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대 학장 퇴임 이어 현도복지대 총장 선임
‘말 바꿔 탔다’는 비판에 맞서 ‘운명’ 택해
복지학에 대한 남다른 철학으로 접근

주성대 학장 퇴임과 동시에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교(이하 현도복지대) 제 3대 총장에 선임된 유성종(72) 신임 총장은 주변의 축하인사가 그리 반갑지 않은 듯했다. 지난달 17일 주성대 학장 사의를 표명한 직후 25일 현도복지대 총장으로 선임된 것에 대한 주변에 시선이 곱지만 않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사임과 동시에 또 다른 자리에 취임한 처신이 ‘갈 곳’을 먼저 챙겨둔 뒤의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느냐는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는 말이다. 유 총장은 주성대 학장을 퇴임하며 “그동안 과불급의 잘못, 자리만 지킨 허황과 무능을 복죄(服罪)한다”며 “이제는 자유인이 되어 책 잃고 수양하는 일에 전념하고자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 고희(古稀)의 나이를 넘긴 그가 완벽한 자유인이 되려는 구나 하는 해석이 나올 즈음 그는 8일만에 현도복지대 총장직을 수락했다. 이런 저런 전후의 사정 때문이었을까 그는 “현도복지대 총장직을 무보수로 수행하겠다”는 백의종군의 약속을 공언하기 까지 했다.

유 총장은 청주 북문로 1가에서 태어나 1957년 청주상고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다. 이어 서울 중등고 교사, 청주 주성중 교감, 충주고 교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교직생활에 몸담아 왔다. 그 후에 충북도 교육연구원 연구사, 학무국 중등교육과 장학관, 충북도 교육감 등 교육 행정과 관련된 일을 했다. 순수 교육이 아닌 주로 교육 행정에 몸담은 자신을 ‘가짜 교육자’라고 표현한 그는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육자로 남고 싶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평생을 학생과 교사, 교수, 교육감, 학장, 이사장 등 교육계에서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유 신임 총장은 1999년 현도복지대에 최고령으로 입학해 화제가 됐다. 그런 그가 졸업 1년 만에 학생에서 모교의 총장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하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학장에서 현도복지대 총장으로 취임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이 길은 내게 주어진 운명 같은 것”
유 총장은 특히 주성대와 인연이 깊다. 지난 1995년 학장으로 취임하면서 주성대와 연을 맺은 후 1999년에는 주성대 이사장을 맡았고 지난해 3월엔 다시 학장직에 복귀하는 등 주성대와 그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난해 이사장 퇴임과 동시에 학장직을 맡으면서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길면 2년, 짧으면 1년이라는 기간과 무보수로 학장직을 지내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학장을 수락하면서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했으나 혹 교만한 것은 아닌가 자숙하게 됐다.” 이번 주성대 학장 퇴임과 맞물려 현도복지대 총장 취임을 결심하면서도 유 총장은 자신을 우선 채찍질했다. “힘겹게 산을 넘어 왔는데 또 하나의 산이 나를 맞았다. 새로운 도전을 할 나이인가, 또 다른 교만을 부리는 것인가, 새 일을 시작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성대 설립 당시 청주에는 대학이 가장 적은 도시였고 교육감이었던 그는 교육부에 항의하고 인가서류에 추천서를 써주는 등 주성대 설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그런 만큼 주성대와의 인연은 총 15년이나 되는 셈이다.

“10년 동안 학장, 이사장직을 하면서 이제 ‘가야 할 때’임을 느꼈다. 학장직을 물러나고 총장을 맡자 나를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주변의 많은 충고를 들었다. 그러나 루머(rumour)에는 관심 없다. 심지어 ‘현도복지대 가려고 주성대를 만들었다’, ‘결국은 또 거기냐?’는 말도 들었다. ‘자유인’이 되려는 나의 바람은 이제 새로운 총장으로 거듭나게 됐다. 교육계를 떠나야지 했지만 운명처럼 항상 나를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주성대 학장 퇴임 발표 후 모교의 간절한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신설대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무보수로 총장 역임하겠다”
지난해 주성대 학장을 할 때도 무보수를 고집한 유 총장은 현도복지대 총장 재직기간에도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기적으로 나오는 연금이면 두 식구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름 석자와 직위는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은사님, 친구, 주변 사람에게 엄청난 은혜를 입은 나는 그것을 되돌려 주고 싶다.  아부나 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젊은 나이에 교육감을 하고 고속승진을 한 나를 두고 주변에서는 ‘관운이 좋다’는 말을 한다. 이렇게 나를 행운아로 만들어준 이들에게 베풀고 싶다.”

오는 8일 취임하는 유 총장은 조심스레 현도복지대의 미래를 설계했다. “신설대학의 자리잡기가 급선무다. 학교라는 것은 학생 중심이므로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또 젊고 능력 있는 교수들이 마음놓고 가르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도록 할 것이다. 그 외에 통학버스나, 기숙사, 각종 시설을 구비하는 데 힘쓸 것이다.” 교육은 자체가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개혁’도 잘못하면 ‘개악’이 될 수 있으므로 올바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나의 몫이다. 나이답지 않게 진보적이라는 주변의 평을 또 다른 채찍으로 삼아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현도복지대에서 복지학을 전공한 유 총장은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2002년 졸업여행을 갔던 스웨덴에서의 견문(見聞)을 한 예로, 그는 답을 대신했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에는 ‘사회 복지’라는 말도 없고 자격증도 없지만 모든 것이 복지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스웨덴에서 100여년 여당으로 불린 사회당에 여성 당수가 있었는데 그는 수상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인 즉 그 당수가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만원에 대한 회계처리를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수는 공금을 유용했거나 다른 용도를 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회계처리 부분이 수상이 되지 못한 이유였다.” 민주적이며 깨끗한 나라, 전 국민이 서로 믿고 삶을 사는데 있어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는 나라를 그는 꿈꾸고 있었다.

현도복지대 학생으로 4년간 참다운 봉사를 배우고 노인들을 위해 심부름을 해주고 싶었던 유 총장은 48년 째 교육인으로 남아있다. 거의 반세기를 바른 말, 쓴 소리하며 교만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직도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을 바꿔 탔다’는 비판을 인정할 수 없다는 그는 이제 새로운 산 앞에 담담하다. “은혜와 인연 사랑 속에서 살아온 나는 감사하며 새로운 산을 넘을 것이다. 내가 원한 것이라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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