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일 밤 동안 이어진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

스토리텔링을 만나다(1)
권희돈/ 청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사자만왕(동생)이 샤리야르왕(형)을 만나러 가기 위해 마차를 오르려는 순간 선물을 침실에 놓고 왔음을 기억하고는 침실에 가보니 부인이 흑인 요리사의 품에 안겨 있었다. 사자만은 칼을 빼서 둘을 네 동강 내어 융단 위에 버려두고 마차에 올랐다.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얼굴은 납빛이 되었다.

형은 동생을 만나서 기뻤지만 동생의 안색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 물었다. 동생은 담담하게 마음의 상처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며칠 후 형이 동생에게 사냥을 갔다 오자고 하였으나 동생은 아무 의욕이 없으니 그냥 집에 있겠다고 하였다. 형이 대신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간 날 오전이었다.

커튼 밖의 정원에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왕비(형수)를 중심으로 10명의 시녀와 10명의 남자가 분수대로 나오더니 가운을 벗자 모두가 알몸이 되었다. 10명의 시녀는 형의 애첩이었으며 10명의 남자는 충직한 신하였다. 그들은 물속에서 짝을 지었다. 혼자 남은 왕비는 숲속을 향해 여기요! 하고 소리쳤다. 건장한 흑인 남자가 나타나 거친 키스를 한다. 그들은 단추구멍에 단추를 꿰듯이 다리를 감고 즐겼다. 해질녘에야 남자들은 여자 위에서 내려 왔다.

동생은 갑자기 기분이 풀렸다. 식욕이 땡기고 원기가 회복되어 얼굴이 복숭아꽃빛으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얼굴빛이 좋아졌느냐고 사냥에서 돌아온 형이 물었다. 동생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형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면서 끈질기게 물었다. 동생은 형에게 자기 얼굴이 나빠진 것에 대해서만 묻고 얼굴이 왜 좋아졌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고 알라신에게 맹세하면 말하겠다고 하였다. ‘압둘 돌릴라(신에게 영광 있으라)’ 형이 맹세를 하자 동생은 자기 부인과 흑인 요리사와의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연극 ‘왕은 왕이다’의 한 장면.
그러자 형은 예로부터 아내의 화냥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 남자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면서 위로를 하였다. 그리고는 동생의 안색이 좋아진데 대한 궁금증을 끝내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그걸 말해주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하기에 동생은 할 수 없이 형수의 사건을 말하였다. 형은 자기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 다음, 둘이 같이 사냥을 간다고 속이고 몰래 방에 숨어서 보자고 하였다. 날이 밝았다. 정원에서는 동생이 말한 장면이 그대로 벌어지고 있었다.

왕의 포악함을 잠재운 ‘이야기’

상심한 두 왕은 자기들이 지배하는 나라의 여자들은 어떠한지를 살펴보자며 여행을 떠났다. 어느 바닷가에 이르러서 신혼 첫날밤에 마신(魔神)에게 납치당한 신부(新婦)로부터 성관계를 강요받는다. 그 순결하다고 생각한 신부(新婦)는 마신(魔神) 몰래 이미 몇 백 명과의 관계를 갖고 있었다. 두 왕은 각자 자기 왕국으로 돌아갔다. 동생 사자만은 그런대로 평정심을 찾았으나 형 샤리야르는 여자에 대한 분노심을 참지 못하였다.

그는 왕비와 애첩들을 비롯하여 신하들을 무참히 죽이고, 매일 밤 처녀를 데려오라고 해서는 밤새 농락하다가, 날이 밝으면 죽여 버렸다. 그렇게 삼년 세월이 흐르자 과년한 딸을 둔 아비들은 모두 나라를 떠나고 민심은 흉흉하였다. 채홍사는 이제 더 이상 왕에게 바칠 처녀가 없어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자 그의 딸 세헤라자데가 자기가 가겠다고 자청해서 나섰다. 아버지가 아무리 말려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왕은 대신이 자기 딸을 보낸다고 하니까 크게 반기면서도, 날이 밝으면 죽인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 두었다. 밤이 되어 세헤라자데가 왕의 침실에 들어갔다. 왕이 그녀의 몸을 막 차지하기 시작할 때, 그녀는 슬픈 목소리로 동생과 함께 작별의 밤을 보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왕이 흔쾌히 허락하여 동생 두냐자드를 불러들였다.

세헤라자데의 꽃병이 깨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두냐자드가 “언니,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세요”하고 말하였다. “그래 좋아. 이야기를 해주고말고. 인정 많고 친절하신 임금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왕도 잠이 안 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야기를 해 보거라”하고 왕이 말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세헤라자데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드바드의 모험, 알라딘의 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의 이야기가 1000일 동안 계속됐다. 드디어 1000일째가 되는 날 밤, 왕은 세헤라자데의 아버지를 불렀다. 그대에게 알라의 비호를 기원하겠노라. 그대는 저 기품 높은 딸을 나에게 아내로 주었소. 그 덕택으로 내가 무고한 백성의 딸들을 죽이는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기에 이르렀소.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 사라져

독자 여러분! 이 이야기에 몰입이 되셨나요? 여러분을 몰입하게 한 원인이 무엇이었나요? 사건이 드라마틱하다고요? 호기심을 유발시킨 다고요? 그래요, 그러면서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지요? 감동은 없었나요? 물론 있었을 겁니다. 연약한 아녀자의 지혜, 그 지혜가 포악한 왕의 성품을 가라앉히고 한 나라의 평온을 되찾았군요. 그 지혜가 바로 이야기였군요. 아, 재미있고 슬프고 부드러운 이야기가 이렇게 큰 힘을 갖는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인디언들은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졌다고 한답니다. 사람마다 그만큼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고 산다는 뜻이겠죠? 우리 어머니들도 그런 말씀 하셨죠. 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한 트럭쯤 된다고! 요즈음은 이처럼 누구나 한 트럭씩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돈이 되는 시대라고 그러네요. 그러니까 이야기(Story)라는 밑천을 가지고 돈벌이 하는 시대. 식자께나 하는 사람들은 이를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고 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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