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술관·다문화공간 산하’ 만들고 시민들에게 개방
양성산 보이는 2층 전시실에는 감동적인 산 사진 다수
권 씨가 문의로 이사오기 전 청주시 사직동 주택에 작은 전시실을 꾸몄을 때, 그리고 문의로 이사온 직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3년여 만에 다시 만났다. 세월은 그를 나이들게 했으나 그가 만들어낸 감동적인 산 사진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푸른 빛이 도는 새벽의 산, 거무스름한 색깔과 누런 빛이 공존하는 해진 뒤의 산, 그림자에 가려 오로지 면과 선만 나타나는 산 등. 거기 있는 산들은 꾸미지 않고 솔직했다. 능선도 살아 있었다.
깔끔하고 손재주가 좋은 주인은 1층에서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가면서 사진을 볼 수 있게 작은 액자들을 걸어놓았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2층에 다다르면 백두대간에서 찍은 웅장한 사진들이 기다린다. 사진들을 구경한 뒤에는 서재겸 다실에서 차를 마신다. 그동안 수집한 찻잔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 방의 넓은 유리창으로는 뒷산인 양성산이 그대로 보인다. 산벚꽃이 한창 피어 점점이 물든 모습이 아름다웠다. “내가 집을 지은 건 이런 전시실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평생 취미생활한 결과물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곳은 열린 공간이다. 누구나 와서 사진을 보고 차를 마실 수 있다.” 이런 그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찾아와서 사진도 감상하고 대화도 한다. 이제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산책하고 좋은 물 마셔 만족
그가 문의에 정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80년대 말부터 양성산을 오르내렸다. 새벽에 양성산 아래 호수와 물안개, 운해, 조망을 찍으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산은 높지 않지만, 산 정상은 막힌데가 없어 모든 것이 내려다보인다. 일망무제의 조망을 내려다보며 여기서 새 기운을 얻고 돌아가곤 했다. 맹자의 ‘대장부의 기개’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라고 할까.”
이 집은 대지가 429제곱미터, 건평은 198제곱미터다. 집은 소박하나 정원과 텃밭이 넓다.정원에는 홍매화·흑매화·백매화·청매화 등의 매화나무와 녹차나무를 심었다. “옛날 조상들은 사군자의 하나로 매화를 사랑했다. 형형색색 피는 매화의 꽃들도 예쁘지만, 매화의 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올 봄까지 4년 동안 400년 이상된 고매화를 찾아다녔다. 주로 경상도·전라도 지방에 많다. 이 사진들을 활용해 족자를 만들고 있다. 사진을 액자가 아닌 다른 곳에 넣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매화사진전을 계획중인 권 씨는 한동안 매화예찬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은 산책할 만한 데가 많다는 것과 좋은 물이 있다는 것. 권 씨는 집에서 1시간 거리의 산에서 물줄기를 발견한 뒤부터는 날마다 물을 떠온다. 연중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그 물은 땅속에서 퐁퐁 솟아나는 고마운 물이다. 아울러 이 곳 생활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사진작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씨는 마당 한쪽에 창고를 한 채 지었다. 여기서 액자 작업을 한다. 사진을 찍은 뒤 몇 년전 들여놓은 출력기를 통해 출력을 하고 창고에서 작업을 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사진 촬영부터 액자까지 혼자 해결하는 것이다. 사진과 茶의 매력에 빠져사는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공간, 바로 이 집의 모습이다.
파노라마 사진찍는 사진작가
산이란 산 거의 섭렵한 '산 사나이'
권영오 씨의 주 종목은 파노라마 사진이다. 렌즈가 움직이는 파노라마 사진용 카메라는 각도가 150도까지 넓어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세계가 보통 카메라보다 훨씬 넓다. 그래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100리 길을 한 눈에 보여줄 수도 있다. 이 카메라가 만들어낸 백두대간의 광활한 자연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권 씨는 지난 66년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우연히 카메라를 구입했다. 카메라가 재산목록에도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제일은행 본점에 사원으로 입행한 그는 '상여금'이라는 제도가 생기자 처음으로 '공 돈'을 받았다. 이 돈을 주머니에 넣고 제일은행 옆인 신세계백화점에 구경을 갔다 미놀타라는 카메라에 마음을 뺏겼다고. 그는 당장 카메라를 산 뒤 책을 보고, 동네 사진관 주인한테 물어가며 공부를 했다. 당시는 흑백사진만 찍을 수 있었다.
주말과 휴가 때 카메라를 둘러메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그는 마음껏 사진을 찍기 위해 94년 명퇴한다. 그 때는 충북은행으로 직장을 옮긴 후였다. 그의 나이 51세 때였으니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이었다. 그는 “내가 종합기획부장으로 명퇴제도를 만들었는데 나 자신이 명퇴자 1호가 됐다”며 웃었다. 이 때부터 산을 찾아 다녔다. 권 씨는 "산에서 먹고 잘 수 있는 물건들을 항상 지프차에 실어놓았다. 해질무렵과 해뜰무렵 산의 정상에 서있기 위해 전날 올라가 기다렸다. 감동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오르고 또 올랐다“고 말했다.
그의 자택 2층 전시실에는 푸르스름한 새벽 산의 능선이 기막힌 선으로 나타난 지리산의 모습을 비롯한 많은 사진들이 있다. 그리고 1층 현관 앞에는 그가 다닌 산들의 이름을 적은 작은 돌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그 숫자 만큼 산에 다녀왔다는 뜻이다. 이 돌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그는 추억에 젖는다. 당시 그를 사로잡았던 경치와 날씨, 동행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저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산 것이 얼마나 좋은가. 나를 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주는 것은 취미생활”이라는 게 권 씨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