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북망은 대문 밖 앞산 뒤산이었네

스토리텔링을 만나다(9)
권희돈/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아주 옛날 모계가 중심이 되었던 시대에는 남자가 활시위 하나를 들고 여자한테 장가를 갔다. 여자는 남자가 가져온 활시위를 받아 항상 방 안에 걸어 둔다. 둘이 한참을 살다가 남자가 기력이 쇠진해지면, 남자가 사냥하러 나간 사이에 여자는 활시위를 사립문에 걸어놓는다.

사립문에 활시위가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남자는 사립문 안쪽으로는 한 발짝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그 즉시 활시위를 가지고 타박타박 친정으로 가야 했다. 친정에 가서도 청상과남(靑孀寡男)으로 행동거지를 조신하게 갖고 지내야지 그렇지 못하면 다시는 부름을 받지 못하였다.

모계사회에서는 여자가 신(神)이었다. 이처럼 여자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낳는 것 때문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매우 신비스럽게 생각했고, 아이를 낳는 여자에게 신성을 부여하였다.

우리나라의 무덤을 보면 여자와 산을 신성시 했던 조상들의 스토리텔링이 잘 나타난다. 한국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천신숭배(天神崇拜) 사상과 산신숭배(山神崇拜) 사상과 지모신숭배(地母神崇拜)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아이를 잉태한 여성의 모습은 산(山)의 모양을 닮았다. 산을 닮은 곳에서 태어났으니 죽어서도 산으로 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산에다 무덤을 만들고 아이를 잉태한 여자의 모습과 같은 봉분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봉분 주위에 둔덕을 쌓아서 여근곡(女根谷)의 모양을 만들고, 봉분 앞에 남성을 상징하는 비석을 세워 음양의 조화를 맞추었다.

무덤 속 깊은 곳 관(棺)이 들어가 있는 자리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다. 어머니의 자궁은 행복도 불행도 없는 완벽한 유토피아의 공간이었고, 모든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그곳을 혼자 차지하고 살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죽은 후에도 그렇게 안락한 곳에서 살라고 무덤 속을 어머니의 자궁과 같이 꾸며 놓았던 것이다. 그곳은 단지 주검이 묻힌 축축하고 어두운 세상이 아니다. 밝고 환하게 빛나는 곳이며, 값진 삶의 향기가 풍기는 곳이다. 영혼이 부활하여 생명력과 행복감이 넘치는 더 나은 세상이다.

▲ 한국인에게 북망은 먼 곳이 아니었다. 대문 밖 앞산 뒷산이 북망이었다. 평지에서는 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지만, 산에서는 죽은 이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로 풍기리/살아서 섧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박두진의 <묘지송> 전문)

한국인에게 북망은 먼 곳이 아니었다. 대문 밖 앞산 뒷산이 북망이었다. 평지에서는 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지만, 산에서는 죽은 이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이처럼 산자의 마을을 중심으로 앞산 뒷산에서 산자와 죽은자가 어울려 사는 것이 우리 한국인의,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던 독특한 문화였다.

지금도 우리는 명절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기일에는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그 때 우리는 살아계신 부모님들만을 뵈러 고향에 가는 게 아니다. 고향의 앞산 뒷산에서 잠들고 계신 조상님들도 함께 뵈러 가는 것이다.

40년을 다른 나라에서 살아온 친구가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나에게 귀소본능이 있는 줄은 몰랐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들이 너무 보고 싶더라고. 서양의 산들은 사람이 사는 마을과 멀리 떨어져 혼자 우뚝 솟아 있어. 그런데 한국의 산 은 동글동글하니 너무나도 정겹단 말야. 안기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늘 함께 하고 싶은 게 한국의 산이야.”

꿈에도 그리던 고향산천을 둘러보고, 꼭 가보고 싶다던 곳들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온 친구가 던진 한 마디는 날이 갈수록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이 산하의 현실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참담한 일이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풀 한 포기라도 보호하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국은 지금 산 까뭉개기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산과 대지는 무참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아름답던 산하가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 어디를 가나 온통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눈을 들어 바라볼 곳이 없게 되었다.
그나마 조상님들이 무덤 속에서 버티고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산과 대지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오염되고 파괴되었을 것이다.

산을 죽이는 것은 우리의 어머니를 죽이는 일이고 우리의 조상을 죽이는 일이고 우리의 후손을 죽이는 일이다. 땅의 살갗을 뭉개버리고 찢어버리는 개발의 논리는 이쯤에서 멈추었으면 좋겠다. 산을 잘 지키고 잘 보존하여 무덤의 평화를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 산의 신성성을 되찾고 모성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이 모든 소망을 담아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살려내는 산의 스토리텔링을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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