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찬·이혜정 씨 예비부부의 ‘친환경 결혼식’

하재찬 충북사회적기업지원센터 총괄팀장
“나이 마흔 넘어 결혼,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이혜정 생명살림 올리 대표
“서른에 독립한 나, 동갑내기 유목민 남자를 만나다~”


이 예비부부 참으로 명징하다. 마흔 살이 넘어서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도 “혼자서 용기가 안 났던 일들을 함께 하고 싶어서”다. 그들이 걷고자 하는 길은 바로 지역사회 연대를 통해 나눔과 순환이라는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것. 거창하지만 또 소박하다. 지역사회에서 여성운동과 장애인 복지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그들이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과감히 잠수한다.

70년생 동갑내기는 이상하게도 그동안 마주칠 일이 없었다. 장애인 복지운동을 한 하재찬 씨(충북사회적기업지원센터 총괄팀장)가 최근 2년 전부터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갖으면서 접점이 생겼다.

이혜정 씨는 청주YWCA에서 일하며 사회적 복지에 천착하다가 일상의 복지에 관심이 갔다. 그러던 중 2008년 사회적 기업인 생명살림 올리를 냈다. 올리는 로컬푸드를 실천하는 가공매장으로 현재 봉명동 YWCA인근에서 커피, 콩버거, 청국장 쿠키 등을 판매하고 있다. 5월부터는 청주시민센터가 운영하는 아이뜰(산남동)에 입점해 판매영역을 넓힌다.

이들은 하루에 4차례 회의를 통해 만난 적도 있었다. 사회적 기업, 로컬푸드 등 시간이 갈수록 연결고리가 촘촘해졌다. 사회적 기업을 이끄는 여자,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연구하는 남자는 연달아 잡힌 회의를 통해 사랑이 싹텄다. “아마 지난 5월 쯤 일꺼에요. 사귀기로 한건….” 첫눈이 오는 날도 로컬푸드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몇 시간 질긴 토론을 했다. 그걸 본 YWCA사람들이 참으로 ‘재미없는 커플’이라고 했다. 이견은 지금도 많다. 하지만 토론회장에서 서로 주장을 ‘토스’하면서 마음이 통했다.

토론을 좋아하는 이들이지만 결혼식에 대해서는 영 잘 풀리지 않는다. 다만 일반적인 결혼 시스템을 따르지는 않겠다는 원칙을 정했다. 6월 18일 오전 11시 결혼식 날짜는 잡았다. 사실 결혼을 앞두고 인터뷰를 몇 차례 고사했다. “한 30년 쯤 잘 살고 난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끈질긴 설득과 회유, 친분을 이용한 호소(?) 끝에 결정을 내렸다. 막상 결정하면 최선을 다해서 한다는 이들은 정말 한 마디를 물으면 열 마디로 답해줬다.

결혼식은 로컬푸드 운동을 하면서 관계를 맺어온 청원군 귀래리(고두미)마을에서 할 계획이다. 음식도 주민들이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하고, 돼지도 한마리 잡기로 했다. 예식 음식까지 ‘로컬푸드’로 하겠다는 건 이들의 운명인지 치밀한 계획인지 알 수가 없다.

로컬푸드란 지역의 먹을거리를 지역민이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지역경제의 순환과 더 나아가 도시와 농촌의 관계회복을 주장하는 철학적인 명제를 담고 있다. 그러니까 농촌, 로컬푸드, 사회적 기업 등의 단어를 따라가 보면 이들의 미래도 어림잡아 읽혀진다.

하 씨는 “둘이 더불어 숲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 씨는 “대학 때 농활을 갈 때마다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로컬푸드 운동을 하면서 농촌과 관계를 맺으며 생각이 더욱 구체화 됐지만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노처녀, 아니 비혼여성이 많은 YWCA에서 이 씨의 결혼은 화제가 됐다. 서른 살에 집에서 독립한 이 씨. 그는 “12년 간 자유롭게 살다가 저보다 더 자유롭게 산 남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거죠”라고 말했다. 하 씨는 “나이가 마흔이 넘으니까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요”라고 웃어보였다.

그래도 결혼식을 앞두고 여러 가지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다. 그래도 이들의 특기이자 장점대로 ‘논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로 했다. 둘 다 행사기획을 해본 경험이 있어 결혼식도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하지만 결혼 제도는 특히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예비부부는 집을 구하면서 당황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지 몰랐어요. 집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돈도 생각만큼 없었죠. 둘 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해온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남자는 여자 집에 짐을 싸들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부부는 28평을 넘는 집은 구하지 않기로 정했다. 사실 하 씨는 24평을 고집했지만 마당이 넓은 집일 경우의 수를 생각해 28평으로 맞췄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매몰되기보다 우리 부부가 추구하는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할 겁니다.”

자본의 가치보다는 공동체의 가치가 훨씬 더 소중하다는 이들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들 부부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쩌지….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