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문화재청에 등록되어 있는 문화재 지킴이 인데요. 영조대왕 태실과 관련하여 벌써 6년째 떠들어도 답이 없어 글을 올립니다. 태실 우측으로는 낭떠러지고요. 올라가는 길이 없어서 빗물이 지나가는 수로를 따라 올라오네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이 올라갈 수 있는 계단과 영조대왕과 정조대왕 그리고 사도세자의 어진만 재실에 설치한다면 좋은 교육의 장이 되겠지요.


흉가가 되어가는 재실과 녹슬어버린 펜스 그리고 무릎까지 오는 잡초, 이날 아이들과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80이 되신 어르신이 빗물이 지나가는 수로의 잡초를 아이들을 위해 베어주신 덕분입니다. 여기는 재실인데 수리와 관리가 되지 않고 도굴꾼들이 재실을 뒤지다가 시설을 많이 부수니까 A4용지에 이렇게 적어놓았네요. “여기 보물 없습니다.”
_ 페이스북 Nak Sung

-영조대왕 태실이 청원에 있었군요.

지난 주말 Nak Sung님의 글이 충청리뷰 페이스북을 도배했습니다. 엄청나게 흥분한 기운이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터라 Nak Sung님과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Nak Sung님은 청원군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생태교육시설 ‘갈뫼자연놀이학교’의 학교지기였습니다.

Nak Sung님으로부터 학교 인근에 영조대왕 태실(胎室·탯줄을 매장한 시설)이 있는데, 도대체 관리가 되지 않고 태실까지 올라가는 계단은커녕, 제대로 된 길조차 없다는 하소연을 들어야했습니다. Nak Sung님 왈(曰) “문화재청, 충북도, 청원군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는데 ‘전국에 태실이 어디 한두 개냐’ ‘태실이 있는 곳이 사유지니 지주에게 승낙을 받아오면 계단을 만들어주겠다’는 한심한 답변만 돌아왔다”는 군요.

영조대왕 태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충청북도기념물 69호니 지정문화재였습니다. 또 청원군이 소장하고 있는 관련 서적 태실가봉의궤(胎室加封儀軌·필사본)는 충청북도유형문화재 170호로, 별도 지정돼 있었습니다.

-동양척식회사가 팔아치운 영조태실 터

태실박사 이규상 부용면장이 생각났습니다. 이 면장은 청원군 문화체육과에 근무하던 2005년 <한국의 태실>이라는 460쪽 분량의 책을 낸 인물입니다. 이 면장은 “우리민족은 탯줄을 신성시했고 특히 왕가에서는 이를 국운(國運)과 결부지었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왕조만하더라도 왕조의 모든 후손들의 태를 길지에 묻었는데, 그 왕손이 왕위에 오르면 다시 시설을 특별하게 정비했다는 겁니다. 충북에는 조선의 왕 가운데 영조 외에도 경종(충주시 엄정면)과 순조(보은군 속리산)의 태실이 있고 모두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1929년 일제는 태실의 파괴를 막는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의 태실을 파헤쳐 태를 담은 항아리만 서울 서삼릉에 모았습니다. 이 면장은 “영조태실이 있는 임야 7만평은 창덕궁 소유였으나 일제가 조선왕실의 재산을 몰수해 동양척식회사로 넘겼고, 다시 부강의 만석꾼 김○○이 이 땅을 사서 태실이 있던 자리에 할아버지의 묘를 썼다”고 귀띔해줬습니다.

-다시 급매물로 나온 땅 “재실도 드립니다”

슬픈 역사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태실은 1982년에 복원됐으나 원래 자리를 김씨 집안에게 내준 터라 150m 아래 산등성이에 자리를 잡아야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태실 자리에 조상의 묘를 썼던 만석꾼 김씨 집안도 지기(地氣)가 다했던지 가세가 기울어 몇 년 전 경매로 땅을 처분했다는군요.

기자가 웹서핑을 해보니 그 땅은 부동산정보 사이트에 또 다시 급매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고의 말미가 눈에 거슬립니다. ‘본 임야를 구입하면 사당한옥도 그냥 드림.’ 이 사당한옥이 바로 “여기 보물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그 건물입니다.

이 면장은 이 건물에 대해 “김씨 일가가 1930년 대에 지은 건물”이라고 말하는데, 청원군 관계자는 “건물의 이름은 ‘성모재(誠慕齋)’이며 청원군의 보유한 기록에는 영조대왕의 재실이자, 향토유적 재가(齋家) 213호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다”고 확인해줍니다. Nak Sung님이 궁금해 하는 것은 모두 알려줬으나 오히려 진실은 복장을 터지게 하네요. 알려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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