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관객층 저변화…대박쳤다 하면 1000만명

지난 2001년 7월의 어느 날 서울 종로 서울극장. ‘친구’의 흥행 대박에 이어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등의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 당당히 흥행 기록을 쓰고 있을 때였다.

할리우드 직배사 간부가 충무로 관계자에게 농담을 건넸다. “한국영화 때문에 못해먹겠다”고.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의 말은 단순한 엄살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할리우드가 한국시장을 무시할 수 없으며, 향후 할리우드와 한국영화의 대결구도에서 이미 한국영화가 승리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하반기부터 분 ‘조폭 코미디’ 열풍, 몇몇 블록버스터 영화의 상업적 실패 등으로 한국영화는 새로운 위기를 맞는 듯했다. 많은 관계자들은 한국영화의 위기론을 언급했고, 투자 분위기는 위축돼 갔다. 실제로 2001년 10억9,700만원의 한국영화 평균 수익은 2002년에는 평균 4억3100만원의 적자(영화진흥위원회 자료)로 돌아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영화는 다시 일어섰다. 영화 투자배급사 아이엠픽쳐스가 집계한 지난해 한국영화 투자수익은 14억원. 지난 2002년 308억원을 손해봤던 것에 비해 322억원이나 늘어났다. 편당 매출액 37억5000만원으로 2000만원의 평균 수익을 기록했다.

그리고 영화 실미도가 ‘꿈의 숫자’로만 여겨졌던 ‘1000만명’ 관객 시대를 연 데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1000만명에 도전하고 있는 지금, 한국영화는 할리우드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지난해 한국영화 점유율이 50%를 넘어선 데 이어 한국영화는 올해 초반부터 그 거센 기세로 시장 규모의 확대를 꿈꾸고 있다.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영화의 시장 규모가 날로 커질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영화제작사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양적인 면에서 전체 영화시장의 규모가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나비픽쳐스의 조민환 대표도 “‘쉬리’ 이후 한국영화 시장은 확대일로를 걸어왔다”면서 “절대인구가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영화 관람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 그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지난해 전국 관객은 1억 999만 9245명. 이를 서울 기준으로 살펴보면 한국영화 평균 관객수는 31만 7000여명으로 외화의 11만9000여명을 크게 앞서며 증가율도 18.8%로 큰 폭의 성장세를 이뤘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수치상으로만 한국영화가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고 설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 관객층이 얼마나 다양하고 두터운 가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멀티플렉스의 급격한 증가로 일상 가까이 극장이 자리하면서 영화 관람 기회는 더욱 늘었다. 실제로 전국의 스크린 수는 지난 99년 588개관에서 2002년 977개관으로 늘었고(영진위 집계) 지난해에는 1000여 개가 넘었다. 그만큼 ‘내 가까이’ 영화관이 있으므로 영화를 관람할 기회도 늘었다. 다만 다양한 연령의 관객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나비픽쳐스 조민환 대표는 “멀티플렉스의 증가는 그만큼 영화의 잠재 관람인구가 많음을, 그래서 그들에게도 영화를 관람할 기회가 많아졌음을 뜻한다”면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20대뿐 아니라 중장년층 관객들까지 극장으로 불러내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많은 영화 관계자들의 분석도 마찬가지다.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는 “20대를 타깃으로 했던 한국영화는 중장년층까지 불러내는 데 이르렀다”면서 “과거 조폭영화나 코미디 일색의 영화가 다양한 관객층을 형성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고 분석한다. ‘친구’ 등 몇몇 영화에도 중장년 관객들이 몰렸으나, 이후 코미디 일색의 극장에 더 이상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연이어 다양한 연령의 관객들에게 소구하면서 시장은 확대뿐 아니라 안정화 추세를 이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다양한 영화가 극장에 내걸려야 한다는 점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최근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21>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1,000만 관객시대, 당신의 바람은?’이라는 질문을 한 결과 전체 응답자 542명 중 52%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이라고 대답했다. 관객 스스로 한국영화 시장의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시장의 양적인 확대를 넘어 안정된 시장을 만들어가는 것, 관객은 그 답을 알고 있는 셈이다.

‘실미도’ ‘태극기’ 미국서 기립박수
 AFM에서 열린 시사회 호평받아
중국 대만 이어 유럽 각국과도 수출상담

영화 ‘실미도’(감독 강우석, 공동제작 시네마서비스·한맥영화)와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제작 강제규 필름)가 전세계를 녹였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샌타모니카에서 문을 연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에서 첫 공식 시사회를 가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세계 각국 영화관계자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한국영화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폭발적인 반응의 시작은 지난달 26일 오전 11시(한국시간 27일 오전 4시) 열린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사회장.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인 파라마운트 클래식의 아시아지역 담당, 드림웍스, 라이온 게이트사의 고위 구매담당자 등은 물론 홍콩·태국·네덜란드·프랑스·벨기에 등 세계 각국의 구매 결정권자들과 체코 카를로 비바리 등 세계 유명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드림웍스 구매담당자는 본사 사장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며 프린트 대여를 특별히 요청하기도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해외마케팅을 맡고 있는 쇼박스 측에 따르면 AFM 시사 직후 중국과 대만에 한국영화 사상 최고가로 판매됐으며, 네덜란드·벨기엘룩셈부르크와 계약이 체결됐다. 이와 함께 현재 유럽 각국과의 협상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보다 4시간 뒤인 오후 3시에 열린 ‘실미도’ 시사회에는 미국의 메이저 배급사인 UA 구매관계자 등을 비롯해 유럽·대만·인도 등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이 참석해 영화를 관람했다. 또 80여명의 현지 일반 관객과 일부 재미교포 등도 참석해 시선을 모았다.

이들은 상영이 끝난 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들은“한국적인 소재이지만 드라마의 감성은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미도’의 이번 마켓시사회는 마켓이 문을 열기 전부터 예정된 극장의 좌석이 이미 매진되기도 했다.
실미도는 이날 시사회에 이어 28일 오전 8시30분 두번째 시사회를 열고 본격적인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공략에 나선다. [굿데이 기사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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