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꼼수…여론 떠보기 결국 충청권에 무릎
최초 민·관·정 도청마당 집회 등 ‘올인’ 투쟁 성과

‘돼야 할대로 됐다.’
과학 분야 최대 국책사업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입지 결정에 대한 반응이다. 16일 정부는 과학벨트 거점지구로 대전을, 기능지구로 오송과 오창, 세종시, 천안을 최종 결정했다. 충북은 세종시가 거점지구에서 배제된 것은 아쉽지만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이라는 대통령 공약이 이행됐다며 크게 반기고 있다.

당연하고 자연스런 결과로 보이지만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백지화된 뒤 1년여 동안 온갖 꼼수와 여론 떠보기가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 이어져왔다.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라며 한목소리를 낸 충청권 3개 시도의 튼튼한 공조와 민·관·정 연대 속에 ‘올인’한 투쟁의 정치적 승리인 것이다.

충청권 공조를 배경으로 충북에서는 충북도와 정치권, 시민단체가 민·관·정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힘을 모았다. 충북도 개청이래 최초로 도청 마당에서 집회가 열렸고 역시 최초로 청내에 농성장을 만들어 철야농성을 벌였다.

▲ 과학벨트 입지 최종 발표를 앞두고 민·관·정 공대위는 도정 역사상 최초로 도청 앞마당에서 대정부 집회를 개최하는 등 배수진을 치고 정부를 압박했다.
오송·오창 제외설 한때 긴장

정부는 과학벨트 후보지 압축 과정을 공식적인 확인은 기피하면서도 일부 중앙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안개전략을 구사했다. 세종시가 후보지 10곳에서 제외됐다는 사실도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고 지난 11일 5곳으로 압축된 후보지는 아예 확인조차 되지 않았을 정도다.

과학벨트 분산배치를 원하는 정부가 여론을 떠 보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분석되면서 시민단체는 청와대 상경 집회를 열기도 했다.

최종 입지 선정 결과 발표를 이틀 앞둔 14일, 대전이 거점지구로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오송·오창이 기능지구에 포함되느냐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런데 기능지구에 세종시와 천안이 포함되고 오송·오창은 제외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14일은 토요일이었지만 민·관·정 공대위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오후 5시 이시종 지사를 중심으로 김형근 도의회의장, 홍재형·변재일·오제세·노영민 의원, 한범덕 청주시장, 이종윤 청원군수, 공대위 황신모 대표·이두영 집행위원장, 유행렬 민주당충북도당사무처장이 참석했다.
이날 긴급 회의에서 충북도정 사상 초유의 결론이 내려졌다. 오송·오창의 기능지구 포함은 물론 분산배치가 현실화된다면 정부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특히 최종 입지가 발표되는 16일 까지 촛불집회와 철야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촛불집회는  이날 밤 10시까지 진행됐다. 도지사와 국회의원, 도의회의장, 청주·청원 단체장, 시민단체, 직능단체 까지 민·관·정을 총망라하는 대정부 집회가 도청 앞마당에서 열린 것이다.
집회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촛불문화제 형식을 빌었지만 분명한 대정부 군중집회였다. 또한 급하게 조직된 집회였음에도 3000여명이 모였다.

도청 내에 농성장 배수진

촛불집회는 철야농성으로 이어졌다. 도청 서관 5층 중회의실을 농성장으로 꾸며 16일 입지 발표가 나기까지 이틀밤을 지새며 농성을 벌인 것.

이시종 지사가 이틀 모두 자정 가까이 농성장을 지켰고 시민단체와 상당수 지방의원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도청 앞마당에서 지자체와 함께 대정부 집회를 열고 충북도의 협조로 농성을 벌인 것 자체 만으로도 사건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과학벨트 입지를 두고 벌이는 정부와 청와대의 꼼수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촌평했다.

아울러 민·관·정 공대위는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 약속이 지켜진 것은 이처럼 지역의 역량을 결집해 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라는 풀이를 내놓고 있다.
정부는 세종시를 경제도시로 격하하는 대신 과학벨트로 민심을 달래려 했지만 계획이 실패하면서 영남이 과학벨트 유치에 뛰어들었다. 과학벨트가 충청권에서 영남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한 것.

여기에 호남까지 뒤늦게 유치경쟁에 가세하면서 지역대결로 비화됐다. 정부의 결정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은 결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와 청와대는 끝까지 과학벨트 분산배치 의도를 멈추지 않았다. 연구단의 나눠먹기식 분산배치는 잘못된 결정이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거점지구와 기능지구가 충청권으로 결정된 것은 청와대의 꼼수를 능가하는 지역의 커다란 목소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송·오창 ‘대박’도 ‘쪽박’도 가능
포괄적 개념만 규정, 능동적 대응이 관건

오송와 오창이 과학벨트 기능지구로 결정됨으로서 이곳을 채울 커다란 빈 그릇을 받아 놓은 격이 됐다.

기능지구는 거점지구와 연계해 응용·개발 연구, 사업화 등을 위한 지역이라는 개념만 규정돼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얼마나 준비를 잘 하느냐에 따라 거점지구를 능가할 경제효과를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과학벨트 주변부로 전락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3개 기능지구에 대한 지원금은 3000억원에 불과해 오송·오창에는 10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충북이 손을 놓고 있다면 파급 효과는 극히 낮을 수 있다.
앞으로 기능지구에 보다 많은 ‘기능’을 담을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충북의 태양광산업을 비롯해, 첨복단지, 오송생명과학단지 등을 연계한 다양한 프로젝트의 추진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과학벨트라는 그릇을 받아 놓고 여기에 담을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그릇에는 먼지만 쌓을 분이다. 충북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움직이느냐가 과학벨트 기능지구로서의 오송과 오창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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