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도 노동자?
청년유니온 설립계획 또 다시 ‘반려’
항의성 퍼포먼스 ‘놀이처럼 즐겁게’


세대별 노동조합을 추구하는 청년유니온의 노조설립계획이 지난 14일 고용노동부가 노조신청을 또 다시 반려함에 따라 실패했다. 이번이 네 번째였다. 이에 청년유니온 충북준비위원회는 청주시청을 방문, 항의성으로 지역 노조설립신고를 했다.

노조의 최소 설립요건인 2명만 채운 채였다. 구직자와 직장인이 한 팀을 이뤄 전국 9곳에서 동시에 실시했고 청주에서는 두 팀이 함께했다. 이번 신청은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셈이다. 이번 설립신고는 성공할 수 있을까.

▲ 배형찬 씨
배형찬씨는 지난 해 충북대를 졸업했다. 입학한지 8년만의 졸업이었다. 군 제대 이후 반복된 휴학과 복학 끝에 그의 학창시절은 마무리 됐다. 형편이 녹록치 않은 집에 신세질 수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을 댔다. 배씨는 “집안에 대학생이 둘이었는데 형인 내가 집안에 부담을 덜어 드려야 했다”고 전했다. 휴학하는 한 학기동안 등록금을 벌고 학기 중에도 생활비를 벌며 공부했다.

배씨의 아르바이트 경력은 10년이다. 19살 때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 경력은 주유소와 식당, 배달, 물류센터, 공장 등 다양하다. 배씨가 어렵사리 얻은 졸업장 끝에 남은 것은 학자금대출로 인한 빚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원형탈모도 생겼다. 난생 처음 머리에 주사를 맞았다. 다행히 장애인과 관련한 사회적 기업에 취직해 한시름 덜었지만 매달 40~50만원의 생활비와 학자금 이자를 상환하기에는 빠듯하다.

곽동우씨도 지난 해 대학을 졸업했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를 다닌 곽씨는 비교적 싼 등록금을 내지 못해 마음 졸여 본적은 없지만 매달 생활비가 문제였다. 학교 주변에는 아르바이트를 할 곳이 턱 없이 부족했고 곽씨가 선택한 방법은 과외였다. 청주 시내 이곳저곳으로 과외‘알바’를 다녔다. 이렇게 졸업장을 받아 곽씨는 임용고사를 보고 있지만 60대 1이 넘는 경쟁률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주의를 둘러봐도 한 번에 붙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재수와 삼수는 기본이다’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기회는 한번 뿐이었다.

그는 아직 병역의무를 마치지 못했다. 6월 입대, “앞날이 막막하다”고 말하는 곽씨는 현재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배씨의 자취방에서 신세를 지며 같이 청년유니온을 조직하고 있다.

‘잉여’라는 말을 아시나요

배씨와 곽씨는 지난 해 10월부터 청년유니온 충북지부를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 더불어 충북대 중문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의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많은 수의 조직원은 아님에도 ‘놀이’처럼 즐기며 활동하지만 현실은 즐겁지 못하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배씨는 홍보․상담활동을 하며 아는 지인들을 자주 접한다고 했다. 배씨도 늦은 나이에 졸업을 했지만 그의 또래들의 상당수가 아직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배씨는 “아직 나만 졸업을 늦게 한 것이 아니다”라며 “많은 수가 취업과 등록금 문제로 졸업을 미룬다. 또한 졸업하더라도 도서관에 남아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하며 “청년문제의 핵심은 실업문제인데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는 통로가 없다”고 성토했다.

곽씨도 입을 열었다. 곽씨는 “주변을 둘러보면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불완전한 고용형태로 취업한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이 기성세대는 모르는 우리세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청년유니온이 이른바 ‘88만원세대’라고 하는 우리세대를 묶는 구심점이 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배씨는 “이곳 충북대 중문에서만 아르바이트 노조가 조직된다면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를 상대로 파업을 벌이는 등 청년유니온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역설했다. 또한 배씨는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잉여'라는 말이 있다”며 “쓸모없다는 뜻인데 얼마나 가슴 아픈 말이냐”고 말했다.

또한 배씨는 “카이스트 연쇄 자살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평가를 통해 누군가는 반드시 탈락해야 하는 이른바 ’징벌적 등록금‘을 납부해야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사회와 너무나 닮아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편 배씨는 이번 청주시청에 신청한 노동조합 설립신고에 대해 “또 거부당할 것 같지만 끝까지 해 보겠다”고 전했다.

세대별 노조설립 과연 가능한가
행정법원 “구직자도 노동자”, 법령 해석의 이견 남아

청년유니온은 산업별노조가 아닌 세대별 노조를 지향하며 지난 해 3월 출범했으며 충북준비위원회 모임은 같은 해 11월 시작했다. 15세부터 39세의 청년을 그 대상으로 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자를 포함한 구직자와 실직자들을 조합원으로 삼는 것이 청년유니온의 특징이다. 또한 벨기에에서 시행되고 있는 청년고용할당제와 청년 실업자에 대한 실업 부조 등을 주장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이 설집 직후부터 네 차례에 걸쳐 고용노동부에 노조설립 신고를 했지만 번번이 보완조치가 내려져 왔다. 보완 사유는 임원선거 및 규약제정 절차, 노조 설립신고서 및 구비서류, 회의 투표 및 의결 방식, 노동조합 조직 대상 등이었다. 그 동안의 가장 큰 쟁점사항은 노동조합 조직 대상, 즉 ‘구직자를 노동자로 볼 수 있는가’의 여부였다.

하지만 청년유니온은 지난 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노조법상 기업별 노조와 달리 초기업적 노조의 경우 일정한 사용자에 대한 종속관계를 조합원의 자격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며 “근로자에는 일시적 실업자뿐 아니라 구직 중인 노동자도 포함된다”고 판결한 판례를 바탕으로 “구직자도 노동자이므로 노동조합 가입 여건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및 노동조합관계법 상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는 상태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1년 도쿄를 중심으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의 청년노동자들이 ‘일본수도권청년유니온’이라는 일반노동조합을 결성한 바 있다. 이들은 노동조합은 임금체불의 문제에 대응하며 개별 사업장에 대한 단체교섭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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