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술관·다문화공간 산하’ 만들고 시민들에게 개방
양성산 보이는 2층 전시실에는 감동적인 산 사진 다수

청원군 문의면은 청정지역이다.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개발이 제한돼 공기 좋고 물도 맑다. 인근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대청댐과 청남대, 양성산도 있다. 그래서 청주를 비롯한 도시민들은 이 곳에 가장 집을 짓고 싶어한다. 요즘 문의는 정말 아름답다. 꽃은 지천으로 피고, 대청댐 물은 맑아 나들이객들을 유혹한다. 사진작가 권영오(67) 씨는 양성산 인근에 산다. 지난 2007년 집을 지었다. 문의초등학교 앞에서 좌회전해서 약간 들어가면 ‘사진미술관·다문화공간 산하’라는 예쁜 간판이 있다. 1층은 권 씨 부부가 사는 집이고, 2층에는 차마시는 공간 ‘맑향’과 사진전시실이 있다. ‘맑향’은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를 줄인 말. 법정스님을 존경하고 정신적 지주로 삼는 권 씨는 다실의 이름도 이렇게 지었다.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 권영오 씨의 집

권 씨가 문의로 이사오기 전 청주시 사직동 주택에 작은 전시실을 꾸몄을 때, 그리고 문의로 이사온 직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3년여 만에 다시 만났다. 세월은 그를 나이들게 했으나 그가 만들어낸 감동적인 산 사진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푸른 빛이 도는 새벽의 산, 거무스름한 색깔과 누런 빛이 공존하는 해진 뒤의 산, 그림자에 가려 오로지 면과 선만 나타나는 산 등. 거기 있는 산들은 꾸미지 않고 솔직했다. 능선도 살아 있었다.

깔끔하고 손재주가 좋은 주인은 1층에서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가면서 사진을 볼 수 있게 작은 액자들을 걸어놓았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2층에 다다르면 백두대간에서 찍은 웅장한 사진들이 기다린다. 사진들을 구경한 뒤에는 서재겸 다실에서 차를 마신다. 그동안 수집한 찻잔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 방의 넓은 유리창으로는 뒷산인 양성산이 그대로 보인다. 산벚꽃이 한창 피어 점점이 물든 모습이 아름다웠다. “내가 집을 지은 건 이런 전시실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평생 취미생활한 결과물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곳은 열린 공간이다. 누구나 와서 사진을 보고 차를 마실 수 있다.” 이런 그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찾아와서 사진도 감상하고 대화도 한다. 이제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권 씨는 산에 오를 때마다 돌을 주워 산 이름, 날짜, 높이 등을 썼다. 1층 현관에는 이런 돌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산책하고 좋은 물 마셔 만족
그가 문의에 정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80년대 말부터 양성산을 오르내렸다. 새벽에 양성산 아래 호수와 물안개, 운해, 조망을 찍으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산은 높지 않지만, 산 정상은 막힌데가 없어 모든 것이 내려다보인다. 일망무제의 조망을 내려다보며 여기서 새 기운을 얻고 돌아가곤 했다. 맹자의 ‘대장부의 기개’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라고 할까.”

이 집은 대지가 429제곱미터, 건평은 198제곱미터다. 집은 소박하나 정원과 텃밭이 넓다.정원에는 홍매화·흑매화·백매화·청매화 등의 매화나무와 녹차나무를 심었다. “옛날 조상들은 사군자의 하나로 매화를 사랑했다. 형형색색 피는 매화의 꽃들도 예쁘지만, 매화의 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올 봄까지 4년 동안 400년 이상된 고매화를 찾아다녔다. 주로 경상도·전라도 지방에 많다. 이 사진들을 활용해 족자를 만들고 있다. 사진을 액자가 아닌 다른 곳에 넣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매화사진전을 계획중인 권 씨는 한동안 매화예찬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은 산책할 만한 데가 많다는 것과 좋은 물이 있다는 것. 권 씨는 집에서 1시간 거리의 산에서 물줄기를 발견한 뒤부터는 날마다 물을 떠온다. 연중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그 물은 땅속에서 퐁퐁 솟아나는 고마운 물이다. 아울러 이 곳 생활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사진작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씨는 마당 한쪽에 창고를 한 채 지었다. 여기서 액자 작업을 한다. 사진을 찍은 뒤 몇 년전 들여놓은 출력기를 통해 출력을 하고 창고에서 작업을 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사진 촬영부터 액자까지 혼자 해결하는 것이다. 사진과 茶의 매력에 빠져사는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공간, 바로 이 집의 모습이다.

사진작가 권영오

파노라마 사진찍는 사진작가
산이란 산 거의 섭렵한 '산 사나이'

권영오 씨의 주 종목은 파노라마 사진이다. 렌즈가 움직이는 파노라마 사진용 카메라는 각도가 150도까지 넓어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세계가 보통 카메라보다 훨씬 넓다. 그래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100리 길을 한 눈에 보여줄 수도 있다. 이 카메라가 만들어낸 백두대간의 광활한 자연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권 씨는 지난 66년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우연히 카메라를 구입했다. 카메라가 재산목록에도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제일은행 본점에 사원으로 입행한 그는 '상여금'이라는 제도가 생기자 처음으로 '공 돈'을 받았다. 이 돈을 주머니에 넣고 제일은행 옆인 신세계백화점에 구경을 갔다 미놀타라는 카메라에 마음을 뺏겼다고. 그는 당장 카메라를 산 뒤 책을 보고, 동네 사진관 주인한테 물어가며 공부를 했다. 당시는 흑백사진만 찍을 수 있었다.

주말과 휴가 때 카메라를 둘러메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그는 마음껏 사진을 찍기 위해 94년 명퇴한다. 그 때는 충북은행으로 직장을 옮긴 후였다. 그의 나이 51세 때였으니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이었다. 그는 “내가 종합기획부장으로 명퇴제도를 만들었는데 나 자신이 명퇴자 1호가 됐다”며 웃었다. 이 때부터 산을 찾아 다녔다. 권 씨는 "산에서 먹고 잘 수 있는 물건들을 항상 지프차에 실어놓았다. 해질무렵과 해뜰무렵 산의 정상에 서있기 위해 전날 올라가 기다렸다. 감동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오르고 또 올랐다“고 말했다.

권영오 씨의 주종목은 파노라마 사진이다. 2층 전시실에는 푸른 빛이 도는 새벽의 산, 거무스름한 색깔과 누런 빛이 공존하는 해진 뒤의 산, 그림자에 가려 오로지 면과 선만 나타나는 산 사진이 있다. 지리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들.

그의 자택 2층 전시실에는 푸르스름한 새벽 산의 능선이 기막힌 선으로 나타난 지리산의 모습을 비롯한 많은 사진들이 있다. 그리고 1층 현관 앞에는 그가 다닌 산들의 이름을 적은 작은 돌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그 숫자 만큼 산에 다녀왔다는 뜻이다. 이 돌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그는 추억에 젖는다. 당시 그를 사로잡았던 경치와 날씨, 동행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저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산 것이 얼마나 좋은가. 나를 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주는 것은 취미생활”이라는 게 권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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