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을 만나다(10)
권희돈/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 에 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 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8:3-11)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모세의 율법이고 이스라엘의 전통이었다. 예수는 약한 자를 보호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고 가르쳐 왔다. 만약에 여인을 죽여야 한다는 율법을 따르면 하느님의 법을 거역하는 것이고,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율법을 어겨 꼼짝없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예수는 침착성을 잃지 않고,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썼다.

우리의 주인공 예수는 과연 땅바닥에 무슨 말을 썼을까? 갑자기 닥친 상황에 난감하여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낙서처럼 쓴 것일까? 무슨 말을 썼지만 군중들이 모르는 문자로 쓴 것일까? 무슨 말을 썼기에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과 군중들이 다 돌을 버리고 떠나갔을까? 그가 쓴 글자 속에는 분명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는 의미가 담겨 있고, 성서 전체의 핵심적인 의미가 담겨 있고, 예수의 신격이 담겨 있으며, 하느님의 스토리텔링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예수는 여인의 죄만 보지 않고 그녀를 단죄하려는 남자들의 죄도 함께 보았다. 어느 한쪽만을 본 것이 아니라, 양쪽의 죄를 다 보았기 때문에 ‘죄인이 죄인을 단죄할 수 없다’는 현명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눈이 예수의 시각이고 하느님의 시각이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예수는 그 여인을 용서했고, 비로소 여인은 예수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예수로부터 용서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 자신들만을 선택했다고 주장하지만, 하느님이 보기에는 유대인들은 율법 속에 갇혀 있고 자신들만을 사랑하는 독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예수를 보내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1차 스토리텔링이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 8장7절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모세의 율법이고 이스라엘의 전통이었다. 예수는 약한 자를 보호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고 가르쳐 왔다. 영화 ‘패션오브크라이스’한 장면

한편 사울은 여전히 살기를 띠고 주의 제자들을 위협하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커스에 있는 여러 회당에 보내는 공문을 청하였다. -중략-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커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었다. 그가 땅에 엎드리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사도행전 9:1-19)

이 사건 속에는 하느님의 2차 스토리텔링이 숨겨져 있다. 하느님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법을 알릴 인물이 필요했다. 물론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갈릴리 제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반석 같은 믿음은 갖고 있었지만 설득력은 약했다. 그리고 그들은 할례를 받은 이들에게만 복음을 전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찜한 사람이 사울이었다. 사울은 총명한 머리와 고귀한 유대 혈통을 지녔으며 그리스 철학에 정통한 지식인이었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울은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 이름도 바울로 바꾸고 이방인 선교의 선봉장이 된다. 그는 먼저 서양철학의 본고장인 아테네로 달려간다. 아고라 광장에 가서 쾌락주의 학파들이나 금욕주의 학파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다.

부유한 항구 도시 고린도와 소아시아 최대의 도시 에베소에 교회를 세운다. 터키의 남부도시 다소와 골로새와 데살로니카에도 교회를 세운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적국의 심장인 로마든, 나쁜 사람들이 산다는 사마리아 땅이든 가리지 않고 전도여행을 떠난다. 오직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4차에 걸친 전도여행 동안 그가 걸은 길은 무려 7만km가 넘는다.

바울의 이방인 선교로 말미암아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리스도교는 세계 종교의 중심으로 우뚝 자리 잡았다. 바울이 아니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유대 땅 시골마을의 작은 종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올해는 예수 탄생 2011년째 되는 해이다. 전 지구촌에 심상찮은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화산이 터지고, 때 아닌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서는 뱀·지렁이·두꺼비 같은 파충류 떼가 갑자기 나타나 인가로 몰려들고, 지진과 쓰나미와 원자로 붕괴로 지구 전체가 미증유의 재난을 겪고 있다. 이는 하느님이 3차 스토리텔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리는 엄중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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