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회장-김재수 민노총 사무처장 전격 회동
같은 호텔 투숙하며 2박 3일간의 마라톤 면담
“회한과 격정 어린 심정 토로하며 눈물 쏟아”

월드텔레콤이 회사 창립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홍용성 회장의 장기 외국체류가 계속되고 있다. 선장으로서 난파직전의 배를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처지에 놓인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이 숱한 소문과 의문을 낳고 있다. 그는 왜 얼굴을 좀체 나타내지 않고 있는 것인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홍용성 회장의 근황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홍 회장이 민주노총 충북본부 간부와 월드텔레콤 노조 지회장을 홍콩에서 전격적으로 만난 사실이 밝혀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홍콩에서 만나고 싶다는 홍 회장의 희망에 따라 원정면담을 한 사람은 김재수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46)과 금선아 월드텔레콤 노조 지회장.

2월 12∼14일 홍콩 행에 금선아 지회장도 동행
이들은 2월 12일 홍콩으로 출국, 홍 회장이 머물고 있는 같은 호텔에 투숙하며 14일까지 2박 3일간 홍 회장과 마라톤 면담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홍 회장을 만나고 돌아온 김 사무처장에 따르면 홍 회장은 경영실패에 대한 회한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배신감 등을 토로하는 대목에서 대성통곡하는 등 격정적이고 자포자기의 심리상태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수 사무처장은 “지난해 말부터 주요 거래기업인 삼성전기의 요구로 삼성 소유의 생산설비를 빼내갈 수 밖에 없게 된 처지에 몰린 홍 회장이 노조와의 대화를 요청해 왔다”며 “대화장소를 놓고 서로 ‘홍콩에서 하자’ ‘한국으로 들어와 만나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다 우리가 전격적으로 홍 회장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홍콩에서의 면담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설비반출 및 구조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협의를 진행키로 약속이 된 상태에서 지난 1월 8일 회사측이 기계를 기습적으로 빼내간 사건이 발생하자 노조에서는 “홍 회장이 귀국, 당사자간 직접 만나 문제를 풀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홍 회장이 “귀국이 곤란하다”며 워낙 간곡히 노조의 홍콩행을 요청해 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제의를 수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회사사정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국제전화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설비반출 사건이 홍 회장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청주본사에 있는 임원들의 자의적 판단으로 이뤄졌다는 정황, 그리고 이런 정황 등을 근거로 홍 회장이 회사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된 점도 노조의 홍콩행을 재촉했다는 게 김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앞두고 노조라도 홍 회장에게 회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그의 진심과 향후 대응책을 들을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 회장을 만나고 지난주 귀국한 김 사무처장은 “노사간 불신이 너무 커 대화조차 안 이뤄지고 있는 교착상태를 뚫고 싶었다”며 “홍 회장을 만나 회사의 경영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결과 현재의 사태는 노사가 교섭을 통해 어떤 ‘안’을 도출, 자력으로 풀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는 위기감을 확인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노-사 모두 당사자만의 의지로 해결하기엔 객관적인 상황이 워낙 절박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거다.

