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명지대 교수 “석빙고는 굴뚝때문에 얼음창고 역할하는 것”

이번에는 건축이다. 그것도 건축과 과학이야기. 건축 속에 이런 흥미로운 과학이 숨어있는지 몰랐다. 저건 왜 저렇게 지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보니 과학의 원리를 이용했던 것이다. 이재인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2011 청주인문학교실’에서 ‘현대과학에서 본 건축의 미래’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과학의 근간은 관찰과 측정으로 이뤄지고, 측정의 기초는 수학이라는 견지에서 본다면 고대 건축물에도 과학적 원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로마 판테온 신전 중앙 돔에는 8.2m 가량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비가 새면 어떻게할까 걱정하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연중 강수량은 적다. 판테온 신전은 모든 신들을 위한 만신전이라는 의미로 온갖 제물을 바치고 태우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만약 이 구멍이 없었다면 신전은 자욱한 연기 때문에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이 교수 말이다. 또 이 신전 벽에 사용된 와플무늬는 무게를 경감시키는 역할을 해서 하중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재인 교수

바람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대도시 빌딩숲 사이를 지나갈 때 바람이 없는 날씨인데도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심에 높은 빌딩벽이 생기자 피할 방법이 없던 바람이 벽에 부딪히면서 하이드(수직류)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이를 재미있게 ‘먼로바람’이라고 불렀다. 마릴린 먼로가 손으로 치마를 내리는 그 유명한 사진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일교차가 심한 사막지역에는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분다. 건물 꼭대기에 있는 바람탑은 높은 대기에 있는 맑고 시원한 바람을 잡아 집안의 열을 식히고 내부의 더운 공기를 위로 밀어내는 자연환기장치 역할을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팔만대장경과 판테온 신전, 이집트의 집풍장치 ‘말카프’, 석빙고 같은 것들이 굴뚝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건물들이다. 수직공간을 통한 공기의 움직임을 노렸을 뿐인데 효과가 크다. 경주 석빙고에도 밖으로 솟아오른 3개의 굴뚝이 있다. 이것이 얼음창고 역할을 한다.” 평범해 보이는 굴뚝 하나가 이렇게 큰 역할을 한다는 게 참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 외 그는 엘리베이터가 장력(도르래)과 압력(평형추)의 평형을 이루면서 움직인다는 과학적 사실, 화장실 변기 물이 차있는 것은 하수구에서 역류하는 악취와 벌레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 건물외벽은 단열재라는 내복을 입고 있어 춥지 않다는 사실 등에 대해 역설했다. 경복궁 경회루가 天地人과 三才, 八卦, 陰陽의 원리를 적용한 건물이라는 사실과 모든 건물은 흔들리는데 이런 건물 꼭대기 층을 무겁게 하면 천천히 흔들린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이 교수는 또 전세계의 마천루경쟁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중세인들은 넓은 공간과 높은 건축물안에 담긴 빛을 통해 신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고딕성당을 상당히 높게 지었다는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마천루 경쟁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는 것. 그러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건설 후 미국은 사상유례없는 대공황을 맞아 기자들이 이를 희화화해서 ‘발기지수’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남자들이 힘 자랑 하듯이 크기경쟁을 하는 것을 비꼬아 하는 말이다. 그는 또 “말레이시아, 미국, 두바이 등지가 최고층빌딩을 지은 후 경제가 어려워졌다. 이 지수는 거품경제 붕괴를 예측하는데 쓰이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고 말해 모두를 웃게 했다.

향후 건축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나노기술과 건축이 만나는 획기적인 미래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나노건축술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 “꿈같은 일, 만화같은 일이 일어난다. 상상하면 이뤄진다. 그러기 위해 건축가는 꿈을 꿔야 한다. 과연 꿈꾸는 것이 작가들만의 전유물인가”라고 그는 반문했다. 작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건축가의 꿈을 기대해보자.

‘건축의 대중화’ 총대 멘 이재인 교수는 누구?
사비털어 건축 전문가들과 ‘K-12 어린이건축학교’ 운영

이재인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의 주 관심사는 건축의 대중화이다. 건축의 높은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위대한 건축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건축에 노출이 덜 되었기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 건축은 매우 재미있는 분야인데, 전문가들이 이 분야 얘기를 어렵게 쓰고 있다. 이런 점도 문제다.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건축을 재미있게 접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200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사)문화도시연구소 부설 ‘K-12 어린이건축학교’(www.ek-12.org)도 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것이다. 비영리교육운동단체인 ‘K-12 교육모임’은 건축관련 전문가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각급 학교에 프로그램을 공급한다. 처음에는 3명이 시작했으나 현재는 12명의 건축사·교수가 사비를 털어 봉사하고 있다. 특강 등을 통해 얻은 수입을 여기에 쏟아붓는다고 한다. K-12는 유치원부터 12학년에 해당하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과정을 말하는 것.

이 교수는 “현재 성북초·혜화초 특별활동 수업시간에 찾아가 건축교육을 한다. 별도 교육프로그램을 가져가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수업을 한다”며 “주말에 시간 내는 게 쉽지 않지만, 씨 뿌리는 심정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시민대상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고. 역시 그는 사비를 털어 어린이건축학교를 운영하는 사람 다웠다. 시민과 호흡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이 교수는 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건축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원대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명지대 건축학부 조교수로 있다. 저서로 ‘건축속 재미있는 과학이야기’와 역서로 ‘다빈치의 위대한 발명품’이 있다. ‘건축속 재미있는 과학이야기’(시공사 刊)는 2006~2007년 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우수도서에 잇달아 선정됐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건축 속에 숨어있는 과학원리를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하고 있다. 지난 15일 ‘2011 청주인문학교실’에서도 이 교수는 세계 각국의 특이한 건축물과 그 속에 들어있는 과학원리를 재미있게 설명해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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