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겸 생명운동가인 이광필씨가 최근 잇따른 학생들의 자살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카이스트 사태와 관련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최근 4명의 학생과 교수의 잇단 자살로 충격에 휩싸였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산고를 겪고 있다. 지난 2006년 취임한 서남표 총장의 독선과 무한 경쟁식 교육 개혁이 원인이라며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장의 개혁실패'와 학생 참여를 따져 묻는 비상총회가 지난 13일 오후 열렸다. 이날 학생 비상총회에서 재적 인원 852명 중 416명(48.8%)이 서 총장의 '경쟁 위주의 교육제도 개혁 실패 인정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과반(50%)을 넘기지 못해 부결됐다. 반대는 317명(37.2%), 기권 119명(14%)이었다. 또 총장 퇴진운동이란 배수진을 친 교수협의회의 '혁신비상위원회 구성 요구안'을 서 총장이 받아들이면서 학내 분위기는 일단 진정되는 국면이다. 하지만 총학생회에는 여전히 서 총장의 핵심개혁정책이라 할 수 있는 '전면 영어강의'와 '징벌적 등록금제'에 대한 개선안을 요구하고 있다. 영어강의는 전공과목에 한해서 하고 징벌적 등록금은 8학기 이내에 학부과정을 마치지 못하는 연차초과자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 인권위원회는 '징벌적 등록금제'에 대한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 법률검토 작업에 들어가 서 총장의 거취 표명에 따라 카이스트 학내 사태는 악화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이에 충북 도내에서 카이스트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부모와 학생에게 최근 학내 사태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카이스트 부모>
"목숨보다 중요한 것 없어…하고 싶은 공부해야"
졸업반 학생을 둔 50대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학과 4학년생을 둔 아버지 Y씨(56). 그는 아내와 함께 청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노동운동권 출신으로 자신은 서강대, 아내는 이화여대를 나왔음에도 마뜩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없어 식당을 운영하며 대학생 아들 형제 뒷바라지를 어렵게 하고 있다. 빠듯한 가정형편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4년 전 큰아들이 전액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카이스트를 진학하면서 학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루 일과란 것이 마음의 여유 없이 새벽 3시까지 기숙사와 강의실, 연구실(lab)을 오가며 살인적인 공부 양을 소화해 내느라 전화 목소리가 힘겹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Y씨는 "카이스트 학생의 잇단 자살은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며 "청춘도 없고 숨 쉴 공간도 없는 듯 한 아들을 지켜보며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언제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권유 한다"고 말했다.

또 "방학 때마다 인문학 서적을 한 권씩 건넨다. 얼마 전에는 폴 크루그먼이 지은 '미래를 말하다'를 추천했다. 저는 아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네가 전자과라 인문학 서적 등을 읽지 않으면 기술자(기능인)에 그칠 수 있다. 진정한 전자공학도가 되고 싶으면 인문학 서적을 1권이라도 제대로 읽으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Y씨는 "대학 학부 과정이라는 것이 사상과 사유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획일적인 틀에 가둬 놓고 적응하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어 죽음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서 총장은 교육자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아마도 카이스트가 법인화 되면서 서 총장은 경영성과가 필요했던 것 같다. 법인화 수순을 밟고 있는 서울대도 아마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마라는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또한 "서 총장이 MIT에서 공부할 때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듯 공부했다고 했는데 당시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경제적 효율, 성과주의가 강조되던 시기로 당연히 교육적 가치보다 교육적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제 한 세상 살면서 아들이 좋아 하는 것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슬기롭기 때문에 이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학생>
"1등만 하던 아이들 감당하기 힘들어…"
전자과 4학년 Y씨 '동병상련 상담동아리 인기'

과학기술원(KAIST) 전자학과 4학년 Y씨(22). 그는 "학교 문제에 의식을 가질 정도로 솔직히 마음의 여유가 그동안 없었다"며 "다만 05학번 선배를 빼 놓고 이번에 유명을 달리한 학생 4명 중 3명이 모두 후배이고 전자과 후배도 포함되어 있어 학내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하루 일과가 기숙사-강의실-실험실(lab)-도서관-기숙사로 이어질 정도로 살인적인 공부 양에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좋아서 선택한 것이고 공부 양에 대한 부담이나 불만은 없다. 더욱이 전액 국비 장학생이란 사회적 비판의 시각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서 총장의 독선주의가 오늘에 불행한 사태를 낳은 것 같다"며 "과학고, 영재고 출신들은 중학교에서 1등만 하던 친구들이다. 누군가에게 뒤져 본 일이 없는 아이들에게 현실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학점 4.5점 만점에 3.0점을 못 넘으면 360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3.3점을 못 넘으면 기성회비로 160만원을 내야 한다. 더 황당한 것은 한번 내기 시작한 기성회비는 3.3점이 넘어도 계속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집에는 얘기도 못하고 방학 때 하루 4군데 아르바이트를 뛰어서 등록금을 해결하고 심지어 학기 중에도 등록금 걱정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학우들의 잇단 자살로 올해 들어 처음으로 상담 동아리가 생겼다"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친구들끼리 서로 위로 하며 상담하고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자는 모임이다. 기존에도 상담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친구들의 이용률은 떨어진다. 아마도 정신이상자로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것을 우려해서 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전 과목 영어수업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내 생각에는 국제교류가 왕성해 지는 요즘 적어도 전공과목에 한 해서는 영어 강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나, 교양과목에서는 불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서 총장 개인의 부도덕성은 지적 받아 마땅하지만 학내 구성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외부에서 지나치게 참견하며 카이스트의 명예를 깎아 내리는 데는 학내 구성원들이 못 마땅하게 생각 한다"며 "서 총장의 개혁 드라이브가 문제가 있다면 외부에서 지적하지 않아도 학내에서 학내 구성원 간에 충분히 논의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구성된 비상혁신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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