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렬 부장/ 제2사회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가까이 하지도, 그렇다고 멀리하지도 말라). 기자와 경찰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가깝게 지낸다고 이득될 게 없고, 멀리하면 해를 당할 수 있다는 짙은 경계심이 바닥에 깔려있다. 뜬금없는 말을 서두에 꺼낸 것은 한 경찰의 음주 운전 사고를 얘기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8일 오후 6시 15분께 충북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잣고개 정상 부근에서 진천경찰서 소속 N경사(48)가 운전하던 무쏘 승용차와 이모씨(46)가 몰던 마티즈 승용차(운전자 이모씨.46)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N경사는 청주 효성병원으로, 마티즈 승용차 운전자 이씨는 진천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사고는 당사자가 현직 경찰이란 신분 때문에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현직 경찰이 음주 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으니 언론의 먹이감(?)으로는 그만이다.

사실 운전하는 사람치고 경찰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중앙선 침범, 과속, 신호등 위반, 안전띠 미착용, 휴대폰 사용...혼자 생각으로는 이 정도는 봐줄만한데 검은 안경을 쓴 경찰로부터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고 돌아서 욕을 퍼부은 경험이 운전자라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이런 선험적 적개심(?) 때문은 아니지만 경찰의 불법행위는 늘 언론보도 과정에서 비중 있는 기사로 분류된다. 편집 과정에서 확대되고 일반인과는 달리 무차별적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 상례이다. 왜 술을 마셨는지에 대한 그 배경에 대한 관심보다는 겉에 드러난 현상만으로 메스가 가해진다. 고백컨대 기자 역시 그래왔다.작은 권력이든, 큰 권력이든 권력에 대한 비판기능이 언론에 부여된 귀한 의무이기에 단 한번의 의심도 없이 당연시해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여태 그래왔던 것에 대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사건 다음날 청주 H병원을 찾았을 때 그에게서 해임통보서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경찰 조직이라 후속조치가 빠르다는 생각이 스쳤다. 누구와 술을 마셨냐는 질문에는 “진천군 농민회 간부들과...”하며 말을 잊지 못했다. 정보과 형사였던 그는 “FTA 국회 비준 동의안이 통과된 이후 농민회 동향을 체크하는 일이었다”며 “서울 등 각종 집회에 따라다녔고, 최근에는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낙선운동 파문 때문에 지방청에 보고할 게 많았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여기에서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음주사고를 슬쩍 덮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으니까. 음주 운전은 명백한 불법행위이고, 법집행의 칼날은 누구에게라도 예외를 허용해선 존재가치를 상실한다. 특히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경우 재발 방지 차원에서라도 엄격한 법 적용이 마땅하다. 다만 한 가지 경찰이기에 앞서 한 가정의 가장이요, 지아비요, 아이들의 아빠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는 것에 대한 인지상정만은 갖자는 것이다. 여론에 편승한 채찍이 아니라 죄 만큼의 벌이 우선시 돼야한다. 경찰이란 이유로 특혜성 보호를 받는다면 문제지만, 그 반대로 치명적 피해를 본다는 그것 역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직이라는 직장을 불명예스럽게 떠나야하는 한 경찰의 초라한 뒷모습을 보며 기자가 느낀 것이 또 하나있다.그동안 현상적인 잣대만으로 펜대를 굴려 오진 않았나, 취재원 한사람 한사람의 삶의 무게를 가벼이 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문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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