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펴낸 이정식 전 CBS 사장

중학생이 된 소년은 동요 대신 가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신문기자였던 아버지는 1967년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나온 가곡 LP판 10장을 선물했다. 한국가곡전사라는 부록에는 디스크에 담긴 70여곡의 악보가 수록돼 있었다. 스승은 따로 없었다. 그때부터 듣고 따라 부르기 시작한 사공의 노래, 동심초, 그 집 앞, 명태 등은 40여 년째 부르는 노래들이다.

소년은 훗날 기자가 됐다. 1979년 CBS 사회부 기자가 출발점이다. 그런데 2년이 채 안되어 소속이 KBS로 바뀌었다. 신군부가 강제로 언론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CBS는 선교기능만 남았고 기자들의 집단전출이 이뤄진 것이다. 이를 기회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988년 보도기능이 회복되자마자 7년여 만에 CBS로 돌아왔다.

1998년 7월에는 CBS청주방송 본부장이 됐다. IMF 금융위기로 그는 시험대에 올랐다. 신참내기 지방국 본부장은 경영위기 타개책으로 음악회를 택했다. 2000년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 콩쿠르를 청주에서 개최했다. 장관상을 내걸었기 때문인지 무려 413명이 몰렸다. 그는 부산, 대구 본부장을 거쳐 2003년 본사 사장이 됐다. 사장을 연임했지만 CBS 전국콩쿠르는 지금도 청주에서 열린다.

▲ 1967년 아버지로부터 LP판과 함께 선물 받은 가곡 악보집.
그러던 와중에 1999년에는 청주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다. 지역에서 열린 음악회에 게스트로 초청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리운 마음’과 ‘아무도 모르라고’를 열창했다. 2001년 부산본부장시절 비매품 가곡CD를 냈고, 2008년 말에는 지인들에게 캐럴과 가곡 등을 담은 CD로 연하장을 대신했다.

그는 서울 토박이다. 충북과 운명적인 인연을 굳이 들추자면 군대생활 2년을 증평에서 보냈다는 것이 시작이다. 2006년 3월에는 이원종 전 지사로부터 명예충북도민증을 받았다. 그는 또 가경교회 장로다. 오죽하면 청주에서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풍문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을까? 그와 청주의 인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2010년 3월부터는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그는 바로 이정식 (사)월드하모니 이사장이다. 월드하모니는 10만명이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국민대합창 이벤트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열기를 드러내기 위한 비영리조직이다. 14일 서울과 평창, 뉴욕에서 행사를 동시에 성사시켰다.

▲ 노래를 부르면서 궁금했던 것을 추적해서 쓴 가곡에세이.
기자는 참을성이 없다. 궁금한 것은 꼭 알아내야하고 알아낸 것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한다. 이 이사장은 현직 기자시절 5권의 책을 냈다. 1985년 <북경특파원>을 시작으로 1992년에는 <기사로 안 쓴 대통령 이야기>를 썼고, <워싱턴 리포트·1995> <이정식의 청주파일·2000> 등 제목에서도 기자가 쓴 책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6월3일 오후 4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 신작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한결미디어>도 이 이사장이 그동안 가곡을 접하고 부르면서 느꼈던 궁금증을 직접 해소시킨 책이다.

지난해 5월20일 옥천에 있는 정지용 생가에 갔다가 ‘그리워’라는 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발단이다. 월북문인으로 오해받았던 정지용의 시 ‘그리워’는 이 이사장의 애창곡 가운데 하나인 이은상의 ‘그리워’와 주요 구절이 거의 일치했다. 도종환 시인과 정지용 연구가인 최동호 교수 등과 만난 뒤에 내린 결론은 ‘시대상황’을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참에 그동안 노래를 부르면서 궁금했던 것을 풀어보자는 생각에 집필에 들어갔다. 시가 어떻게 노래가 됐는지를 알면 감흥도 더 커질 것 같았고….” 책을 쓰게 된 이유다.

중국 당나라의 여류시인 설도가 지은 한시를 번역해 만든 ‘동심초’의 1,2절은 같은 한시에 대한 다른 번역 버전일 뿐이다. 김민부의 시로 알려진 ‘기다리는 마음’도 번역 또는 번안물이지만 이 역시 하나의 창작이다. 32세로 일찍 생을 마감한 ‘진달래꽃’의 김소월의 자살원인은 일본경찰의 감시와 그들이 준 모욕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진진한 이야기들은 이 이사장의 추적을 통해 개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서가에 있는 옛 시집들을 샅샅이 뒤졌고 제주, 마산, 경주, 벌교, 덕소 등 노래의 자취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이 이사장의 초고는 지난해 8월부터 충청리뷰에 ‘시인과 노래’라는 타이틀로 7개월 간 연재됐다. 그리고 다시 300페이지에 가까운 책으로 묶였다. 책에 등장하는 22곡을 직접 부른 CD는 증정품이다. 이 이사장은 “글을 쓰면서 질곡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선조들에 대해 연민의 마음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우리 가곡은 이 같은 역사 속에서 한국민의 서정성과 향토성, 민족애 등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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