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씨 “한국인의 절대다수는 내 생각의 주인 아니다···제도교육 탓”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사진/육성준 기자

혹시 이런 생각을 해봤는가.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라고. 나는 당연히 내 생각의 주인이고, 내 몸의 주인이다. 그런데 이 게 무슨 소리인고. 내가 내 생각의 주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64)의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난 4월 27일 국립청주박물관에서는 ‘2011 청주인문학교실’의 세 번째 강의가 있었다.

그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되돌아보면 내 생각은 내가 주체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니고, 지배계급이 나에게 갖도록 요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교육과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분석이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한 까닭도 여기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특히 자본을 갖고 있고 국가기관까지 관리하는 ‘삼성’같은 대기업은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생각을 지배하기까지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생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기분 나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의 교육은 주입식이어서 내 생각을 키울 수 없다. 홍세화 씨는 “한국은 내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토론문화가 없고 합리성을 추구하기 보다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사회이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차근차근 따지는 게 아니고 ‘당신 몇 살이야’ 하며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이긴다”고 말했다.

실제 내 생각을 원하지 않는 한국사회는 그에 걸맞는 시험을 실시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 온 우리는 생각하기보다 외우는 공부를 해왔다. 우리 자녀들도 현재 이런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이를 “한국은 객관적 사실에 대해 숙지하고 있는가만 체크한다. 글쓰기를 통해서는 정확하게 줄세우기가 안되니까 객관적 사실만 가지고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인문사회과학마저 죽은 학문이 돼버렸다. 주체적으로 의식 형성하는 길을 막고 있다는 얘기”라고 비판한 뒤 “우리가 암기할 때 프랑스는 토론과 글쓰기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바로,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독서·토론·견문·성찰 등을 통해 형성됐다면 내가 내 생각의 주체이지만, 제도교육과 미디어에서 얻은 것이라면 내가 객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 과연 나는 어떤가. 독서·토론·견문·성찰 등을 통해 내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자신이 없다. 아마도 제도교육과 미디어로부터 얻어진 게 많을 것이다. 사회나 역사도 암기과목으로 치부되며 달달 외워 점수만 받아온 우리는 성인이 돼서도 제도교육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한국인의 절대다수는 내 생각의 주인이 아니다. 이는 제도교육, 특히 인문사회과학 교육의 문제점에서 비롯된다”고 잘라 말했다. 내가 내 생각의 주인이 아닌 이유를 알게 됐다.

아울러 그는 “지금 한국사회는 소유가 존재를 결정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소유에 집착하고 있다. 몇 년 전 귀국했을 때 ‘부자되세요’가 화두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아파트 광고 문구인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를 보고 또 놀랐다. 가난한 사람을 생각한다면 이런 광고 용납해서는 안된다”며 한국인의 인간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분개했다.

홍세화 씨는 톨스토이의 3대 문답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장소는 바로 여기라는 것. 그러나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뺏기고 산다고 했다. ‘지금 바로 여기’가 가장 중요하지만, 초중고생들은 대학진학을 위해, 대학생들은 취업 때문에 ‘오늘’을 뺏기고 대다수는 건강·교육·주거·노후·일자리라는 5대 불안 때문에 걱정이 많아 또 뺏기고 산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오늘의 주인공 홍세화 씨는 내가 내 생각의 주인이 아닐 것이라는 슬픈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씨는 누구?
이국에서‘꼬레아’ 외치다 귀국, 비판적 글쓰기 작가로 유명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를 졸업했다. 66년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그만두고 69년 외교학과에 재입학했다. 72년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되는 등 순탄치 않은 대학생활 끝에 77년 졸업했다. 77~79년에는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해 활동했다. 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에 갔다가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파리에 정착, 20여년간 이방인 생활을 하고 있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에 소개된 홍세화 씨의 경력사항이다. 그런데 지금은 큰 변화가 생겼다. 오랜 이방인 생활을 끝내고 2002년 아주 귀국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 귀국했다. 그동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아웃사이더를 위하여’ ‘생각의 좌표’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등 여러 권의 책을 발간했다. 공저로는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거꾸로 생각해봐’ 등이 있고 역서로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 등이 있다.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타고난 감수성과 문제의식으로 우리사회를 향해 비판적 글쓰기를 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직업도 다양하다. 작가·교육자·사회운동가·언론인·평론가 등. 사람들이 홍세화 씨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 덕분이다. 이 책은 출간 2개월만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95년 한 해에만 30만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독자들은 한 지식인이 오랜 세월 귀국하지 못하고 이국의 하늘아래서 ‘꼬레아’를 그리워한 이야기에 분개하거나 혹은 가슴아파 했다. 그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수용할 줄 아는 ‘톨레랑스’에 대해 거듭 강조한다. 요즘도 여전히 글을 쓰면서 초청강연 연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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