말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판 지하수로로 5000km가 넘는다.

신경림 시인은 실크로드에 다녀와 ‘낙타’라는 시를 발표했다. 시인은 혹시 밍샤산 낙타를 보고 썼을까.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낙타 전문>”

무역상 재연한 낙타타기 ‘인기 최고’

▲ 그들은 왜 이 척박한 땅에 도시를 만들었을까? 투루판에는 가오창(高昌) 고성과 자오허(交河) 고성이 있다. 교하라는 말처럼 두 갈래 하천이 감싸는 가운데 자오허국이 있었다. 사막의 물은 생명수이자 천혜의 요새를 형성했다.

션션의 쿠무타크 사막은 동서문화 교류에 있어 중요한 곳이다. 이 곳 풍경 또한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막이라고 그저 황량한 건 아니다. 흙과 볏짚을 섞어 여러 모양으로 세운 구조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러는 신발을 벗거나 아예 벌렁 누워 모래찜질을 하기도 한다. 실크로드에서 사막은 중요한 관광상품이다. 이 곳 주민들은 사막에서 뭔가 타며 즐길 수 있는 상품들을 내놓는다. 밍샤산에서는 낙타와 전동차, 모래썰매를 탈 수 있다.

낙타 타기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5마리의 낙타를 한 줄로 연결하고 한 사람이 앞에서 5마리를 끌고 가는 형식이다. 사람들은 각각 한 마리의 낙타 등에 올라탄다. 처음에는 떨어지지 않을까 진땀이 나는데 조금 가다보면 익숙해진다. 낙타는 밍샤산의 비탈을 요리조리 능숙하게 지나간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팀들이 한 줄로 늘어서 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과거 동서교역에 나섰던 대상들의 모습을 현대화 했다고나 할까. 낙타 등에는 사람들이 앉기 좋도록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작은 카펫을 또 깔았다. 

낙타를 1시간 가량 타는데는 중국돈으로 200위안(한화 3만5000원 정도)을 받는다. 그 더운데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산을 터벅터벅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낙타들의 고생이 포함된 금액인 듯하다. 돈을 벌기 위한 주민들의 고생은 실로 눈물겹다. 낙타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걸어다니며 낙타 똥을 주워 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밍샤산 중턱까지 올라가면 전동차가 있다. 전동차를 타고 사막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모래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정상까지 걸어서 한참동안 올라가야 한다. 산 아래에서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마치 하나의 점처럼 보인다.

쿠무타크 사막에서는 30위안(한화 5250원)을 내고 전동차를 타면 사막을 한 바퀴 돈다. 그런데 이 게 성이 안차면 다시 150위안(한화 2만6250원 정도)을 내고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전동차를 탄다. 빠른 전동차를 탄 관광객들이 모두 스릴 만점이라고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엿볼 수 있던 사막인 가오창고성에서는 당나귀를 탈 수 있다. 당나귀 한 마리가 끄는 마차에는 10명 정도가 앉는다. 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이 사막을 찾는 이유는 이렇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 사막만 끝이 없는 게 아니라 실크로드의 초원도 경계가 없다. 하미(哈密)의 바리쿤(巴里坤) 초원이 그렇다. ‘저 푸른 초원’ 위에는 그림 같은 집이 아니라 카자흐족들의 게르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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