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낮 12시. 청주시 운천동 흥덕대교 옆 골목에 자리잡은 남주동해장국 운천동점.

여느 때 같으면 청주시내 최고의 맛집으로 문전성시를 이뤄야 할 점심시간임에도 가게 안은 팔순의 주인장 할머니와 50~60세는 족히 돼 보이는 종업원 두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5분쯤이 지나자 손님 두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고, 해장국을 주문한다. 그제서야 주인장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먼저 끓는 물에 담가뒀던 뚝배기를 꺼내고, 육수, 수육, 선지해장국 순으로 한 그릇 수북하게 담아낸다. 주인장 할머니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때 손님이 한마디 건넨다. "저는 마늘 듬뿍 넣어줘야 하는 것 알죠."

손님들이 김치, 깍두기와 함께 종업원이 차려 놓은 해장국을 먹는 데 걸린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그들이 비운 자리에는 국물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빈그릇 두 개가 탁자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가게 안에는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요즘 손님이 반에 반도 더 줄었어요. 그래도 문을 닫을 수는 없지. 어떻게하든 살려봐야죠. 나라도 남주동해장국의 명맥을 이어가야지."

최근 불법도축한 축산물을 사용해 물의를 빚고 있는 남주동해장국의 원조 장경례 할머니(84)가 한숨과 함께 꺼내놓은 첫마디다.

"나는 그런 소 여태껏 구경도 못해 봤어요. 5년 전 아들에게 본점을 넘겨줬는데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됐는지." 장 할머니는 끝내 아들내외와 사돈네를 탓하지 않았다.

남주동해장국 본점과 일부 체인점에서 불법도축된 축산물을 사용해서 물의를 빚고 있지만, 5년 전 문을 연 장경례 할머니가 운영하는 운천동점은 아직도 최상의 식재료만 사용한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남주동해장국파문이 청주시내 전체를 강타하고 있는 요즘도 운천점에는 할머니의 단골들이 잊지 않고 찾아온다.

장경례 할머니는 열아홉살되던 해 친정어머니와 함께 현재 남주동해장국 본점자리에서 해장국집을 열었다고 한다.

당시 남주동은 우(牛)시장과 어물전이 열리는 청주시내 최고의 상권으로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그만큼 장사도 잘됐다.

오후 4시부터 통금시간인 밤10시까지 장사를 했지만, 밀려드는 손님으로 밤 9시면 문을 닫을 정도였다. 그당시 하루에 최고 300인분은 팔았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이 청남대 준공식 당시 소문을 듣고 150명분을 청남대로 주문했던 일화는 할머니 가슴속에 최고의 순간으로 남아 있다.

"가게 문을 열 때부터 여태까지 간장, 고추장서부터 선지까지 직접 내손으로 담그고, 구입해서 썼어요. 최상의 재료로만. 지금도 모든 양념과 재료를 최상의 국산만 쓴다고 자부해요. 국자질도 누구에게 맡겨본 적 없고요." 그만큼 장 할머니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곁을 지키던 셋째 아들은 "어머님은 아직도 새벽 다섯 시에 농수산물시장을 빼놓지 않고 다닌다. 배달시키면 아무래도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손수 시장을 찾으시는 거다. 그리곤 오전 5시30분부터 밤10시까지 장사를 하신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상심이 크시다"고 거들었다.

이날 오후 1시까지 두 명의 손님을 더 받은 장경례 할머니는 "기자양반 (고객)여러분께 (본점 등에서 불법도축된 축산물을 사용해 장사한 것) 죄송하다는 말 꼭 좀 써 주세요."라며 안타까워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