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5월4일,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정부 측과 여당인 한나라당은 그 협정이 한국경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한다. 정부쪽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국내총생산이 최대 5.6% 증가하고, 일자리가 25만개 이상 만들어지며, 수출은 연평균 25억 2천만 달러 증가한다는 장밋빛 예측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세계적 추세인 FTA 체결에 뒤처지게 되면 수출의존적인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2대 교역상대인 유럽연합과의 FTA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 간에 체결된 비준안을 꼼꼼히 살펴 본 시민운동 진영과 진보정당들은 그러한 편익에 대한 기대가 매우 잘못된 계산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모델을 사용하여 계산할 경우 FTA가 국내총생산에 미치는 효과는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듯이 실제로 EU의 분석기관은 한국시장에 대한 EU의 수출증대효과가 한국의 대 EU 수출증대효과보다 3배이상 크며, 이런 한국시장의 접근성 향상은 한국 국내산업을 대체하는 효과에 의한 부분이 역외 수출국의 수출을 EU가 대체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를 훨씬 상회한다고 주장한다. EU 쪽에서는 역내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최대의 시장개방을 얻어낸 매우 성공적인 FTA로 한-EU FTA 체결을 자축하고 있었다.

이런 EU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관세인하로 인한 한국 수출 상품의 이점은 EU의 역내산업에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EU에 동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경쟁국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섬유제품에서 관세가 철폐되면서 한국산 섬유제품의 대 EU 수출은 증가하겠지만, 이는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 브라질의 섬유 수출에 타격을 줄 뿐, EU 역내의 섬유산업에는 별 타격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EU가 이들 나라들과 한국과 체결한 것과 유사한 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면, 한국이 잠정적으로 획득한 이점은 급속히 소멸할 것이다.

총량적으로도 국내총생산에 대한 긍정적 효과가 기대하기 어렵지만, 보다 큰 문제는 협상내용의 비대칭성이다. 이를 테면 정부조달 부문에서 한국은 아무 제한 없이 EU 기업의 참여를 내국인대우로 보장한 반면, EU는 민감한 부문에 대해 정부조달에 지역기업이나 역내기업의 우선권을 보호하는 장치를 존치시키고 있다.

EU는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통해 역내의 중소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 보유하지만 한국은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는 보호조항을 협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는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영국계 기업 테스코의 이익을 위해 영국정부가 강력하게 이 조항의 삽입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협정문에서는 노골적으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역 산업체 우대조치를 못하도록 규정한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공공건설 사업수주에서 지역 건설업체에 하도급의 50%이상을 배정할 것을 규정한 성남시 조례나 지방 중소기업의 발전을 위한 지방정부의 보조금 제도는 전부 협정 위반이 되며 협정이 발효되면 무효화될 것이다.

그리고 EU는 협정 부속서 9장 3조에 의해 급식조례를 인정받는 반면, 한국은 아무런 예외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지자체에서 시행하고자 하는 지역농산물을 의무급식에 사용하고자하는 조례는 무효화될 것으로 보인다.

축산업을 비롯한 농업의 타격은 한국정부도 인정하고 있지만, 이해당사자인 지방정부 쪽에 의견을 물어보는 절차도 없이 체결한 이 협정이 지역에 가져올 후과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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