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메타쉐콰이아길, 소쇄원에 봄향기 ‘물씬’

박종순/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자연의 친구들’ 강사. 환경련은 3월12일 담양 메타쉐과이아 가로수길과 관방제림, 소쇄원으로 올해 첫 생태문화탐방을 다녀왔다.

봄이 오는 것을 시기라도 하듯이 연이은 꽃샘추위에 아침부터 무엇을 입고 가야하나 한참을 고심하다 결국엔 약간 늦었다. 작년 탐방이후 한동안 못 본 반가운 얼굴들, 처음 만난 낯선 얼굴들 모두 모두 반갑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일정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첫 번째 탐방코스는 전남 담양하면 떠오르는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이다. 아직은 잎이 없어 쓸쓸하지만 길게 늘어선 가로수를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들어가는 길, 차가 다니지 않아 연인들이나 아이들과 함께한 가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아들이 나란히 서있는 이 길은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프로그램은 메타세콰이아 열매로 목걸이나, 팔찌등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2년 전과는 달리 나무 밑에 지천으로 있어야할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한참을 주워 모은 열매를 끈으로 엮어 목걸이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열심이다. 가로수길을 배경으로 단체사진도 한 컷. 각자 자신이 만든 작품을 둘러 걸고 아름다운 숲 관방제림을 향해 걸었다.

▲ 소쇄원은 골짜기의 개울물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어 담장을 통해 흘러 내려오는 자연스러움이 일품이다. 지금을 사는 이들이 꼭 본받아야 할 자연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다.
관방제림은 조선 인조 때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면서 그 위에 숲을 조성하여,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대표적인 임수라고 한다. 구조물에 몸을 의지하며 서있는 나무들에 손을 대어보고 그 촉감을 느끼며 300년 세월의 노고를 가늠해본다. 바람은 조금 불지만 역시 볕은 봄의 것임에 분명하다. 날씨가 정말 끝내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관방제림 끝에 도착했을 즈음 저 건너 죽녹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쉽지만 오늘 일정엔 죽녹원은 없다.

담양의 3대 먹을거리 중의 하나라는 국수가 유명한 국수골목이 관방제림 바로 맞은편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오늘의 점심은 바로 여기서. 담양은 대(竹)통밥, 떡갈비가 유명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것은 국수였다. 멸치로 육수를 낸 잔치국수와 색깔만으로도 매운 비빔국수에 곁들여 약초를 넣고 삶았다는 계란은 정말 맛있었다. 국수 한 그릇에 3000원이라니 가격도 정말 착하다.

10여분 거리에 있는 대나무박물관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여러 가지 대나무의 종류, 생태와 문화, 대나무로 만든 공예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을 에워싸고 있는 대나무 길을 걷고 있자니 학창시절 외웠던 시조가 절로 떠오른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이곳에서의 프로그램은 대나무 그리기. 보는 건 쉬운데 막상 그리려니 세상에 쉬운 일은 정말 없다.

우리 정원의 교과서 ‘소쇄원’

대나무박물관에서 차로 30여분 이동해 도착한 곳은 가사문학의 중심지가 되었던 소쇄원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양산보(1503~1557)라는 사람이 지은 별서정원이다. 별서란 살림집에서 떨어져 산수가 좋은 곳에 마련된 주거공간을 말하며, 이곳에 정자와 더불어 조성되는 정원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집 근처 경치 좋은 곳에 지어진, 문화생활과 전원생활을 겸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이르는 뜻이다.

▲ 담양하면 떠오르는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 아직은 잎이 없어 쓸쓸하지만 길게 늘어선 가로수를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소쇄(瀟灑)라는 말은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온 말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한다. 양산보는 그 뜻을 따서 정원의 이름을 붙이고 그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기의 호를 소쇄옹이라 했다. 입구에서부터 세월을 말해주듯이 아주 오래된 대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흔들며 우리 일행을 반긴다. 왼쪽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으니 아늑하고 고즈넉한 소쇄원 입구를 만날 수 있었다.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겨울을 녹이며 흐르고, 담장에 한자로 새겨진 애향단이라는 글귀가 집주인의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얼마나 극진하였는지를 말하여 준다.

담장 밑으로는 물이 흐른다. 골짜기의 개울물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어 담장을 통해 흘러 내려오는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주인은 즐겼으리라. 지금을 사는 이들이 꼭 본받아야 할 자연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다. 이 흙돌담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소쇄처사 양공지려’라는 글씨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소쇄원의 문패 구실을 한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오곡문을 지나면 2단으로 된 매대(梅臺)가 있는데 아직은 피지 못한 매화와 산수유가 소쇄원의 운치를 더해 준다.

그 위에 위치한 제월당이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책을 읽는 공간이었다면, 제월당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계곡 바로 옆의 광풍각은 답답하고 어려운 시절 벗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예전과 달리 지천으로 있어야할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한참을 주워 모은 열매를 엮어 목걸이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었다.
▲ 대나무 길을 걷자니 시조가 절로 떠오른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소쇄원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정원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보존상태도 가장 좋다. 자연의 풍치를 그대로 살리면서 곳곳에 인공적인 미가 어울려 소박하지만 행복한 조화공간을 자아낸다. 자연을 제 것인 양 마음대로 훼손하며 인위적인 것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이른 봄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하는 이 곳, 소쇄원을 뒤로 80여명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으며 2011년 첫 탐방의 일정은 모두 끝났다. 올해도 자연과 함께하는 건강한 탐방을 기대하며 담양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는 다시 청주를 향해 열심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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