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역사는 고루한 것을 거부한다. 늘 새로운 이슈와 담론, 새로운 환경과 조직, 새로운 문화와 기술을 요구한다. 어느 시대든 살아가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주고받는 화두가 있게 마련인데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 화두를 중심으로 돌면서 새로운 미래의 꿈을 빚고 담금질 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통일과 이념, 경제, 환경, 복지, 교육, 지방분권, 양성평등 등이 그 때마다 사회적 이슈가 되거나 담론의 중심에 서 있지 않았던가.

요즘 반값 등록금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학생들은 등록금 마련을 위해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노동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다. 부모들은 맞벌이에 투잡까지 해도 부족한 지경이다. 이 와중에 대학은 몸집 부풀리기와 등록금 올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으니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서원대 사태, 청주대의 적립금 문제 등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더욱 속상하고 분개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애석한 것은 반값등록금이 문제해결의 열쇠인양 호들갑 떠는 사회적 분위기다.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처방책을 내 놓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든 모두가 포퓰리즘의 사슬에 갇혀있다 보니 숲은 보지 못하고 눈앞의 나무만 보면서 모든 것을 다 보았노라 소리치는 형국이다.

내게는 아직 대학을 가지 않은 딸이 셋 있다. 큰 딸과 둘째가 연년생이니 예정대로라면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녀야 할 것 같다. 등록금만 생각하면 막막하다. 대학을 보낼 수 있을지, 행여나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딸들에게 무능한 아빠로 낙인찍히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더

 큰 걱정은 어렵게 대학을 보냈는데도 취업을 못해 방황하는 모습을 볼 것 같은 두려움이다. 전공을 살릴 수 있고, 온전한 직장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며, 희망의 꿈을 일굴 수만 있다면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감내할 수 있다. 아니, 애비의 도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세상 흐름을 보면 지난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돈으로 덧칠하는 세상, 돈으로 권력과 행복순을 정하고, 돈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돈으로 부모의 역할과 사회의 질서를 호도하는 세상이다. 어디 이 뿐인가. 대학까지 나오고, 이도 모자라 대학원에서 석·박사까지 취득해보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교육과 복지시스템 등 사회제도가 거미줄처럼 튼튼하게 갖춰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너무 헐렁하고 불안하며 근시안적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능력을 배양하며 창의인재를 키워야 하는데도 학력과 학벌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잔치를 벌이면서도 교육당국과 교직원은 학생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로 가 보자. 핀란드를 이야기할 때 국가경쟁력 세계 최상위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노키아, 국제 학업성취평가 1위, 디자인 및 친환경국가, 교육과 복지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무상 고등교육이 제도화 돼 있고, 일반계고와 직업고가 차별 없으며, 취업시장의 수요에 초점을 둔 직업훈련이 돋보이고, 풍부한 복지 및 장학제도가 정착돼 있다.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교사는 학생을 돕고 정부는 지원하고 부모는 협력하며 기업체는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등록금 비싸기로 소문난 미국은 기부금 활성화와 폭넓은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장래성, 인성, 대학충성도 등을 지원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이들이 다시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 모교에 기부하는 미덕이 일상화돼 있다. 캐나다 역시 기부문화를 통해 대학과 지역이 호흡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와 폭넓은 교감을 통해 지역발전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

반값등록금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이것으로 표를 사고 인심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경시하고 경멸한다. 이 땅의 청년을 책임지는 정부와 대학, 그리고 학력과 경력과 경쟁사회가 아닌 인성과 전문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풍토만이 대안이다. 나의 사랑하는 딸들이 미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하루 빨리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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