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법 '후손인 홍범식, 홍명희 독립운동과 별개사안'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토해 낸 일완 홍범식 열사(1871~1910)의 유언이다.

홍 열사의 아들 벽초 홍명희(1888~1968)는 부친의 이 유언을 평생 신조로 삼았다.

청주지법 행정부(재판장 최병준 부장판사)는 14일 홍명희의 조카인 재산관리인 홍모씨가 '홍명희 선생의 조부(홍승목)가 친일행각을 했지만 그 자녀들은 독립운동을 벌인만큼 국가에 재산을 귀속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홍승목이 작위를 반납하거나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이상 아들 홍범식 및 손자 홍명희 등 그 후손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만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할 수 없다"며 "홍승목이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 아니라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라고 밝혔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홍범식·홍명희 부자의 독립운동이 부친·조부의 친일행각을 결코 덮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홍범식 열사는 충남 금산군수 재직시절인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로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비분강개해 이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독립장을 서훈했고, 금산군은 해마다 홍 열사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450-1(임꺽정로 16) 홍 열사의 생가는 충북도 민속자료 14호로 지정됐고 지난해 10월엔 괴산문화원 주관으로 군민회관 앞에 있던 추모비가 생가 옆으로 이전됐다.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14일 청주지법 행정부는 아들과 손자인 홍범식 순국열사와 홍명희의 독립운동에도 친일행각을 한 홍승목을 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0월30일 청주예술의전당 소강당에서 열린 15회 홍명희문학제에서 박걸순 충북대 교수가 홍범식 열사의 순국을 주제로 학술강연을 하고 있다. ksw64@newsis.com 2011-07-14
홍 열사의 장남인 홍명희는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1919년 3월 충북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3·1만세운동을 고향인 괴산에서 주도했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1년간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 주로 교육계와 언론계에 몸담으면서 사회활동에 전념했다.

1927년엔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아우르는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창립을 주도했고 신간회 민중대회사건으로 다시 투옥되는 고초를 당하면서도 항일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벽초는 해방 후 좌우 대립 속에서 중도파 정치활동에 나섰지만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가 북에 잔류했고 이후 북한 초대내각 부수상 등을 지냈다.

벽초는 해방 후의 이 같은 행적으로 지금까지도 남한에선 항일운동가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고향에선 한때 그의 이름 석자를 언급할 수도 없었다.

한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지난해 5월 괴산읍 제월리 일대 157필지 51만7736㎡의 홍승목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인정해 국가(국가보훈처) 소유로 등기했고 재산관리인 홍씨는 같은 해 9월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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