“포르노사이트-골프부킹 기록  난무한 임원들 방”
실제 김 처장은 “월드텔레콤의 처지가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은 상황으로 절체절명의 국면에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란 말도 했다. 어쨌거나 홍 회장이 외국에서 장기체류중인 것과 관련, 주변에선 경영실패의 중압감, 고립무원의 처지,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 풀려났지만 아직 집행유예 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점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1월 8일에 있었던 설비반출 사건을 따졌다. 그 이전에 노조로서도 회사의 사정이 나쁜데다 삼성전기의 요구로 청주본사 공장 내 일부 설비를 빼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은 회사측의 통보를 받아 미리 알고 있었다. 다만 이 때문에 노사간에 만나 협의하기로 한 당일 새벽에 일언반구도 없이 설비를 일방적으로 빼내간 사태에 대해 항의했다. 왜 이토록 치졸한 수단을 동원했는지를 따졌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홍 회장은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청주본사 임원들의 일방적인 소행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경영체제 바뀌어야”-”실책 인정”
김 처장은 “홍 회장에게 ‘노조 역시 회사를 살리려 하는 것이다. 다만 이 상태론 안된다. 경영상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청주본사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무능 등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노사 모두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말도 허심탄회하게 했다. 다만 노조가 나름대로 회사를 위한 대안 및 협조수단을 강구하려고 노력하는데 뒤통수치듯 설비를 빼내간 것은 용서받기 힘든 일 아니냐고 추궁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청주본사 임원들의 부도덕성과 관련, 김 처장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설비반출 사태 이후 조업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고 임원들은 회사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얼굴보기조차 어려워 진 것이다. 노조에서는 이들의 빈 사무실을 결과적으로 ‘수색’하게 됐는데, 이 결과 모 이사 방의 컴퓨터는 즐겨찾기에 프로노사이트가 올려져 있었고, 또 다른 임원의 책상에는 골프장 부킹 현황이 어지러울 정도로 기록돼 있었다. 회사가 이 지경인데 회사의 경영을 책임진 임원들의 처신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싶어 말문이 막혔다.”

 이 때문인지 김 처장은 “월드텔레콤 사태가 노조 때문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경영진의 무능과 부도덕성, 경영시스템 부재 등 경영실책이 지금의 위기상황을 부른 주요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어쨌거나 노조 측의 설명을 들은 홍 회장 측에선 회사가 처한 경영현실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장시간 대화를 통해 홍 회장도 월드텔레콤의 위기가 노조 때문이 아니라 인사와 생산관리상의 문제 등 경영실책 때문에 초래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언했다. ‘회사의 내부 경영시스템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하고 엉망이었다’는 점을 스스로 수긍했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처지…연민 느끼게 해
실제로 월드텔레콤 주변에선 한때 높은 기대와 촉망을 한 몸에 받던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기술력과 몸집에 비해 내부 경영시스템이 전문화는커녕 제대로 구축돼 있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다.

“더구나 홍 회장은 최근 1∼2년 새 자신이 기업사냥꾼들에게 당한 사기피해 사건도 비교적 소상히 밝혀 놀랐다. 홍 회장의 설명대로라면 피해규모가 엄청난 듯 했다. 다만 (홍 회장에 대한)신의를 저버릴 수 없어 사기사건의 내막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한 김 사무처장은 “홍 회장이 청주 본사의 실정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고 부연했다. 또 홍 회장은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지 않은 본사 현지의 임원들과 주요 거래업체에 대해 짙은 서운함 내지 배신감 같은 감정도 품고 있는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노사불신이 화 더욱 키웠다”
김 처장에 따르면 심지어 홍 회장은 ‘월드텔레콤의 주요 거래업체를 찾아가 그 회사 앞에서 목매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할 만큼 절박한 심리상태도 드러냈다고 한다. 월드텔레콤은 ‘큰 손’인 삼성전기에 레이저 픽업헤드 제품을 거의 전량 납품하고 있는데, 시중에는 최근 들어 삼성전기 측이 주문물량을 급격히 줄이면서 경영난 가중을 불러왔다는 관측이 떠돈 지 오래다.

한편 김 처장은 “이번 만남은 노조로서도 매우 소중한 시간과 기회였고 이를 통해 공동운명체인 노사 모두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만남이 좀더 일찍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비쳤다. 김 사무처장은 “결과적으로 경영진이 겁부터 내 노조를 무조건 적대시한 결과 허심탄회한 노사간 대화의 통로를 막았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근거없는 상호불신이 기업이란 수레의 두 바퀴인 경영진과 종업원 사이를 격리, 위기상황을 키웠다는 게 김 사무처장의 인식이었다.
한편 이 회사의 노조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향후 해법을 놓고 강-온 두 시각의 인식 차가 상호 충돌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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