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목의 재산관리인 “선산 돌려 달라”며 소송 제기
국가귀속 결정된 괴산군 157필지, 시가 48억원 달해

국가귀속 친일파 땅 64% 소송 중

정부가 국가귀속으로 결정한 친일파 토지에 대해 이를 되찾으려는 후손들의 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괴산 출신 친일파 홍승목의 방계 후손이자 재산관리인이 ‘친일재산 국가귀속 처분 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다. 홍승목의 아들은 알려진 대로 애국지사 홍범식 선생이며, 손자는 임꺽정의 저자이자 북한 초대 부수상인 홍명희다. 홍승목의 직계는 모두 북한에 살고 있다.

국가가 237명으로부터 환수결정을 내린 친일재산의 총액은 공시지가로 959억원이지만 시가로는 2106억원에 이른다. 국가는 이를 환수해 ‘순국선열 애국지사지원기금’으로 국가보훈처에 맡겼다. 그러나 친일파 60여명의 후손들이 대거 환수거부 소송을 냈다. 재산기준으로 볼 때 총액의 64%인 610억원이 분쟁에 휩싸였다. 법무부는 92건의 환수거부소송 가운데 25건을 종결지었다. 23건을 국가가 이겼다. 

또 1심인 행정법원과 항소심인 고법이 친일재산 환수는 정당하다고 내린 판결은 모두 26건이다. 친일파 후손들이 이긴 4건에 비하면 승률이 높다. 행정소송에서 국가패소율이 10% 정도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한 승률이다. 그러나 속은 껍데기다. 지난해 ‘이해승 사건 판결’로 시가 322억원짜리 소송에서 국가패소가 확정돼 소송금액의 20%가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해승의 재산을 환수할 수 없다고 못박아버린 민일영 대법관은 2009년 9월 대법관에 임용되기 전 청주지방법원장을 지냈다. 민 대법관의 배우자는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이다.
  
친일-항일로 굴곡진 가계

친일파 홍승목의 가계는 친일과 항일로 굴곡져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홍승목(1847~1925)은 대동학회, 제국실업회 등의 친일단체 회장을 맡았고 1912년에는 일본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는 등 친일행적을 일삼았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 친일파 홍승목의 직계후손들은 북한에 있다. 이런 가운데 홍승목의 방계 후손이자 재산관리인인 홍면씨가 국가귀속이 결정된 토지에 대해 환수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홍승목으로부터 홍범식-홍명희 일가가 살았던 괴산 제월리 고택. 사진/육성준 기자

홍승목은 충남 군수였던 아들 홍범식(1871~1910·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한일병합에 항거해 목숨을 끊은 뒤에도 친일행적을 이어갔다. 홍범식은 아들 홍명희에게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순국했다.

홍승목의 손자인 벽초 홍명희(1888~1968)는 알려진 대로 소설 ‘임꺽정’을 쓴 조선의 문호다. 홍명희는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고향인 괴산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1년간 옥고를 치렀고, 1927년에는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아우르는 신간회 창립을 주도했다가 다시 투옥됐다. 홍명희는 해방 후 중도의 길을 걸었지만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가 북에 남았고, 북한 초대 내각 부수상 등을 지냈다.

그리고 홍명희의 큰아들 홍기문(1903~1992)은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교수, 사회과학원장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홍석중(70)은 소설 ‘황진이’를 쓴 북한의 대표 문인이다. 한일병합에 따른 친일과 항일, 분단에 따른 이념대립의 근현대사가 홍승목의 가계사에도 그대로 점철돼 있다.  

원고 홍면 “친일재산 아닌 선산”

3월24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첫 심리가 진행된 홍승목 관련 소송의 소가(訴價)는 14억900여만원이다. 이는 환수된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토지 51만7736㎡에 대한 공시지가고 시가는 무려 48억원에 이른다. 원고는 북에 있는 홍승목 후손들을 대신해 1987년부터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홍면(69)씨고 피고는 법무부다.

홍씨를 전화로 만났다. 홍씨는 “홍명희가 5촌 당숙이다. 남한에 있는 사람 중에는 내가 가장 가깝다. 가정법원 판결을 통해 선친대부터 홍승목계의 재산을 관리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홍씨 부자가 재산관리인이 된 것은 소유권자가 죽거나 후손이 북한에 있는 상황에서 토지에 대한 세금을 낼 사람이 없다는 명분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30여 년 전 괴산으로 내려온 홍씨는 “해당 토지를 직접 농사짓지 않고 소작을 줘서 도지를 받고 있으며 보리쌀이나 쌀로 받다가 돈으로도 받았는데 세금 내고 남는 게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고 밝혔다. 소송의 목적이 개인의 이익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홍씨는 소송을 낸 이유에 대해 “환수된 땅은 홍승목 할아버지가 친일대가로 받은 게 아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선산이다. 정부는 ‘1918년 이후에 다른 곳에서 묘를 이장해 왔다고’ 주장하는데 정부가 강제로 빼앗는다면 모를까 문중의 선산을 빼앗길 수야 있겠냐”고 항변했다. 홍씨는 또 ‘선산이라면 왜 157필지 가운데 146필지가 전답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피난민들이 임야를 개간해 논밭으로 만들었는데 정부에서 세금을 받으려고 쪼개놓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광복회 “후안무치 꾸짖어야”

광복회 충북지부(지부장 김원진) 회원 31여명은 재판이 열린 24일, 남성은 검정 넥타이, 여성은 소복을 입고 ‘침묵방청’을 한 뒤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사법부가 친일파 후손의 후안무치한 재산 찾기 소송을 준엄하게 꾸짖어 다시는 반민족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 “홍승목 후손이 제기한 소송은 항일 독립운동의 가치를 폄훼하고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한 헌법 정신마저 무시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진정한 사회정의와 사법정의가 실현되는 날까지 국민과 함께 친일파 후손들의 새로운 매국노 행각을 규탄하며 기필코 이를 저지시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서상국 광복회 충북지부 사무국장은 “이처럼 친일판 후손들이 날뛰는 것은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가 제기한 친일재산 국가귀속 처분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한 오판이며 사법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홍승목 관련 국가귀속 취소소송은 친일파의 후손이 훈장까지 받은 애국지사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또 소송의 원고가 직계 후손이 아니라 재산관리인이라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그러나 서 사무국장은 “자손의 애국자라고 해서 조상의 친일이 용서받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리는 4월14일 오후 3시 청주지방법원에서 속개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