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한 보호장치 사라지며 오히려 ‘논란’ 불러
“토론보다 연설달인이라고 하는 게 적절” 견해도

탈권위와 비권위가 혼재되기 일쑤“노무현 대통령의 어휘박스에 들어갔다 나오면 말이 이상하게 변한다.” 김경재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5공 시절 ‘전두환 시리즈’가 유행했다. 문민정부 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투리 강한 어법이 화제가 됐다. 두 전직 대통령들의 ‘시리즈’는 풍자와 유머였다. 노대통령의 말을 둘러싼 논란은 최고권력자를 소재로 한 해학 차원을 넘어선다. 그의 말은 끊임없이 정치적 시빗거리로 떠올랐다. 이는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노무현의 어휘박스’ 속으로 들어가 봤다. 거기에는 7가지의 색이 있었다.

①’열린사회…’〓처음부터 대통령의 말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면 화제로 떠오를 이유가 없다. 지난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이 여과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논란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어휘박스 속에는 권위주의 시대와는 달리 대통령의 말에 대한 보호장치가 사라진 환경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②’…와 그 적들’〓’대통령의 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시각은 ‘적대적 언론관’과 맥이 닿는다. 일부 언론이 의도적으로 지엽적인 문제를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지난해 ‘공무원 새끼’ 발언이나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발언이 그 예다. 노 대통령도 이에 대해 수차례 ‘진의가 왜곡됐다’고 섭섭함을 나타낸 적이 있다.


③’생각의 속도〓말의 속도’〓대선 선대위에 참여했던 한 민주당 인사는 “노 대통령이 ‘토론의 달인’이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의 달인’이 노 대통령에게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토론은 쌍방향이지만 연설은 일방향이다. 노 대통령은 토론을 즐기는 편이지만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한 뒤 나중에 자신의 말을 한다. 말을 할 때는 다변이 된다. 간혹 노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노 대통령은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은 생각의 속도와 말의 속도가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④탈권위와 비권위의 혼재〓이병완 홍보수석은 ‘정부 출범 1주년 보도자료’에서 “대통령에게 “탈권위도 좋지만 비권위는 안된다”고 말한다. 비권위는 지적받고 비판받아 왔다. 언론도 “비권위를 확산시키는 일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의 ‘서민화법’에 문제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⑤선택적 도덕성〓정계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상은 노 대통령의 ‘서민화법’이 아닌 정치적 발언이다. 김경재 의원은 노 대통령 화법의 특징을 ‘선택적 도덕성’이라고 비판한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뜻이다. ‘10분의 1’ 발언은 그 예가 될 수 있다. 1월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민주당을 ‘개혁거부세력’이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민주당 의원들의 ‘청와대 앞 침묵 시위’로 비화됐다. 당시 문희상 비서실장은 항의 방문한 김 의원에게 “대통령은 자신이 분당을 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서 밀려 나간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노무현 어휘박스에 들어가면 말이 이상하게 변한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을 ‘약자’로 위치 지운 뒤 상대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어법을 구사한다는 게 김 의원의 분석이다.


⑥’나는 약자’1〓노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자신을 ‘약자’로 지칭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노 대통령은 종교계 원로 간담회에서 언론 정책에 대해 “포용이라는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것인데 대통령은 강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했던 김수환 추기경은 “(그 말을 들은 뒤) 뻔히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⑦’나는 약자’2〓세간의 상식은 ‘대통령은 강자’다. 김 의원과 김 추기경의 비판은 대통령이 이 상식을 뒤집는 화법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노 대통령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치적도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자율화’다. 여당인 열린 우리당의 의석은 개헌저지선에 미치지 못한다. ‘강한’ 대통령과는 달리 ‘약한’ 대통령은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결국 ‘노무현 어휘박스’는 ‘대통령은 강한 존재’라는 상식과 ‘권력 기반이 약한 대통령’이라는 현실 사이의 모순에서 탄생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4·15총선’은 현재의 권력지도에 변화를 가져올 계기다. 총선 결과에 따라 대통령의 ‘어휘박스’가 어떻게 달라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 굿데이 기사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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