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처리는 늑장, 단속행정만 속도전… 공무원·민원인 모두 ‘불만’

제천시가 지난 2007년 정부 수립 60년 만에 기초자치단체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시행한 팀제 조직 개편의 후유증이 민선 5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엄태영 당시 시장은 담당-과장-실국장 체계였던 기존 조직을 전면 해체해 팀장직을 시정 집행의 핵심 세력으로 육성하는 팀제 조직을 단행했다. 또한 5급 사무관뿐 아니라 6급 주무관까지 팀장이 될 수 있도록 자격을 개방해 연공서열이나 직급보다는 실력과 성과 중심으로 공직 분위기를 일신하겠다는 시장의 의지를 드러냈다.

▲ 제천시가 민선 4기 출범 직후 단행한 팀제 조직 개편이 민원처리 미숙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실제 팀제 도입 후 엄 전 시장은 팀별 실적 경쟁을 유인할 각종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적절히 활용해 공직 사회에 만연한 복지부동, 무사안일의 관행을 깨뜨리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직급 서열에 따른 통합·조정 시스템 실종과 실적 경쟁에 따른 부서 이기주의 만연으로 민원 처리가 더뎌지는 등 부작용 속출로 팀제는 공무원과 민원인 모두의 대표적 불만 요인으로 부상했다.

부서 간 이기주의 만연

민선4기 때 무려 6개월이 걸려서야 자동차 정비 공업사를 개업했다는 A씨는 “시청 이 팀 저 팀을 찾아다니며 서류 제출하고 도장 받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공업사 하나 차리는 데 반 년이 걸릴 정도면 다른 업무야 오죽하겠느냐?”고 되물었다. A씨는 “내가 똑같은 규모의 공업사를 강원도 동해시에도 오픈했는데 거기 공무원들은 불과 2주 만에 사업을 승인해 주더라”고 덧붙였다.

통합·조정 시스템의 오작동은 비단 팀과 팀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한 팀 안에서도 모든 세부 업무를 직원별 책임제로 바꾸다 보니 업무 협조가 기본인 한 팀 내에서조차 조정 능력이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실제 시청 한 부서의 경우 6급 주무관과 평직원이 한 조를 이뤄 현지 점검에 나섰다가 업무분장을 이유로 일반인 앞에서 주무관이 평직원에게 면박을 당하는 상식 밖의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당시 C주무관은 규정에 따라 D직원과 2인 1조가 돼 한 사업체를 지도 방문했다. 이때 C주무관은 평소 안면이 있던 업체 사장에게서 상황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D직원이 갑자기 끼어들어 ‘이 업무는 내가 책임자이니 계장님과 상대하지 말고 나에게 말하라’며 두 사람에게 면박을 주었다”며 “해당 분야에 경험이 많고 직급도 높은 주무관이 평소 안면이 있는 외부인 앞에서 이 같은 모멸적 상황을 당한 데 대해 팀 내 여론이 안 좋았고, 이로 인해 D직원 책임 업무에 대해서는 팀원들의 조언이나 협조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때문에 D직원과 관련한 업무가 특히 지연되는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갔다.
시청의 또 다른 공무원은 “인근 충주나 강원도 원주는 어떤 민원이든 관계 부서들이 일사불란한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특히 기업유치는 더욱 그렇다”고 소개한 뒤 “지난 민선 4기 제천은 조직을 팀으로 쪼개고 승진을 미끼로 비정한 경쟁논리만 앞세우다 보니 책임이나 실적 구분이 모호한 중복 민원 업무는 그만큼 협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공업사 개업에 6개월” 분통

이 때문에 시민들 사이에서는 “제천이 전국에서 민원 허가가 가장 늦게 나는 지역”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만큼 팀제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제천 주변 시 단위 자치단체 중 원주는 1995년 시군 통합 당시 20만 명 초반이던 인구가 이달 초 기준 31만 9143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보다는 무려 1만 193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통합 당시 같은 규모였던 충주시는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2004년 21만 명 선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2008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매년 수백 명 이상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집을 구하지 못해 주택대란을 우려할 정도로 지역에 활기가 넘친다.

반면 제천시는 민선 3기였던 2004년 14만 명 선조차 무너진 뒤 민선 4기인 2009년까지 줄곧 인구가 감소했다. 지난해는 2월부터 네 차례 사할린 동포 116명이 영주 귀국해 제천으로 호적을 옮기고 세명대·대원대 학생들의 전입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명목 인구는 늘었지만, 기업유치 등에 따른 외지인 유입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

시민 김모 씨(65·청전동)는 “말로는 인구 증가를 외쳤던 시가 팀제를 통해 민원 통합처리 시스템을 해체해 창업이나 공장 이전 같은 경제 관련 민원을 소홀히 한 것은 시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반면 각 팀별로 실적 달성에 열을 올린 나머지 각종 단속이나 압류 등의 징벌적 행정에만 속도를 가했으니 기업과 사람이 제천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천시 관계자는 “최명현 시장 취임 후 부분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팀제의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고 이에 대한 기업과 민원인들의 민원 만족도도 많이 높아졌다”며 “‘성공경제도시 제천’이라는 시정 모토대로 현재 일진제약 등 중견기업의 지역 입주가 잇따르고 있어 인구증가 시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팀제의 여러 문제점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내 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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