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샤의 물 에비앙…세종대왕의 물 초정약수

스토리텔링을 만나다(3)
권희돈/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은 영국의 청교도 혁명, 미국의 독립전쟁과 더불어 근대 민주주의 3대혁명이라 일컫는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루이 16세 처형으로 상징되는 이 혁명은 유럽 전체의 근대 시민사회를 성립시키는 단초를 이루었다.

그 무렵 사철 하얀 눈이 덮인 알프스의 에비앙이라는 작은 마을에 한 후작이 요양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신장 결석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의 한 주민이 이 마을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몸에 좋으니 한 번 마셔보라고 권했다. 에비앙 마을의 지하수를 꾸준히 마신 후 놀랍게도 후작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에비앙 마을의 지하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작은 에비앙 마을의 지하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지하수는 알프스 산맥의 눈비가 약 15년에 걸쳐 내려오면서 정화되었다는 사실과 미네랄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이 다수 함유되었다는 사실을 연구 결과로 얻어냈다.

에비앙의 지하수가 나오는 땅의 소유주인 한 주민은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물을 팔아보기로 결심하였다. ‘카샤의 물’이란 이름을 내걸고 단순한 물의 개념이 아닌 약(藥)의 개념으로 상품화시켰다. 그러다가 1878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식 판매 허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판매하는 물이 탄생한 셈이다. 에비앙은 최고급의 물일뿐더러 약수라는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점차 각인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 후 지금까지 에비앙은 100년 이상 세계 1위의 생수업체로서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 세종대왕의 이야기가 깃든 초정약수에는 프랑스 에비앙보다 극적인 스토리가 있지만 현지의 풍경도 이야기도 초라하게 남아있다. 사진은 초정약수축제의 광경.
에비앙, 곧 명품물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이처럼 오랫동안 유지해오는 비결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비결을 두 가지 점에서 찾아보았다. 첫째는 제품탄생의 전설 같은 에피소드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물속에 함유된 성분을 나열하는 딱딱한 광고 멘트보다는 부드러운 이야기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 마케팅이 주효했다고 판단된다.

이뿐 아니라 에비앙 회사는 탄생 에피소드 이외에도 멀티채널을 통해 스토리를 끊임없이 개발하여 마케팅을 하여 왔다. 실제로 그 스토리들을 보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네버엔딩 스토리이다.

둘째는 에비앙 회사가 갖고 있는 꿈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실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을 에비앙이라는 작은 마을에 투자하여 그곳을 유럽 최고의 휴양지로 바꿔놓았다. 각종 스포츠 대회를 후원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고, 수자원 및 습지보호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물을 팔아 번 돈을 착하게 쓰고 있는 회사라는 느낌이 든다.

파워풀한 세종대왕 에피소드

초정약수는 에비앙의 지하수 못지않은 약수(藥水)다. 세계광천학계는 초정약수를 미국의 샤스터와 영국의 나포리스와 함께 세계3대광천수의 하나로 꼽는다.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솟아나오는 무균단순탄산천으로 유리탄산,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인체에 유익한 각종 물질이 함유된 양질의 물임이 밝혀졌다. 석회암층에서 솟는다는 말은 잡수(雜水)가 끼어들지 않는다는 뜻일 터이다.

어디 그뿐인가. 에비앙의 물을 마시고 신장결석을 치유했다는 어느 후작의 에피소드보다 훨씬 파워풀한 세종대왕의 에피소드를 갖고 있지 아니한가.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60일 동안 머물며 눈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청주 동쪽 30리에 초수가 있어 이 물에 목욕하면 피부병이 낫는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조 또한 이 약수로 심한 피부병을 고쳤다고 한다. 초정약수의 약효는 7,8월 삼복더위에 가장 뛰어나 민간에서도 복날과 백중날에는 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십 리나 줄을 섰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세종대왕이 누구인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지 않는가. 우리가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한글을 창제한 왕이 아니던가. 세종대왕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초정약수에 관한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며 그 이야기의 파워는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초정리를 보면 낙후된 시골마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초라하고 어수선하고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한촌의 모습이다. 한 번 호기심으로 가본 사람은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을씨년스런 구조물만 연상된다. 세계 3대광천수 중의 하나라는 명성도, 나랏말씀이 중국에 달라 백성이 제 뜻을 쉬이 펴지 못하여 한글을 창제했다는 세종의 그 높은 뜻도 온 데 간 데 없다.

이제 초정약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힘도 없고 재정도 빈약한 청원군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다. 특정한 단체에만 맡겨서도 아니 된다. 국가에서 나서면 더욱 좋겠지만, 적어도 충청북도 정도의 단체에서라도 적극 나서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먼저 관계 공무원을 파견하여 3대 광천수와 에비앙 마을을 벤치마킹하고, 물 관리에서 마을환경에 이르기까지 친환경적인 관광지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대청호에 배를 띄워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지극히 위험스런 발상을 빨리 거두고, 그런 노력 그런 재원 그런 열정을 초정으로 돌려보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다.

그 길이 문화가 유일하게 재화가 되는 시대의 단체장들이 지녀야 할 마인드이다. 그 길이 세종대왕을 살리고 한글을 살리고 충청북도를 살리고 환경을 살리고 초정약수를 살리는 길이요, 문화콘텐츠가 스토리텔링을 만나서 행복한 브랜드 가치를 얻는 길이다.

그럼에도 스토리텔링은 독창성을 전제로 창출되어야 한다. 독창성은 새로움과 유익함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내장하고 있는 말이다. 새롭지만 유익하지 않은 스토리텔링은 오히려 기존의 아름다움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