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남영 현대HCN충북방송 대표이사

한글맞춤법이나 외래어표기법에서 모음 때문에 실수를 범하는 수가 많다. 앞서 42회에서 모음 ‘ㅜ’와 ‘ㅡ’의 혼동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이보다 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ㅐ’와 ‘ㅔ’다.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주의를 게을리 하면 평생 틀리는 줄 모르고 쓸 수도 있는 것이다. 결(決裁)와 결(決濟)의 차이를 모르는 직장인들이 의외로 많은 이유가 여기 있다.

동양일보 5월16일자 15면 <주거지역의 자연경관을 치는 데다 비산먼지를 일으키면서 ~>의 ‘헤치는’은 ‘치는’의 잘못이다. ‘헤치다’는 덮인 것을 드러내거나 흩어지게 하는 일, 또는 극복의 의미다. 그라나 ‘해치다(害 -)’는 뭔가를 망가뜨리는 것을 뜻한다.

MBC 5월15일자 <대전시는 한 발 물러나는 모양를 취하고 있습니다.>에서 ‘모양세’는 없는 말(→모양)이다. 참고로 품(태권도 용어)와 품(태도나 됨됨이)는 둘 다 맞는 유음이의어다.

두 모음의 혼동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금’다.<묘목 2만 그루가 금 동이 났습니다.>(MBC 4월18일자)에서 보였다. ‘밤새(밤사이)’라는 말에서 ‘새’를 떠올린 탓인지 이렇게 잘못 알고 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금시에’의 준말인 ‘금’가 맞는다. 반대로 ‘찌’는 틀리고 ‘찌’가 옳다. 이처럼 헷갈리는 이유는 현실발음에서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년층은 그래도 ‘ㅐ’와 ‘ㅔ’를 구분해 소리내지만, 젊은 층과 경상도에서는 사실상 소리 경계가 없어졌다.

우리말 표준발음법에서 인정하는 단순모음(소리 낼 때 처음부터 끝까지 입술과 혀 모양이 같은 상태로 유지됨)은 10개(ㅏ ㅐ ㅓ ㅔ ㅗ ㅚ ㅜ ㅟ ㅡ ㅣ). 이 중 ‘ㅐ ㅔ ㅣ’는 혀 앞쪽에서 나는 전설모음에 속하는데, 혀의 높이가 다르다. 혀 위치가 가장 낮은 ‘ㅐ’는 중간인 ‘ㅔ’와 분명히 다르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이 둘을 점차 대충 발음하면서 같은 소리처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아예 음가가 같다고 본다. 하지만 표기는 분간해야 한다. 실제 유의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돌맹이(→돌이), 알멩이(→알이), 시레기(→시기), 천도제(→천도) 등등.

기사 문장에 이런 착오를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현제(노컷뉴스 10년8월16일→현), 견재(동양 10년 8월27일 19면→견), 째째한(충북 10년 9월2일 15면→쩨쩨한), 건낸(KBS 09년8월12일,CJB 11년 2월7일 →건), 끝나는데로(충청일보 10년 12월6일 3면→로), 기부체납(충북 1월21일 15면→기부납), 못한 대다(MBC 4월29일→다), 고백컨데(충청리뷰 5월4일→~컨)

같은 이유로 육계장(→육개장)도 자주 틀린다. 또 유음이의어 유례(類例)와 유래(由來)를 혼동하는 기자도 여럿 봤다.

그런가 하면 이의어는 아니지만, 모음혼동에 따른 외래어표기 혼란은 더욱 심한 느낌이다. 외래어라서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상품이나 간판에서 보이는 혼란상을 그저 두고만 볼 일인지 고민스럽다. 그저 알파벳 표기가 ‘e’일 때와 ‘a’일 때를 가려 쓰면 될 것을 네비게이션(→비게이션), 트래킹(→트킹), 레프팅(→프팅) 등 잘못 적는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케릭터(10년 7월19일 5면→릭터), 헤프닝(충청투데이 4월25일 5면→프닝), 알래르기(중부매일 5월12일자 4면→알르기), 테블렛(중부매일 5월12일자 9면→블릿)등이 그런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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