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규(청주JC 정책 실장)

Scene #1. 나는 군인(?)이다. 월북한 ‘빨갱이’ 아버지 때문에 기관원에게 감시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나 조직폭력배 행동대원으로 상대파 두목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죽음을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던 나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특수부대요원이 되어 평양에 침투한 후, 김일성의 목을 따오면 면죄에 상금은 물론 원하면 특수부대 장교로 임명해 준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훈련은 혹독했다. 그러나 부대를 조직했던 책임자가 떠나고 새로운 주인이 오면서 우리의 존재는 점점 잊혀져 갔다. 생사를 넘나들던 훈련보다도 힘든 시간들이었다.

 지금 우리는 서울의 한 사거리, 잠시 접수한 버스 안에서 국군과 대치하고 있다. 국군(?) 제기랄, 우리는 국군이 아니었던가? 기관원들을 죽이고 탈출해 지금 여기 있다. 특수부대원이 되며 호적에서 정리 됐다던 피 묻은 손가락으로 빨갛게 이름 석자를 남겨 본다. 수류탄 안전핀을 뽑고 던진다. 이제 남은 몇 초간 이 세상에서의 삶. 단지 찰나의 순간일 뿐인데…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지난 세월이 필름처럼 스친다.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멈추어버린 얼굴. 어머니. 어머니 이 못난 자식은 먼저 갑니다. 사랑합니다.

Scene #2. 나도 군인이다. 지금 나도 서울의 한 사거리에서 정체불명의 괴한들과 대치중이다. 두어 차례 교전이 끝났고 소대원 세 명이 구급차에 실려 갔다. 그 지옥 같던 대학입시를 마치고 낭만의 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다 군에 입대 했다. 대학에 남아 고시 패스해 장교로 입대하고 싶었지만, 교사인 아버지 월급으로 연년생인 나와 동생을 가르치기에는 힘겨웠다. 나 보다는 이번에 명문대 의대에 진학한 동생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스스로 군대 행을 결정짓게 만들었다. 첫 키스의 추억을 간직한 여자친구를 두고 돌아서야 했던 논산 훈련소의 정문이 그리도 길었고 눈물로 지새운 밤이 어제 같은데 다음달이 제대다. 거꾸로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은 진리 중에 진리라 생각하며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다니던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는 저 괴한들이 왜 내 인생에 태클을 건단 말인가? 한 시간째 조용하던 버스 안에서 노래 소리가 흘러 나오는가 싶더니 땅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버스가 폭발한다. 괴한들이 자폭을 한 듯 싶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이제 끝났구나. 이제 그리던 여자친구를 사나이 뜨거운 가슴으로 안아줄 날이 왔구나 싶었는데 가슴이 따끔하다. 부대원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슴에 끈적끈적한 땀이 흥건하다. 재수 없게 폭탄 파편에 가슴을 맞았나 보다. 졸음이 온다. 엄마가 보고 싶다.

Scene #3. 나는 영화 관객이다. 장안의 화제가 된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는 이제 막바지에 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실미도 부대원들이 서울 한 사거리에서 국군과 대치하고 있다. 버스 안에 피로 이름을 새기고, 적기가(赤旗歌)를 부르는 웅장한 장면에서 관객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그들은 자폭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부상당한 국군들을 후송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배경을 뒤로하고 자막이 올라가며 관객들은 내 뱉는다 “이 영화 너무 감동적이지 않니?” 나는 궁금하다. 도대체 무엇이 감동인가? 영화 관객인 나는 멍하다. 7,80년대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혼란스럽다.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적인가?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대 권력을 주무르던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기엔 너무도 허전하기만하다. 386세대의 막내라고 불리는 나는 너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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