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요즘 들어 오송역을 이용하는 횟수가 부쩍 많아졌다. 전시기획에서부터 홍보와 마케팅, 국내외 교류, 그리고 이러저러한 집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일을 해야 하는 내게 KTX는 알뜰하고 유용한 교통수단이 된 것이다.

40분이면 서울역에 도착하니 강북권에서 업무를 볼 때는 고속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다. 또한 객차 내부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TV와 잡지를 보며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멀어지는 한유로움도 마음에 든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반도의 좁은 땅덩어리에서 고속철도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속도의 시대에 행여 뒤질세라 조급해하며 바동거리는 것은 인간의 영혼에 깊은 상처만 줄 뿐이라고. 나도 자연주의자이고 문화기획을 하는 사람이니 이들의 논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번잡한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지혜, 되레 이러한 문명세례 속에서 아날로그의 정신을 찾는 것도 생활의 활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조화로운 디지로그를 주창한 어느 학자의 이야기처럼 이것이 운명이라면 이곳에서 새로운 미래가치를 찾고 문화예술과 생명과 생태가 조화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속에서 나는 아름다운 서정을 노래하고, 스쳐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즐기며, 꽃 피고 녹음 우거지며 오방색 단풍으로 물들고 북풍한설로 춤추는 차창 밖의 사계를 눈요기한다는 것은 축복이자 색다른 즐거움이 아니던가.

이따금 지나간 삶의 애환이 흐르는 폐역이나 순결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시골역을 여행하는 재미는 또 어떤가. 유수처럼 빠르게 스쳐가는 열차를 하릴없이 바라보며 다시 못 올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가슴에 담고, 승차권을 손에 쥐고 벤치에 앉아 무념무상에 빠지는 조촐한 기다림은 그것만으로도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한국에는 1899년 9월 18일 인천 제물포와 서울 노량진을 잇는 33.2km 철길이 처음 선보였다. 증기기관차였는데 기관차·탄수차·객차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외국인과 남녀가 따로 타게 돼 있었다. 탄수차에 실려 있는 석탄을 때서 보일러를 데워 증기가 발생하면 이 증기의 힘으로 시속 20km를 달릴 수 있었다.

이후 일본인들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군수물자 수송 등의 이유로 철로를 개설, 1905년에 서울과 부산,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노선이 개통되었다. 1945년에는 국내 기술로 처음 만든 증기차가 영등포~수원구간을 운행했고 6?25전쟁 중에 유엔군이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디젤기관차를 처음 들여오면서 국내 철도의 중흥시대를 열게 되었다. 디젤기관차는 디젤기관을 통해 경유를 태워 열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바꾸고 전기로 다시 바꿔 바퀴를 돌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연료 효율이 높고 시속 150km까지 달릴 수 있어 전국으로 확대 보급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매연 등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사회적 여론에 뭇매를 맞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도권 전동차, 경춘선 전차, 그리고 KTX까지 최근에 개통된 노선은 대부분 전기기관차다. 특히 KTX는 시속 300km를 달리면서 프랑스의 테제베, 일본의 신칸센과 함께 속도혁명의 리더가 되었다. 여기에 소음이나 진동이 거의 없고 친환경적이며 40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자기부상 열차도 선보이기 시작했다.

최첨단 기술의 종결자인 KTX의 오송역은 역사적으로, 문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서 새로이 출발하는 소통의 플랫폼이다. 게다가 이 일대가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생명과학단지, 바이오밸리 등 과학과 생명과 바이오산업을 선도하게 되었으니 이곳은 하늘의 길, 땅의 길이 아니라 미래의 길이자 생명의 길이며 세계의 길이 아닐까. 여기에 올 가을 열리는 2011청주공예비엔날레 기간 중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애용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문화예술이 꽃피고 문화로 소통하게 되었으니 오송의 꿈이 여물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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