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혁명의 시대에 박물관 속에 갇힌 직지

스토리텔링을 만나다(4)
권희돈/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아프리카 먼 대륙, 튀니지의 작은 도시에 부아지지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있었다. 대학출신인 부아지지는 과일노점상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살았다. 어느 날 경찰의 폭압적인 단속에 걸려 그는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게 되었다.

시청과 경찰 어디에서도 그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벤 알리 대통령이 24년 장기 집권하는 상황인지라 개인의 자유는 실종되었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숭어처럼 뛰었다.

부아지지는 이 모든 항거의 표시로 광장에서 분신자살을 선택한다. 그 불은 이 아름다운 청년의 과일을 태우고 삶의 터전을 태우고 목숨까지 태웠다. 분노한 국민들은 재스민 꽃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고, 시위대의 함성에 놀란 벤 알리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 그 불길은 전광석화처럼 이웃나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집트, 예멘,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지구 저 편의 거대한 대륙에까지 그야말로 요원의 불기처럼 번지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의 재스민 향기를 동시다발적으로 실어 나를 수 있었던 것은 페이스북과 트윗터와 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즉 쇼설네트워크서비스(SNS) 환경이 있었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튀니지에서 촉발된 혁명을 재스민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모바일 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류의 네 번째 정보혁명인 컴퓨터가 이루어낸 쾌거인 셈이다.

인류의 제1차 정보혁명은 언어의 발명이고, 제2차 정보혁명은 문자의 발명이며, 제3차 정보혁명은 금속활자의 발명이며 제4차 정보혁명은 컴퓨터의 발명이다. 이곳 청주는 제3차 정보혁명의 발상지이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旨心體要節)을 찍어낸 도시이다.

▲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특성화시켜야 비로소 문화도시로써 객관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직지 하나만 잘 스토리텔링하여도 청주는 일거에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공인받았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고 공기를 마시고 있는 이곳 청주가 인류 역사상 세 번째 정보혁명의 발상지라는 사실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긍지를 가질 만한 스토리이다. 적어도 과거 우리 조상은 세계문명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청주는 문화도시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선거철이면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많이 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남이 다 하는 것을 쫓아가기만 하는 도시가 무슨 문화도시인가. 청주가 진정 문화도시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면서,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특성화시켜야 비로소 문화도시로써 객관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직지 하나만 잘 스토리텔링하여도 청주는 일거에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

청주시에서는 직지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일인 9월4일을 직지의 날로 정한 뒤 매년 직지축제 행사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지의 문화적 특성을 활용한 문화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한다든가, 학술회의, 직지문화콘텐츠개발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에는 뭔지 모를 허전함이 깃들여져 있다. 필자는 그 허전함이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현재의 인쇄·출판문화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데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직지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라고 자랑할 때, 누군가 있어 그러면 그런 청주의 현재 인쇄·출판문화가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과거는 이랬었다고 자랑만 하는 것은 자기 조상 자랑만을 일삼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속활자 발명은 종이책 출판을 위한 인쇄와 출판과 관련된 문화 콘텐츠이다. 문자가 발명되었다고 해서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전자책이 나왔다고 해서 종이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세계최고(最古)의 금속활자를 발명해낸 도시답게 현재의 청주는 인쇄와 출판문화를 세계최고(最高)로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 길이 직지라는 찬란한 역사를 화석화시키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체로 살려내는 길이다. 그 눈이 직지의 본질을 바라보는 눈이요, 새롭고도 유익하게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스토리텔링(리모델링)을 생산해낼 수 있는 원천이다.

독자 여러분, 이제부터 이야기는 다시 시작됩니다. 직지를 대상으로 청주시를 문화도시로 만들어 가는 스토리텔링을 말입니다. 가령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요. 고인쇄박물관 주변을 고서점 거리로 만들어 가는 이야기, 이곳에서 저자들이 내는 책은 이 지역 문화관광과에서 적극 지원한다는 이야기, 이곳의 저자들은 이곳에서 책을 내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지역에서 내는 책은 이 지역 인쇄소에서 인쇄하고 이 지역 출판사에서 출판하도록 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이 지역의 인쇄소와 출판사가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뭔가 목울대를 향하여 뭉클 치밀어 오르지 않습니까?

이야기 속에는 주인공이 있어야 하겠죠? 주인공은 시청문화관광과 직원이든 시장이든 시민 한 사람이든 아니면 다수의 뜻을 가진 시민단체이든 상관없겠지요. 다만 주인공이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균형을 잃을 만큼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겠죠? 인생에 고비가 없으면 싱겁잖아요. 시련이 클수록 꽃은 화려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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