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주제로 한 조형물은 대개 돌이나 금속으로 제작된다. 단단한 재질의 형상을 통해 불멸의 혼을 전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영국의 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했다.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느 과거에게 발언권을 주느냐, 어떤 시각으로 물어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는 얘기다.

지역에서 만든 사람의 조형물 가운데, 발언권을 완전히 상실한 채 싸늘한 시선에 휩싸인 2점이 있다. 1점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몸담았다가 변절해 비행기 헌납운동까지 벌였던 친일파 정춘수의 동상이고, 또 1점은 고향 경남 김해의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지석이다.

정춘수 동상은 1980년 우암산 기슭에 삼일공원을 만들면서 또 다른 지역출신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5인의 동상과 함께 세워졌으나 1996년 시민단체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부서진 동상은 시청 창고에 방치되고 좌대만 흉물스럽게 남아 논란이 되던 중 2010년 좌대까지 치우고 그 자리에 횃불조형물을 세웠다. 역사는 잠시 독립운동가였던 정춘수의 과거에 대한 발언권을 박탈하고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다.

우리가 그의 동상을 세웠고 동상이 쓰러진 뒤에도 14년 동안이나 논란을 벌였던 것은 해방 후 35년 동안 친일을 전혀 단죄하지 않았고, 아직도 청산의 과정 속에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의 동상이 다시 일어서는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 확신한다. 

현재의 역사는 왜 이리 잔인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지석은 2009년 5월,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했던 시민들의 뜻에 따라 탄생했다. 상당공원 분향소를 향해 밀려들었던 애도의 물결이 빠져나간 뒤 그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쓰고 남은 조의금으로 표지석을 만들었다. 추모문구에는 ‘이 자리에’라는 표현이 있어 상당공원에 세우기 위한 목적이 분명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표지석은 정춘수 동상처럼 의도했던 자리에 앉혀지지도 못한 채 2년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보수단체가 위협했고 청주시도 난색을 표명하는 상황에서 표지석은 잠시 수동성당에 머물렀으나 일부 신도들이 거부했고 어느 사찰로 옮기기로 날까지 잡았으나 이 또한 무산됐다. 이후 이 표지석은 청원군 오창의 한 농가 창고에서 21개월 동안이나 먼지에 쌓여있었다.

표지석이 다시 외출한 것은 지난 12일, 처음 자리를 잡았던 수동성당으로 돌아왔으나 일부 신도들의 냉대는 여전했다. 실제로 성당 측에서는 지난 16,17일 사이 표지석에 회색 덮개를 씌웠다. 표지석은 당초 의도대로 상당공원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청주시의 입장을 고려할 것도 없이 당장 표지석의 안위가 염려스러운 상황이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이 주민 품으로 돌려준 청남대로 보내자는 의견도 있지만 충북도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고 매국을 하지도 않았다. 또 죽은 뒤에 더 그리워하는 사람도 늘어난 것 같다. 망자의 발언권마저 박탈한 현재의 역사는 왜 이리도 잔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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