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구세군 충북지방본영지방장관

일반인들에게 구세군은 자선단체쯤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구세군은 1865년 윌리암 뿌드(William Booth)에 의해 영국에서 처음 창시된 기독교의 한 교파이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교회의 풍조에 반발해 이들을 위한 복음을 전파한 것이 구세군의 계기가 됐다. 한국에 구세군이 들어 온 것은 1908년이다. 100년이 다 되는 장구한 역사다.
구세군하면 곧 거리의 자선냄비로 상징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10일 도내 일원에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그러나 군사적 용어를 사용하며 제복까지 갖춰 입는 구세군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이는 별로 많지 않다. 오는 24일까지 도내의 자선기금 모금을 지휘할 구세군 충북지방본영 김기덕 지방장관(참령)을 관사로 직접 찾았다.

원래 3대째 장로교 집안의 독실한 신자였던 김장관(61)은 31년 전 역시 3대째 구세군 가족인 부인 박청자씨(60.참령)를 만나 결혼하면서 구세군에 몸담았다. 충북지방본영은 지난해 자선냄비를 통해 9150만원의 자선기금을 모았다. 그래서 올해는 1억원을 목표로 전 교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충북의 구세군 조직은 현재 어떻게 이뤄져 있나.

“전체 교인은 4200명 정도이고 이중 50여명이 목사급인 사관으로 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9명으로 구성된 지방업무협의회가 충북의 최고 협의, 의결기구로 역할한다. 청주 영동 심천 등 세곳에 지역관이 설치돼 도내 27개 구세군 교회를 관장한다.”

-굳이 제복을 입고 군대식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구세군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군대를 자처한다. 보다 적극적인 복음활동을 위해 준 군대식의 규율이 강조되고 있고, 제복을 입음으로써 스스로의 언행에도 자연스럽게 절제의 도덕률이 중시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철저한 자기관리를 위한 것이다. 이같은 경건한 마음의 자세가 전제될 때 진정한 복음과 구제, 자선활동이 나타날 것이다. 현장에 직접 뛰어 들어 그리스도의 가장 순수한 사랑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선 모든 것을 자율에만 맡길 수는 없다. 구세군이 군대식 용어를 사용하고 또 제복을 입는 행위는 곧 신앙생활에 내실을 기하기 위함이다.”

구세군의 계급은 병사, 하사관(교직자) 정위(목사) 참령 부정령 정령 부장 대장 순으로 이어진다. 각 나라의 구세군 사령관은 부장계급에 해당되고 충북같은 지방장관은 참령이 맡는다. 사관학교를 나오면 이른바 별 2개의 정위를 받는데 정위에서 15년이 되어야 참령을 단다.

구세군에 자선냄비가 등장한 것은 지금부터 꼭 200년전인 1891년이다. 그해 12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안에서 배 한척이 폭풍우에 좌초된다. 배고품과 추위에 떨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생존자들은 이곳 구세군 회관에 수용됐으나 음식과 옷가지가 여의치 않았다. 이 때 한 여사관이 수프를 끓이는 냄비를 거리에 내다 걸고 지나는 사람들한테 “이 냄비를 끓게 합시다”고 외쳐댄 것이 자선냄비의 효시다.

-구세군과 자선냄비의 상관관계에 좀 더 각별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언뜻 생각해도 교조(敎條)보다는 실제(實際)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구세군을 창시한 윌리암 뿌드가 가장 중시했던 것은 그리스도 정신의 올바른 실천이다. 당시 교회가 자기 보호막을 치고 부자층만을 옹호할 때 과감히 뛰쳐 나와 거리유세로 빈자들을 보살핀 것이다. 결국 집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자 교단의 가혹한 탄압이 가해졌다. 그러나 성도들 스스로 지켜 온 것이 오늘의 구세군이다. 그 힘은 역시 인간 속에 숨겨진 가장 순수한 사랑이다. 복음은 교회안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뤄진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 자선냄비는 곧 이런 정신을 총체적으로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구세군은 각 지방본영마다 그 지역을 위한 정책 사업을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 복지, 교화, 자선사업이다. 충북에서도 현재 구세군에 의해 독거노인 지원, 어린이 양육, 청소년 상담 및 공부방제공 등 여러 복지사업이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구세군의 계급은 병사. 하사관(교직자) 정위(목사) 참령 부정령 정령 부장 대장 순으로 이어진다. 각 나라의 구세군 사령관은 부장계급에 해당되고 충북같은 지방장관은 참령이 맡는다.

-지금까지 활동중 잊지못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또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약 10여년전의 일이다. 독실한 성도 한 사람이 돌아 가셨는데 뒤늦게 통장이 발견됐다. ‘하나님 통장’이라는 이름이 적힌 이 통장엔 그동안 자녀들로부터 받은 용돈이 차곡 차곡 저금돼 있었다. 그 분이 죽는날까지 모은 이 돈은 결국 옥천 구세군 교회를 짓는데 기초가 됐다. 그동안 성금 모금 과정에서도 여러 잊지 못할 일들이 많았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랑은 역시 보이지 않고 표나지 않게 실천할 때 가장 아름답다. 시민들이 자선냄비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한다. 실행없는 사랑은 의미가 없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 온 구세군은 일제에 의해 모진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야말로 군대정신(?)으로 시련을 이겨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난민구제사업에까지 손을 댔다. 근대화가 시발된 60년대엔 가난 극복을 위해 구세군이 전령으로 나서는 등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 실체로써 보여 왔다.
/ 한덕현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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