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경쟁끝 도산 속출 이뤄져
고래싸움보다 더 치열한 ‘새우싸움’

대형 할인점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규모 마켓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도산, 출혈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고객 유치 경쟁으로 가격 파괴나 경품 행사 등은 이미 대형 할인점을 비롯해 소규모 점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 더 드립니다’, ‘파격 세일’과 같은 문구부터 ‘○○보다 더 비싸면 차액의 10배를 보상해 드립니다’라는 자극적인 문구까지 소비자 눈길 끌기에 혈안이 돼 있다. 이는 비단 대형 할인점 뿐 아니라 동네 소규모 마켓에서도 출혈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동네 소점포에서도 할인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나름대로 ‘아이디어 전쟁’을 하고 있다.

한 블록에 마켓이 8개나?
청주시 복대동 한 주택가에는 한 블록 안에 소규모 마켓이 8개나 된다. ○○슈퍼, ○○마트, ○○하이퍼마켓, ○○할인유통, ○○할인마트 등 10m 마다 자리하고 있다. 20년 된 두 서너평 남짓한 손바닥만 가게부터 대형할인점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각가지 물건을 구비해 논 40여평의 마켓도 있다.

83년 오픈한 A슈퍼의 홍 모씨는 요즘 ‘죽을 맛’이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몇 만원 팔기 힘들 정도다. 간단한 식료품, 생필품 등을 갖춰 놓긴 했으나 잘 팔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20여년 전 만해도 장사도 잘되고 주변에 상점이 없었는데 지금은 몇 걸음가면 보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넓고 다양한 생필품이 갖춰진 곳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야 임대가 아니므로 임대료 걱정 안 해도 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정가에서 할인하고 또 파격세일까지 하면 임대료 내기도 벅찰 것이다.” 대형 간판에 입간판까지 세워 둔 주변 상점에 비해 A슈퍼는 어두운 조명 아래 상품들이 질서 없이 진열돼 있었다.

8개의 마켓 중 가장 큰 규모의 B할인마트는 화려한 조명에 상품들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모든 상품을 보통 10∼20% 할인 판매하고 일년에 서너 번씩 파격세일을 한다. 인근 주민들에게 전단지를 통해 세일기간을 적극 활용해 단골 고객을 확보한다. “동네 마켓이지만 규모가 큰 편이라 대량 구입이 가능하므로 물건도 싸게 가져온다. 대형할인점이 소폭의 마진으로 판매하므로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하다. ‘저 집은 얼마에 팔더라’, ‘○○보다 더 비싸네’하는 말들을 쉽게 흘려 버리지 않는다.” B할인마트 김 모사장은 저렴한 상품을 찾아다니는 소비자를 무시할 수 없어 타 상점에 대한 가격 할인에 민감하다고 털어놓았다.

“기업에만 투명 경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소비자들이 원가 얼마짜리에 마진을 얼마 붙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면서 ‘저렴하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낮은 마진을 적용시킨다.”

20여평 남짓의 C마트는 규모에 비해 상품 종류가 다양한 편이다. 3000여 가지의 생필품, 식품, 과자류가 높이 쌓여 있다. 규모가 작은데 비해 상품이 맞기 때문에 진열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 이 모사장의 말이다. 처음 시작한 3년 전만 해도 규모가 큰 편이었는데 B할인마트가 생긴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는 것. “B할인마트 등장 이후 소비자들의 인식이달라졌다. ‘할인마트’라는 간판이 걸리자 인근 주민들은 저렴하다는 생각에 발길을 많이 돌렸다. 또,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 없으므로 가격을 맞춰야 한다.” 이 사장의 말에 따르면 가격 경쟁으로 말미암아 마진 없이 파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는 것. 또 명절이나 1주년 기념 선물을 준비해 단골 손님 유지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8개 상점 중 2곳은 이미 가게를 내 논 상태다. 그중 D유통은 파격적인 가격할인으로 인근 지역을 평정(?)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제 풀에 지쳤다는 후문이다. 평균 16%의 마진을 보고 있는 소규모 점포의 경우 큰 폭의 가격 할인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유통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형 할인점의 경우 박리다매가 가능하지만 소규모 마켓은 불가능하다. 인근 주민들이 그때그때 필요한 몇 가지를 구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장 최악의 매출을 경험하고 있는 E슈퍼는 ‘하루 1만원 파는 정도’로 손님이 뚝 끊겼다. 다양한 상품과 깨끗한 환경을 원하는 소비자의 기호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도산 위기에 처해 있는 이유라고 주변 상점에서는 입을 모았다.

소규모 창업에도 신중해야
소자본으로 창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분식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특별한 경영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의 경우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도 생필품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분식점의 경우도 조리방법이 용이하고 간단한 한 끼 식사로 적합하며 좁은 공간에서 운영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함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불황에 이런 안일한 생각은 ‘맨 몸으로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그 일례로 분평동 주택가에 10평 남짓한 소규모 마켓을 10년 째 꾸려나가고 있는 F마켓이 있다. F마켓 주변에최근 2∼3년 전에 50여평이 넘는 G할인점과 H공판장이 등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좀 달랐다. 1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G할인점 부부는 생필품은 물론 야채와 채소 등 직접 농수산물 시장에서 구입해 단골 고객을 확보했고 마진이 적은 상품이어도 단골고객이 주문하면 즉시 구비해 놓는 세심함을 발휘했다. 이런 가운데 G할인점은 할인점은 탁 트인 공간에 파격세일로 손님을 사로잡았으나 H공판장은 문을 닫았다.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지하라는 단점을 극복하려면 타 상점과 차별을 둬야 하는데 전혀 차별화을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렇게 서너 평 남짓한 점포에서도 단품 하나로 ‘대박’이 나거나 꾸준한 매출을 유지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최신식 인테리어와 대규모시설을 갖추고도 ‘쪽박’을 차는 집이 있다. 한 유통관계자는 “친절은 기본이고 변해야 산다는 단순한 논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동일한 상품이라면 홍보나 운영면에서 차별화를 둬야 하고, 동일 상품이라도 격이 다른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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